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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박현준 지음 / M31 / 2020년 5월
평점 :
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단언하건데 나의 20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서글펐다. 저자보다 두 살이 많은 난 이미 30대 후반을 지나가고 있지만, 지난날의 나,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 서른 즈음까지 난 삶이 퍽 푸석푸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취업이었다. 스스로 자괴감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움츠러들었던 가장 작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에게 처방하는 자구책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인생이 이십대를 살아왔거나 살아갈 터이고 자신의 이십대가 교훈이나 감명 따위보단 자기본연의 보편적 해답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공감이 된다면 족할 터. 프롤로그부터 공감이 되기에 애정 어린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목차는 1장-스물에서, 2장-서른으로, 3장 時의 詩로 이뤄져있다. 스물에서 서른으로 우리가 건너온 보통의 순간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이렇게 기록하여 기억할 수 있다니. 저자의 모습이 멋졌다. 나의 그 시절 일기장이랄까 끄적임들은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러운 토로와 절규의 점점인데...어떤 것을 응시하는 저자의 태도나 생각이 오롯이 활자를 통해 전달되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를테면 ‘생선을 먹는 태도’에서 손에 기름을 묻혀 가시를 발라가며 알뜰살뜰 발라먹는 이가 있는가하면, 젓가락만 사용해 살코기만 휘저어먹으면서 가시철책(이 표현 참 멋지다!) 너머의 부분은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 사랑을 대입해 사랑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통찰하는 모습이라니. 맞는 말씀이다. 쾌락만 수용하고 기꺼이 희생하지 않으려는 후자의 태도를 목격하고 몹시 짜증이 나 썼다는 이 글 말미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기 1986’이란 시에선 신생아였던 자신의 모습을 저자가 태어났던 해로 제목을 붙였다. 아기일 수 있을 때 충분히 아기일걸. 이란 아쉬움과 후회가 묻어나는 첫 시어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이의 모습과 대비되었다. 내가 아기라는 생각을 지배할 수 있었다면 결코 엄마의 젖을 쉽사리 물지 못했을 것이라는 표현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터질 듯 만개하던 꽃봉오리가 시들어 결국 낙화했을 때라는 말은 엄마의 젖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음을 의미한 것일까 싶었다.
시란 그대가 있는 풍경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출몰하는, 기꺼이 읽혀지기 바라는 순간들일 것이다. 시집을 읽고 있진 않지만 매순간 시를 읽고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 역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 또한 그렇다. 시든, 수필이든, 아무 형식도 아닌 끄적임이든 내 감정을 표현하여 돌아가고 싶던 그 때를 기억한다면 적어도 손해는 아닐 터. 제목처럼 보통의 순간들을 잃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나’ 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