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책] 딸 - 중간글 [큰글자책] 어르신 이야기책 210
유선진 지음, 남인희 그림 / 지성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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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진 _

 

  수필가 유선진 작가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삶과 가족과 사람에 대한 날카로운 관조와 따스한 감성을 담은 글을 발표해왔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2009년 유선진 산문집 사람, 참 따뜻하다에 발표된 수필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어르신이 쓴 어르신 이야기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노인 세대가 치매 예방을 위해 보기 편한 그림과 익숙한 이야기로 구성한 그림책 어르신 이야기책2018년 지성사 이원중 대표가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인 노모를 위해 기획한 연작이라고 한다. 이미 209, 210, 310권이 연속 출간됐다. 책읽기는 치매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된다. 어르신의 독서 시간을 늘리는 것은 인지 기능의 저하와 우울감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한다. 노인의 기억인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어린 시절이나 고향의 추억, 가족과의 행복했던 순간 등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기억을 일깨우는 내용이 이 책에 들어있다.

 

 그 중 210을 읽어보았다. 아들만 셋을 낳은 유선진 작가가 서른여섯에 다시 넷째, 아들을 낳은 이야기를 다뤘다. 딸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 내게도 딸이 있었으면하는 마음을 담았다. 딸일지도 모른다며 네 번째 아이를 낳기 권하셨지만 막상 아들이 태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기뻐하는 시어머니와, 또 아들을 낳았다며 며느리 사이에서 외롭게 늙어갈 자식을 걱정하는 친정어머니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어 위트 있게 그려져 있다고 이 책을 소개했다.

 

  양가 부모님의 온도차는 나도 느꼈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친정엄마는 예쁜 보석 태몽을 꾸며 딸인 것 같다고 좋아하셨고, 내가 태명을 사랑이라고 부르자 시어머니는 여자이름같다며 한마디 하셨다. 내심 손자를 바라신 모양이다. 아들을 낳자 시어머니는 아들보다 더 예뻐하셨고 친정엄마도 너무나 좋아하셨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지금도 엄마는 딸이 있어야 돼.” 라며 둘째를 갖기 권하신다. 이 책에도 딸을 갖고 싶어 했던 저자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막막할 때 같이 길을 찾는 해결사,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영원한 동지라고 묘사한다. 딸을 말이다.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로부터 단 한 번의 칭찬을 들은 적 없었지만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깨달은 건 출가 후였다고. 여동생마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나자 그 옛날 두 딸을 잃고(이 표현이 참 허망하다)’ 통곡했던 어머니의 울음을 들었던 것이다. 저자가 넷째를 출산할 즈음 시어머니는 밤중에나 낳겠구나라며 돌아가셨고, 친정어머니는 삼복 뙤약볕에서도 삼겹살을 삶아 가지고 오셨더랬다. 4.4kg의 아들을 출산하자 혹시 딸일지도 모르니 꼭 낳아야 한다던 시어머니의 얼굴엔 희색이 만연했고 친정어머니는 공연히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이 녀석들아, 이제 느 에미 죽게 생겼다. 말썽 피우지 말고 엄마 힘들게 하지마라.” 며 마음 아파하셨다. 두 어머니의 표정이 삽화에 실려 대조적이었다. 저자는 딸이 없지만 그래서 유익이 되는 것이, 며느리와의 관계라고 말했다. 딸이라는 조정 역할이 없으니 스스로 며느리와의 관계에 공을 들여야하니 자연히 소통이 원활하다고 말이다. 딸이 없는 시어머니에겐 며느리에 대한 귀중한 마음이 더 각별할 수밖에 없겠다.

 

  책은 어르신 이야기책답게 글밥도 제법 크고 삽화도 참 따뜻했다. 그림책, 짧은글, 중간글, 긴 글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 중 은 중간글에 속하였는데,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었다. 40권으로 제작된 시리즈는 이렇게 4단계로 구성되어 있어 어르신들의 독서와 인지수준에 따라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림책은 각 그림에 글이 딱 한 줄만 붙어있으니 가장 쉬운 책이라 하겠다. 또한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단을 잘게 나누어 편집하는 출판사만의 배려가 돋보였다. 이번 책 은 아동, 청소년, 미술치료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남인희 화가께서 그림을 그려주셨는데 내가 이번 서평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책 표지그림이 너무 따뜻하고 내 마음을 움직여서다. 아이를 품은 만삭의 임산부가 너무 사랑스러워보였다. 과거의 내 모습 같기도 해서. 김영희, 임진수 화가께서도 책의 그림을 그려주셨는데 실제 현장에서 노인미술치료 경험이 있는 김영희 화가는 판화기법을 써서 어르신들의 회상 인지를 자극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유선진 작가님의 따뜻한 감성을 녹여 낸 이 책을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어르신들께 선물하고 싶다.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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