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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수필
정상원 지음 / 아침의정원 / 2020년 8월
평점 :

탐식수필
저자는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셰프로 일하고 있다. 그는 소회에 이렇게 밝혔다. 유기화학 리포트 이후 가장 긴 글이지 않았나 싶다고. 식칼과 펜을 들고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이번 ‘탐식수필’이라는 책을 통해 미식탐험을 기꺼이 안내했다!
난 미식가는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혀끝에 느껴지는 미감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매우 좋았다. 식재료와 요리들의 세계 여행을 통해 맛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조리의 과학을 이야기하며, 식사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프랑스 코스의 일련을 통해 식사의 과정과 그 사이의 즐거움을 탐험했다. 그리고 기내식이나 선상식 등 새로운 플롯으로 구성된 간이식사를 다루고 마지막으로는 미감이 아름다움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그려냈다. 맛은 언제나 예술이 주는 아름다움에 도전해왔다. 먹는 일이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진입해가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저자는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장과 글자 하나하나가 탁월했다. 신지영 교수의 추천사처럼 ‘말맛으로 입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하다. 책을 넘겨보니 컬러풀한 사진들로 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런던의 카레, 부다페스트의 순댓국등 래디컬한 래디시가 펼쳐졌다.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단어를 검색해봤더니 래디컬은 급진적,근본적인, 래디시는 ‘무’ 였다. 우리나라에서 무청 시래기를 고등어찜에 넣어 먹는다면 대서양과 지중해의 생선요리에도 서양 홍당무 래디시의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를 사용한다. 이처럼 래디컬하게 느껴지는 많은 식재료들과 요리들이 역사와 생활의 교착점에 불쑥 등장하곤 한다. 라만찬의 동치미가 그랬고 돼지삼겹살과 배추로 만든 폴란드의 스튜가 그랬다. 동유럽 음식은 역사적으로 우리음식과 같은 뿌리를 지닌 것 같다. 단지 음식에 대한 느낌만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해 언급하여 상식 또한 풍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란 젓갈과 김치같은 저장식품이 익숙하다. 그 근간엔 소금이 있다. 특히 바다의 산물인 소금과 땅의 산물인 육류가 만나 염장육을 제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염장육은 소금의 산지에서 발달한다. 사실 고기를 이동시키는 쪽이 어려움이 많았지만 소금의 이동으로 인한 관세 때문에 지금도 대서양의 근처에는 대규모 가공육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단다. 이 관세의 크기가 고기를 이동시키는 기술, 경제적인 비용을 압도했나보다.
‘최대한의 식사’편에서는 오르되브르를 언급했다. 동양의 반찬이란 개념이 서유럽까지 전달된 것으로써 프랑스어로 오르되브르는 ‘식사의 밖’이란 뜻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식사의 시작인 앙트레 앞에서 식욕을 돋우는 메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푸아그라와 케비어, 완두콩을 올린 오르되브르의 사진을 보고 군침이 넘어갔다. 반면 ‘최소한의 식사’편에서는 시장의 음식들이 등장했는데 가판에 놓여 있는 먹거리들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오일장같이 서정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맛이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순간을 여러 사진을 통해 목격했다. 음식의 본질은 맛이지만 우린 맛을 먼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 이미지를 먼저 느낀다. 시각이 주는 직관성은 예술작품처럼 피어난다. 모네의 그림 ‘수련’을 모티브로 한 콜리플라워 수프 ‘차롬한 초록’ 은 에스푸마 기법으로 모네가 연못에서 느낀 가벼운 감정을 식감으로 표현했다. 눈으로 맛보았으니 직접 먹어보고도 싶어졌다!
책 제목 ‘탐식수필’은 정말 잘 지었다. 식탁 위에 내려앉은 맛과 멋을 탐하고 싶다. 음식 못지않게 글 또한 맛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