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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건 8할이 나쁜 마음이었다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나를 키운 건 8할이 나쁜 마음이었다
모든 사람은 양면성이 있다. 좋은 면과 나쁜 면. 종이 한 장 차이다. 이 책은 까칠하고 날카롭게 들리지만 속이 시원했다. 작가의 이력도 재밌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의 저자 이혜린님이다. 목차는 매우 단순한데 인생이 집약되어 있다. 우린 혼자 살 수 없음에 좋든 싫든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데 ‘사람이 싫다’ 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인 회사에서 부딪힐만한 일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회사가 싫다’ 라고 제목을 할애했다. 그리고 ‘네가 싫다’ 와 ‘내가 싫다’ 는 왜 그리 공감이 되는지. 나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자존감이 한없이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땐 나조차도 내가 싫다. 나도 모르게 욕을 혼잣말로 내뱉고 한숨을 쉰다. 남들에게 들키긴 싫은, 내 안의 나쁜 말들이 이 책에 적혀있어 연대감을 느꼈다.
‘소작농은 땅을 미워하지 않는다. 마님이 나눠 줄 곡식을 사랑할 뿐이다. ’ 라는 말이 인상 깊다. 회사는 그저 일을 시키고 돈을 버는 조직일 뿐이니 남으면 돈을 벌고, 떠나면 그만인 것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미워하는 마음은 내 감정만 상하게 만드니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말 같아 냉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시니컬해서 좋다. ‘남친 땜에 인생 바꾸지 마.’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내용도 웃펐다. 어차피 10년 후 각자 자기 아기 프사에 내걸고 건조한 안부나 주고받을 사이라며 10년 후 페이스북서 검색도 안 될 놈들이란다. 맞다. 난 그때 뭐가 그리 심각했을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한낱 남친이었던 존재 때문에 울고 짜고 할 필요가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심오한 문장엔 맞다고 맞장구치며 그 다음 문장이 허를 찌른다. ‘그리고 더 크고 지랄 맞은 뭔가가 오리라’ 라고. 끝도 없이 올거라고. 그것이 맞을 거라고. 구관이 명관일 땐 이 느낌이 딱 맞다. 싫었던 사람이 회사를 옮겼는데 더 이상한 사람이 올 때 현타가 온다.
저자의 요즘 멘탈 관리법은 간단하다.
그럴 운명이다.
어쩌라고 XX.
어떻게든 된다.
나도 3번을 담당하고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책임감 없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조바심도 사라졌다. 책은 자신의 ‘나쁜 마음’ 이 자신을 8할이나 키웠다고 하는데 나란 인간도 별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차마 입 밖에 못낸 수많은 말들이 시원하게 대리로 내뱉어져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