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 요절한 천재 시인들을 찾아서
우대식 지음 / 새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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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이 책을 통해 열두 명의 시인들을 만났다. 저자는 죽은 시인과 죽지 않은 시를 동시에 만나는 순간 벅찬 어처구니가 나를 더더욱 이 작업 안으로 몰아붙였다는데 저자의 수고로움을 통해 독자인 나 또한 모르고 또 잊혀졌던 그 시인들과 그들의 시편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부제는 요절한 천재 시인들을 찾아서이다. 내가 사는 동네 광명은 기형도문학관이 있다. 그리고 기형도를 기리며 기획한 문화교육프로그램인 기형도시인학교도 있다. 그가 광명이라는 지역과 무슨 연관이 있나 살펴보다가 1960년 연평리에서 태어난 그와 일가족이 경기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89년 서울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중고서점 알라딘 입구엔 여러 시인들의 얼굴을 벽보처럼 그려놓았는데, 그 중 기형도 시인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넣어주는 비닐에도 기형도 시인의 얼굴을 그려 넣었었다. 각설하고 기형도 시인은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은 천사였다. 저자는 일찍이 요절한 시인 12명을 통해 시인의 삶의 굴곡에서 시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연주, 신기섭, 이경록, 김민부 등 잘 들어보지 못한 젊은 시인들의 이름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난 익숙한 기형도 시인부터 찾아보았다. 그의 내면 풍경엔 가난이 상처로 남아있었지만 형제들과 다락방에 있던 책을 꺼내 읽고 게임하듯 책을 더듬어가던 풍경이야말로 시대를 넘어서 그가 잃지 않던 부드러움이 아니었는가 싶다. 저자는 그의 시가 동화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숲으로 된 성벽>과 같은 경우 성은 낙원이지만 구름이나 공기같은 것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음이 그것이다. 기형도 시인은 노래도 잘 불렀고 작사, 작곡도 했다. 그가 작사했던 내 마음 낙엽은 대중가요였다. 안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수리시>동인이기도 했는데 그 시절이야말로 문학청년으로서 기형도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시를 빼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는, 감각의 더듬이로 스스로 구원의 문을 헤쳐가야하는 밀교와도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밀교의 교주같았던 기형도를 그린다. 그의 생가를 찾아 나서며 곳곳에 낮은 판잣집에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문구를 발견하곤 기형도 시인의 우리 동네 목사님을 떠올렸다. ‘홀린 사람이란 시에선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그 시는 군중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시를 당대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개인의 실존이 집단의 논리에 의해 재단되는 참을 수 없는 현실을 방관하지 못한 그를 생각하며. 저자는 이렇듯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며 그의 작품과 연결시켜 소개했다. 시인의 연보를 보고 부친 또한 뇌졸중으로 쓰러져 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의 슬픈 미래는 예견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이번 도서를 통해 김용직 시인을 알게 되었다. 그는 투신했다. 조악한 삶의 공간,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살며 스스로 몸을 굉음으로 치환시켰다고 저자는 표현했다. 해방둥이였던 그가 왕십리에서 행당동으로 올라가는 산동네의 전형 가운데 마장동에 거처하며 전근대적인 요소를 모두 품고 있던 그 곳에서 시를 향한 신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술과 소금이 유일한 일용의 양식이었고 시를 쓰는 것만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의 주검을 통해 가난이 주는 쓸쓸함을 발견했고 수의를 할 수 없어 하얀 종이로 시신을 감쌌음을 회고하는 장면은 마음이 참 아려왔다.

 

  요절한 예술가는 짧은 생과 대비되는, 불꽃같은 열정과 광기도 돋보인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이 책의 제목처럼 몸을 데인시인들을 만나보며 시인이 갖고 있었을 온기를 느껴본다. 오로지 작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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