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시인선 23
김대호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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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시집을 읽을 땐 뒷부분의 평론가나 다른 시인이 쓴 해설을 맨 나중에 읽으며 내가 읽었던 느낌과 대조해본다. 거기서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을 하면 희열을 느끼고 시를 다시 읽어본다. 김대호님의 시집은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어떤 설명이 필요하기에 시로 풀어놓았을까? 많은 시들이 이 시집에 압축되어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기억에 남는다.

택배를 기다린다

자신을 반품하는 방식으로

(중략)

일생을 무엇과 파업 중이지만

나는 나를 매일 어디로 보냈고 어딘가에서 반송된 나를 다시 받았다

택배를 기다린다

(중략)

자신을 반품하는 방식으로

그 무엇이 나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제목처럼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활기였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무기력이 나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라는 시도 마음에 드는 시구를 많이 발견했다.

 

난 요즘 감정과 기분 외부의 소란까지 모두 모아서

씨실과 날실로 고요를 깁는 중이다

(중략)

내가 미리 준비해 둔 고요를 펴서

앙상한 내 몸을 덮어주고

비로소 우주 어딘가로 복귀할 것이다

 

  모래먼지를 털고 깊은 지층에서 나온 자신의 근친들이 혼수상태인 나를 덮어주고 우주로 간다는 설정은 죽음을 시각화한 표현같이 느껴졌다. 해설에선 제목과 같이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라고 덧붙이고 변명하고 반박하고 싶은 말들은 많겠지만 죽음에는 아무 말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시집에 언급된 시어들에는 인생, 시간, 반복과 같은 단어와 결이 다른 밀도, 중력, 방향 등의 생소하면서 결이 다른 단어들이 붙어 일종의 방법론적 계산을 해본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조합과 계산이 나온다. 늘 다시 계산하는 반복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실감을 구축해나간다고 표현한 것이 김대호 시집에서만 볼 수 있는 느낌이다. 다른 이들도 말했듯 몸의 감각으로 시를 표현한 그의 독특한 색깔을 만나고 싶다면 이 시집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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