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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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편지

 

 몇 달 전에 티비 프로그램에서 경악할만한 내용이 보도되었다. 친딸을 15년째 성폭행해온 아버지의 추악한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친아빠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에 초경을 하고난 후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처음엔 너무 어렸고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고 잠자고 일어나면 평상시대로 생활했기에 넘어갔단다. 그러다 생리를 안 하고 배가 더부룩해 병원에 갔더니 임신을 확인했고 엄마, 아빠와 함께 가서 중절수술까지 했단다. 무려 4번이나! 대학생이 되어선 아빠가 매일 자신의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출근 전마다 꼭 안방에 들러서 관계를 하고 나갔다고 한다. 자신의 딸을 애인이라고 부르고 엄마는 옆에서 모든 걸 알고도 방관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한참 멍해졌다. 그런데 이런 친족 성폭행이 종종 벌어지는 모양이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이자 친족 성폭력 생존자인 저자의 이야기를 일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녀는 31년 전 죽은 아버지가 되어 자신에게 사과편지를 썼다. “아버지에게 사과의 언어를 구사하게 함으로써 나를 자유롭게 만들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저자 또한 5살 때 처음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학대, 폭행, 가스라이팅 등 힘든 폭력에 시달렸다. 이 책을 쓰면서 과거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다시 꺼내보았을 그녀가 안쓰러웠다. 마치 탄원서이자 소환장같은 느낌으로 피해자인 저자의 고발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군림하는 왕 같았다. 그것도 매우 잔인한. 가족들을 자신의 소유물인양 대했고 억압적인 부모와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한 형 때문에 남자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저자에게 가족의 이름으로 성폭력을 자행했다. 여기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과를 행하는 자는 최상위 명령을 어기는 반역자이지.” 라고.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시장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대신 생을 마감하는 무책임함을 선택한. 저자 이브 엔슬러는 가해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고통 또한 인정하며 잘못을 반성하는, 그 과정이 진정한 사과라고 말했다.

 

  이미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로 책을 쓴 것은 저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기록할 수 없는 상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사건의 본질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 고통을 옅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녀는 이름을 이브 엔슬러에서 브이V’로 바꾸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을 선언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그가 물려준 성과 이름으로 살고 싶지 않았기에. 세계를 누비며 끔찍한 성폭력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치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그녀의 행보가 아름답다. 여전히 사과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이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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