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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많으니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을냥이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4월
평점 :
이유가 많으니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이번 서평을 통해 저자 을냥이님을 처음 알았다. 책의 화자가 특이하고 신선해서 자꾸 눈길이 갔다. 부제; 묘생 9회차 고양이의 인간 상담소라니. 저자는, 아홉 번의 생을 산, 사연 많고 그만큼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고양이 상담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다. 자신과 자신의 고양이가 나눈 대화들, 또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고양이나 혹은 어느 지붕 위에 앉은 이름 모를 고양이들과 나눴을 법한 대화들을 전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진짜 말하는 고양이를 만나 상담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책은 첫 번째부터 여덟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고양이가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들로 나눠져있었다. 이를테면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라든지 ‘내 사랑만 이렇게 힘들까’,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 ‘때로는 상처가 힘이 된다’ 는 주제로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짧지만 묵직한 글밥과 함께 일러스트가 곁들여있어 책을 넘기는데 부담이 없었다.
난 서평을 신청할 때 이 책의 목차를 보고 여섯 번째 삶;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에 관심을 두었다. 소제목 중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란 내용이 눈에 띄었다. 사람은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멀어진 사람이 있다고. 자신을 피하고 있는 그를 보며 서운하기도 하고 왜냐고 묻고 싶지만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몰라 연락도 못하겠다고 말이다. 고양이는 말했다. 가끔은 누군가 내 존재를 소홀히 여기거나 잊어버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사는 게 지치고 바쁘면 사람들을 멀리 하게 된다면서, 지금 멀리 네 자리에서 네가 잘 지내주는 게 그 사람을 위하는 최선이라고 다독여주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일러스트 한 면을 차지한 네 줄의 문구는 이랬다. 이건 소제목 ‘배신감’ 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사람에 속고 실망하는 일은 진정한 내 사람을 솎아내는 과정이다. 사람은 당신을 실망시키지만 실망한 당신을 위로하는 것도 사람이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대화하는 느낌처럼 내와 내 반려묘가 대화하는 느낌. 마치 상대가 사람인 것보다 더 솔직하고 진실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느낌이 들어 이 에세이가 마음에 들었다. 나도 우리 동네 고양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말을 걸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