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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홀로 노래한다 ㅣ 세상과 소통하는 지혜 1
박세현 지음 / 예서 / 2020년 5월
평점 :
거미는 홀로 노래한다
신랑은 내게 “선생처럼 말하네~” 란 말을 곧 잘 한다. 아니꼬왔나보다. 뭔가를 얘기할 때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이런 말을 하겠지. 오늘의 서평도서 <거미는 홀로 노래한다>의 저자 박세현 시인도 이렇게 얘기했다. 자신의 실수는 누군가를 가르치려 했다는 것이라고. 시에 대해 감히 떠들고 비평했다고. 자크 라캉이 말한 사랑의 속성과 가르침의 속성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에게 없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는데, 여기에 더해 슬라보예 지젝은 누군가 앞에 ‘원하지 않는’을 삽입해야 한다고 말했단다. 종합해보자면 사랑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원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주는 것인가? 서글프다.
내가 생각한 정형화된 산문집과 달라 신선했다. 출판사는 책을 이렇게 평했다. 라캉과 재즈, 홍상수와 부카우스키, 이강 시인에 대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과잉 반복되고 있다고. 우습고 냉소적이고 자기고백적이라고. 잘 쓴 산문집이 아니라 읽는 이의 속을 시끄럽게 할 요소가 다분할 책이라고 말이다. 산문의 형태를 일그러뜨려 스타카토식 발언과 파편같은 시어, 단락, 자작 인터뷰들이 섞여 혼란스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다.
윤동주 시인에게는 ‘동주 선생님 시인은 일종의 누명이기도 하거든요 죽는 날까지 자기변명을 학습해야 하는 치사하고 더러운’ 이라고 받아친다. 차례를 보니 일관성도 없다. 그래서 더 예측할 수 없어 좋다. 두 통의 편지, 당신밖에 없습니다, 시인의 사생활, 빗소리듣기모임 임시총회 등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문장으로 내 눈을 유혹한다. 특히 시인의 사생활은 레제 시나리오 형식이라 마음속으로 장면을 상상하며 읽었다. 배경음악까지 깔아주니 그럴듯하다. 어떤 장면은 독자가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춤추기 시작하는데 마치 영화 ‘버닝’ 의 춤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라 덧붙였다.
짧은 단상에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통렬하고도 날카로움에 베인 느낌도 든다.
한 잔 할까?
노시인이 서재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양주일거라 미리 생각한 건 나의 불쌍한 통념.
내가 너에게 줄 것은 새벽기도밖에 없다
그러나 내 새벽기도를 너무 믿지 마라
잘 살아라
원주 가면서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다.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말이다. 그 말이 선명하다. 우리는 하는 데까지 한다. 그야말로 최선의 한계는 최선 그 자체일 것이다.
시와 산문을 애정하는 독자로서 이 산문집이 반갑다. 한 번 읽고 말 성질의 것이 아니다. 두고두고 곱씹어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