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식 이별 - KBS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작품집
김경미 지음 / 문학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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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

 

  김경미 시인은 클래식 라디오 김미숙의 가정음악오프닝 원고를 써왔다. 주말 오프닝에 시인들의 시를 하나씩 골라서 보내곤 하다가 명색이 시인이니만큼 토, 일 오프닝시를 직접 쓰기 시작했다고. 시인으로서 오프닝시같은 시만을 쓸 생각은 없지만 시에 대한 생각이 훨씬 유연해졌다고 한다. 매일 한 편씩 쓴 시들이 다섯 달을 지나가자 한 트럭, 두 트럭 쌓이고 뜻밖의 생각 변화가 찾아왔다고. 풋내 나던 시작이 유례없이 울창하고 무성한 시의 숲을 거니는 것 같은 묵직함으로 다가왔다니 요즘 같은 계절에 참 어울린다. 오늘도 가정음악에 주파수를 맞춰놓고 오프닝을 듣고, 제일 처음 흘러나오는 모든 새는 아름답게 노래한다는 제목의 130초 분량의 독일민요를 듣는다. 소년합창단의 목소리가 청아하다.

 

  나도 라디오 작가를 꿈꿨던 적이 있다. 음악과 글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청취자와 소통하는 직업이 멋져보였다. 그리고 저자와 같이 시인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 저자도 비망록이 당선되었지 않은가. 여러모로 닮고 싶은 그녀의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희열이 충만했다. 유성호 평론가는 이 시집의 해설에서 짧은 순간 시인의 내면에 찾아온 언어적 섬광을 기록한 찬연한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구성은 오프닝시를 먼저 배치하고 바로 뒤에 그 작품의 배경이랄지 작품 쓸 때의 마음이랄까 하는 것을 후화 형식의 글로 담아 배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시와 멘트는 단순히 작품과 해설의 관계를 넘어서 어쩌면 두 개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제목처럼 카프카식 이별은 아프게 통과해 온 시인의 시간에 대한 재현, 치유의 기록, 실존적 의지를 밝힌 고백록이라 봐도 무방하다.

 

  카프카식 이별1,2를 제일 먼저 발췌해 읽었다. 카프카는 생전 자신의 예민함과 고독한 기질에 스스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모두 세 명의 여인에게 파혼을 통고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상처 주고 떠나온 여행을,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 2층 침대 위에서, 그 벌 받는 것 같은 공간에서 카프카를 떠올린 시인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가 되는 일이라면 백 번, 천 번 더 크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카프카식 이별2에선 혹은 카프카처럼 다른 사랑이 아닌 스스로의 고독과 불안과 눈물에 눈과 귀가 어둑해져 더는 사랑을 지속할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중략) 이별을 말하고 겪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시를 이렇게 설명하듯 쓰는 건 나쁜 일일지라도라는 문장이 눈에 꽂혔다. 나도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이별을 고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별을 당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고통은 남게 되는데 후자가 역시 더 힘들다. 그렇지만 감정이 변했음에도 그냥 뭉개거나 피하는 건 더 나쁘다는 의견에 동조한다.

 

  여기 수록된 시들이 라디오에서 다시 읊어지길 바란다. 계속 두고두고 곱씹어 마음에 담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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