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안전거리
박현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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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했다. 운전이라는 소재를 메타포 삼아 엮어나가는 삶의 안전거리라니. 필자가 한 달간 제주도에 있기로 결정하면서 운전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집에서 반 독립할 계획을 가지고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야 할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랄까? 섬에 있다는 고립의 감각이 떠나는 기술의 필요를 새삼 자극한 면도 있었다고. 어찌되었건 그녀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단다. 법은 지키면 되는 것이지 깊이 고찰할 대상이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가. 여기서 소설 <안티고네><칠드런 액트>를 언급한다. 법의 안팎에서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의지의 선택 문제. 적어도 운전면허 시험엔 도덕적 딜레마가 등장하지 않기에 다행이다.

 

  책은 기동력, 코너링, 주차, 교통체증, 돌발 등 운전과 관련된 키워드를 제시하며 우리 인생에서 겪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침체된 듯 보였던 필자의 인생, 그저 가라앉아 흐르는 듯 보이는 저류의 삶에도 어떤 국면의 변화 오고 그것이 반드시 발전을 약속하진 않지만 조금씩 바뀌는 변화를 통해 인생의 지도를 그려나가게 되었다. 초보 안내문을 떼면 이젠 초보라고 변명할 수도 없게 되지만 이젠 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어차피 삶에서 초보이며 서투르지만 초보딱지를 뗌으로 인해 또 하나의 실험대 위해 서서 자신의 책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필자의 에피소드들 중간 중간 여러 책들을 소개한다. <옆자리>란 제목의 글에선 조수석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일정 이상의 여행을 함께 하는 동반자 관계랄까? 옆에 누구를 태울 것인지, 그와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운전에서 무척 중요하다. 누군가의 조수석에 앉을지 말지도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난 배우자가 떠올랐는데 저자는 김영하의 소설 <오직 두 사람>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딸을 떠올렸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온 딸 현주. 자기 파괴적인 연대와 파트너십에 관한 소설이었다. 가족이라도, 애인이라도, 친구라도 목적지가 같지 않다면 정차가 까다롭고 힘들다 해도 내려줘야 한다. 초보에겐 특히 어려운 <주차>에 관해서도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는 부제로 글을 이어갔다. 붐비는 주차장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불안함, 그 상황은 내가 어디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졌다고. 모든 차들이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주차장을 볼 때면 힐베르트 무한 호텔의 야간 지배인처럼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말했다. 나도 제자리에 정차되어 있는 주차장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서 흡족하다. 물론 우리집 주차장은 협소해 항상 이중주차가 되어있어 아침마다 밀고 끌기에 바쁘다.

 

  소설책과 같은 예쁜 표지에 여느 책 폰트와 다른 예쁜 글꼴에 눈길을 계속 잡아끌었다. 게다가 중간 중간 소개하는 여러 책들은 꼭 한번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소설 속 행간을 달리며 관계의 안전거리를 가늠해본 내 마음 운전법두고두고 곱씹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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