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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
천양희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
어릴 적 우리 집 책장에는 <신달자,유안진,이향아 신작시집>이 꽂혀있었다. <여자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여성문인들의 에세이집도 있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가 돋보였고 감각적인 심미감을 드러내는 문장들이었다. 오늘 다시 그분의 시를 읽게 되었다. 신달자님 말고도 천양희님, 문정희님, 강은교님, 나희덕님의 시들도 실려 있었다. 책은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사진들이 함께 삽입되어 있어 더욱 운치 있었다.
시를 읽으면 마음속에 쌓인 미세먼지가 말끔히 걷히는 기분이 든다. 그리하여 명경지수 같은 마음으로 사념이 없어진다. 그 안에 따뜻하고 울림 있는 시구들이 팍팍 꽂히고 이내 행복과 위안으로 충만해진다.
천양희님의 ‘웃는 울음’을 읽고 눈물이 찔끔 났다.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어느 방구석에든 울고 싶을 때는
소리 없이 우는 것 말고
몸에 들어왔다 나가지 않는 울음 말고
웃는 듯 우는 말고
시집와서 아직 분가를 못한 탓에 슬프고 때로 서럽고 울고 싶을 때 마땅히 울 곳이 없어 울음을 참느라 마음이 곰삭은 것 같다. 이 시구절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대개 신명조체의 글씨체로 인쇄된 시였지만 간혹 손글씨로 쓴 것과 같은 글씨체에 이 시들을 필사하고 싶어졌다. 언젠가 여성 시를 개척한 대표시인인 신달자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엄마와 딸은 너무 사랑하기에 가장 많이 싸우는 사이라고. 엊그제도 엄마와 투닥투닥한 통화가 떠올랐다. 같은 여자로서 이 말은 매우 공감되었다. 문정희님의 ‘남편’ 이란 시에선 남편의 존재를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라고 표현하여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듯 이 책의 시들은 삶의 고뇌를 여성적 감성으로 표현하여 내 마음을 울렸다.
읽고 차오르는 것은 품고, 버리고 비워지는 건 미련이 없어졌다. 이미 지나간 스무 살은 문정희님의 말마따나 ‘자유보다 더 많은 상처를 증거처럼 남기고 얼떨결에 떠나 버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