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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숨기 좋은 곳
민예령 지음 / 창조와지식(북모아) / 2020년 6월
평점 :





세상에서 가장 숨기 좋은 곳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만났다. 일러스트가 참 여유로워 보였다. 그림 색감 때문인지 화법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님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근무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몇 몇 페이지는 여백의 미가 엿보여 시각적으로 시원하다. 보통 숨바꼭질같이 숨기 좋은 곳을 찾으려면 탁 트인 공간보단 빽빽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건물, 가구 등과 물아일체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책의 주제가 ‘엄마’ 라는 세상이니만큼 포근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여유로운 그림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의 방 구조와는 조금 다른 일러스트 안의 방 구조 때문인지 서양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저자가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하는 분이라 그래서 캐나다와 같은 외국식 집안 구조를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넓은 정원과 커다란 나무가 그랬고, 지하실에 있을 법한 창고(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창을 덮은 하얀 커튼, 계단 밑 벽장이 그랬다.
아이는 강아지 해피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숨기 좋은 곳을 찾아 집 안팎 곳곳을 탐험한다. 나무 뒤에 숨기도 하고, 창고 안에 있는 자기 몸집만한 삽 뒤에 몸을 숨기기도 한다. 현관 옆한쪽면을 차지하고 있는 수납장 안에 들어가 아빠의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쓰며 위장을 한다. 거실의 커튼 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듯 빼꼼한 아이의 얼굴만 겨우 찾을 수 있다. 세탁실 안 빨래통은 아이가 숨기 제격인 은신처다. 빨래통 뚜껑만 닫으면 말이다! 커다란 서양식 침대 아랜 아이가 들어갈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침대 위에서 위태롭게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해피가 떨어질 것만 같아 아슬아슬하다. 다용도실 양배추 속에 숨어있는 그림을 보니 내가 좋아했던 게임 캐릭터인 양배추인형이 생각났다. 엉뚱하고 귀엽다. 다음 페이지 몇 장은 하얀 배경에 엄마가 등장한다. 아이는 엄마 치마 뒤에 숨어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숨기 좋은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그건 언제나, 엄마 곁이랍니다’ 라고 끝맺는다.
아무 생각 없이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의 모습을 책으로 넘겨보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울컥했다. 갑자기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내 안에 있는 내면아이가 불쑥 튀어나와 엄마를 불렀다.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라는 세상은,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 새삼 더 느끼게 된다. 우리 아이에게 엄마인 난 이렇게 포근하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돌봐주는 조부모님이 계시지만 엄마라는 존재가 따로 있고 그 사람이 자신을 가장 잘 알며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이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막 3살이 된 우리 아이도 나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해야겠다. 이 책의 아이처럼 마지막에 숨는 곳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편안한 엄마 곁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