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도 새로 태어난다
스베냐 플라스푈러.플로리안 베르너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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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된다는 것

 

  이 책대로라면 난 철학적 모험을 시작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다른 육아서와 달리 이 책은 수유와 기저귀 가는 법, 이유식 방법을 설명하는 실용서가 아니었다. 독일의 젊은 철학자와 문예학자 부부가 쓴 이 책은 부모 노릇의 철학적 차원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며 온갖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시간 순서대로 기록된 만큼 1부는 <딸이 태어나다> , 2부는 <아들이 태어나다> 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은 한 쌍의 짝으로서, 서로 다투는 사람으로서, 두 아이의 부모로서 여러 질문을 좇았다. 10년 전 낳은 딸과 3년 전 낳은 아들을 보며 실존적 차원을 밝히고자 했다. “한 인간이 세상에 왔다!” 는 질문을 던지며 말이다!

 

  단지 아이를 책임지고 돌보며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것은 마치 자신의 삶을 지금까지의 차원과 다르게 바라보며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성 역할과 다르게 이 책은 엄마, 아빠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각자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온 생각과 인식을 반영했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부모가 되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그린, 그것도 딱딱한 이론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에 빗대어 유쾌하고 솔직하게 풀어낸 철학서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오랜만에 시선을 부모인 에게 돌려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해주어서.

 

  책은 엄마, 아빠가 번갈아 썼기 때문에 친절하게 남녀표시(,)를 해두었다. 목차를 보니 연민, 유연성, 주체성, 후회, 변비, 망각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각 부제 또한 눈길을 끌었다. <변비 : 출산을 변비 따위와 비교하다니!> 랄지 <연민 : 결국 나는 아내가 견뎌야 하는 고통에서 수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가 그것이다.

 

  아내 스베냐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첫아이를 출산하는 순간 아무런 연민을 느끼지 못했던 자신이 무척 당혹스러웠다는 베르너. 쇼펜하우어가 말한 연민에서 우러나온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어떤 동기든 연민이 아닌 다른 동기에서 나온 행동은 도덕적 가치가 없다.”에서 보자면 더더욱. 인생의 그 어떤 사건보다 둘을 하나로 결합시킬 사건(출산)이 일어나는 그 순간 서로는 정서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다니 아이러니한 것이다. 그러나 베르너는 이내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만큼 그의 고통은 나를 무익하다고 선언한다. 그 결과 역전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이 나 없이 괴로워하는데 내가 왜 그 대신 고통스러워야 한단 말인가? 그의 불행은 그를 내게서 아주 멀리 떼어놓는다.” . 베르너는 스베냐의 산통을 줄여줄 수 없었고 앞으로 아내의 이런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예쁜 딸아이를 안자마자 얼른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었으므로. 그래서 깨달은 건 철학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연민이라는 감정을 포기하고 아내에 대한 공감보다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더 중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의 정의라고 말이다.

 

  출산 할 당시 똥을 싸듯 힘을 주세요!” 란 말을 계속 들었다. 얼굴에만 힘을 주고 있는 내게 병원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아마도 프로이트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설 이론이 그것인데, “아이는 배설물처럼, 배변처럼 배설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아이들은 출산이 장을 거쳐 이루어지며, 따라서 아이는 똥처럼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아이와 똥을 하나로 뭉뚱그려 출산과정을 일상적인 신체작동의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이런 발상이 싫다. 출산의 고통을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다니. 베르너도 동의했다. 우리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작고 연약한 존재를 품에 안는 순간부터 부모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막연한 두려움과 낯섦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한 인간으로서의 를 마주할 수 있어 기뻤다. 부모가 된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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