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이의 수학여행 - 권재원 교육소설 함께교육 5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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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이의 수학여행

 

  교직에 몸담고 있는 저자는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소설쓰기를 실행했다. 그래서 <명진이의 수학여행>도 학교를 배경으로 하나보다. 교직 경험을 살려 이 소설에 나오는 소재들이 다 있을 법한 허구로 쓰였다.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상엔 수많은 진실이 사실뒤에 감추어져 있기에 이런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다. 저자는 거짓말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교육자는 아니지만 교직원으로서 교사와 아이들을 일선에서 만나는 입장이라 이 책이 더욱 재밌게 읽혔다.

 

  6개의 단편소설로 엮은 이 책은 <나미 엄마>, <풍기문란 기간제 교사>, <노동자가 되기 싫어서, 노동자가 되고 싶어서>, <명진이의 수학여행>, <애국 소년단>, <자전거 도둑>이라는 글이 담겨있다. 몇몇은 제목만 읽어도 구미가 당겼다. 난 가장 눈에 띄는 <풍기문란 기간제 교사>부터 읽어보았다. 서울대 출신인 80년대 박종철 역사의 사망 소식과 함께 자본주의 세상을 뒤집어 버릴 각종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백수 아들이 집안에서 뒹구는 꼴이 보기 싫어 어머니 입에서 하다못해임용고시를 쳐서 중학교 선생이라도 하라는 말이 나왔다. 그땐 뭐 선생을 하찮게 여기는 세대였으니 이런 안이한 생각도 했겠지. 어쨌든 천 명이 넘는 해직 교사를 쏟아낸 전교조 덕분에 4학년 2학기는 취업준비 일절 하지 않으면서 공립학교 교사자리가 굴러오길 기다렸다. 무사안일했던 태도는 뜻밖의 판결로 국립 사범대 졸업예정자들에게 날벼락이 되어버렸다. 국립 사범대 학생들에게 주어지던 교사 발령 권리가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위헌 판결이 난 것이다. 임용고시 보이콧이 진행되었으나 그 철폐투쟁은 쓸쓸히 막을 내렸다. 임시 고사장까지 설치해야 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는 임용고사장을 보며 나는 백수로 졸업했다. 사립학교 교사가 인맥으로 충원됨을 알고 알음알음 M여고로 이력서를 냈다. 그 학교 교감은 이사장님이 나를 채용하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단다. “권 선생 같은 분 모시면 풍기문란이 우려되어 안 된답디다.” 그러자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그래 겨우 두 달짜리 임시 교사 하나 가지고 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요. 까놓고 얼마면 되겠어요?” 라신다. 나는 어머니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 몰랐다. 정의감 불태우며 데모질로 대학시절을 보낸 난 세상을 전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온갖 사회과학 책들 제목조차 모르는 어머니야말로 세상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돈을 주자고요?” 그러자 어머니는 그놈들 생각이 어떤지 떠본 것이란다. 택도 없는 소리랬다. 그리곤 잔말 말고 임용고시 준비하라고 하셨다. 아이들에게 이런 무용담(?)을 얘기해주며 끝을 맺은 <풍기문란 기간제 교사>는 내가 계약제로 근무하던 자사고를 생각나게 했다. 체육교사를 뽑는데 내가 접수한 이력서만 수십장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기간제로 있던 체육교사가 다시 뽑혔다. 면접과 참관수업은 형식적이었다.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것. 아니면 이 소설처럼 뒷돈이 오고갔을 수도.

 

  어찌되었건 화자도 이기에 저자의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그럴듯한 거짓말은 진실보다 더 진실같다. 단편소설을 읽기 전에 그 소설의 핵심 문장이 한 페이지에 걸쳐 요약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교권이 땅에 떨어진 현실을 반영하듯

선생님에게 토착 왜구라는 혐오표현을 쓰질 않나, 일반계를 간 민규와 가난해서 공고를 간 상권이의 이야기도 나온다. 모두 교육소설로 부족함이 없다. 절제된 위트와 유머, 날카로운 풍자가 저자의 필력에 그대로 녹아있다. 공교육에서 벌어지는 진짜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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