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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 없는 사과사회 - 조직의 운명을 바꾸는 진짜 사과와 거짓 사과
숀 오마라.케리 쿠퍼 지음, 엄창호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8월
평점 :
사죄 없는 사과사회
최근에 ‘뒷광고’ 논란이 일며 물의를 빚은 유튜버와 연예인들의 사과를 잇달아 볼 수 있었다. 의혹이 제기된 지 한참 지나 입장을 내놓은 이들도 있었고, 오해가 있었다며 변명을 늘어놓는 이들도 있었다. 사과를 하는 입장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것을 지켜보는 입장도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사과의 형태는 참 다양하다. 책은 극히 일부에만 진심이 담겨있고 대부분 거짓 사과라고 단언했다. 전달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면서도 결백을 주장하는 슈뢰딩거식 사과라든지 전문용어로 점철되어 있어 대중과 소통이 어려운 사과, 책임 회피형 사과나 전시용 사과 등 그 예는 수없이 많다. 특히 대중교통 부문에서 전시용 사과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연착되었다든지 하는 내용은 유감을 전하지만 형식적이고 의미는 빠져있다. 단지 내부 규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공표된 사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사과의 의미가 상실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간의 이목을 끈 공개 사과들을 2년 넘게 꼼꼼히 살펴보았다. 사실상 거짓에 가까운 진술로 상황을 왜곡하는 그릇된 사과문이 많았다는 것에 경악하며 엉망진창인 이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찾아보았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였다. 책은 사과 충동을 부추기는 심리를 살펴보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몇 가지 사과, 사과문을 내놓게 되는 요인들, 꼭 필요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까 언급한 슈뢰딩거식 사과에 대해 살펴보자. 이런식의 사과는 안 듣는 것만 못한 것 같다. 대체로 실망만 안겨주며 도덕적 자격에 관한 표현, 즉 조직 예외주의가 뒤섞여 있다. 듣는이가 동의하지 않음에도 자신을 도덕적 자격을 갖춘 주체라고 보는 것이다. 책은 영국 식품협동조합의 대변인 사과를 본문에 실었다. 책임을 회피하는 문법의 힘이 조동사, 수동태 등의 활용(?)으로 메시지를 모호하게 만들며 책임을 모면하고 있었다.
사과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법원이 명령한 사과는 회복적 정의의 일종으로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이 없어 논란이 많았다. 열 살 소년을 들이받은 뺑소니범이 사과편지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가관이다. ‘다행스럽게도 사고 당일 구급차를 불러 치료할 필요까진 없었다니 기쁘다고.’ 심각성을 축소하는 전형적인 나쁜 사과다. 개인을 넘어서 기업과 같은 조직에 명령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조직은 사과가 고객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비결이 아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소셜에서 비난받는 일과 고객이 분노하여 피해보는 일은 별개라는 걸 이해하는 조직은 탄력이 있고 문제 해결능력이 있다. 온라인 상의 분노 표현과 불매운동을 실 고객감소로 착각하는 조직은 하나 마나한 사과를 계속해서 할 수 밖에 없다.
분노가 폭발하는 사회다. 우리가 언제까지 사죄없는 사과를 함으로써 분노를 촉발시킬 것인가. 진정한 사과는 시의적절한 때와 방법이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과의 본질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것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는 지금, 이 위험으로부터 사과의 신뢰를 회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