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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 전화기 너머 마주한 당신과 나의 이야기
박주운 지음 / 애플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궁금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직업군, 콜센터 상담원. 이 책은 박주운 작가가 자신이 5년 동안 경험한 전화기 너머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읽는 동안 마음이 짠해지고 답답해짐을 느꼈다. 감정노동자의 일선에 계시는 콜센터 상담원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저자는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기업의 인바운드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아 문의를 해결하는 곳. 먼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을 하는 아웃바운드보다는 수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고가인 공연티켓을 다루다 보니 좌석 확보에 민감한 고객이 많아 주의를 요하는 상담이 많다고 했다. 자칫 어느 정도 감정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게 슬펐다. 그렇지만 미소 띤 음성을 유지하는 게 상담원의 의무이기에 매일 시험에 들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입사 초반엔 철저하게 개인정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원칙대로 응대했다가 고객에게 불쾌감을 주었다고 융통성 없는 상담원으로 찍히기도 했다. 어떤 날은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전화를 받은 기억도 있다고 했다. 마치 심리상담소마냥 고객이 하소연을 늘어놓는 것이다. “네, 네”라는 감정 없는 대답으로 일관한 자신의 모습을 보니 그 상황이 너무 짜증나도 어쩔 수 없음에 자괴감을 느꼈을 것 같다.
콜센터의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콜센터를 직접운영하지 않고 아웃소싱업체에 맡기다보니 상담원을 콜받는 기계로만 취급하는 현실이 그것이다. 당장의 응대율을 올리는 것에만 집착해 진상고객이 목적을 달성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책에는 진상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진상고객의 유형이 나왔는데 욕설형은 기본이고 성희롱형, 협박형, 무시형, 상급자 바꿔형, 꼬투리 잡기형 등 많은 사례를 언급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는 일이 상담원의 책무는 아닐 터. 사례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허무해진다.
고객의 입장에서 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불만도 나름 존재할 수 있다. 상담원 특유의 과장된 말투와 과도한 친절을 거북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상담원들의 상담품질을 위한 평가는 점수 매기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 조금만 참아주시길 부탁한다고. 실제로 나긋한 음성은 아닐지라도 고객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한 상담원보다 기계적으로 응대하여 평가기준만 잘 지킨 상담원이 더 좋은 점수를 얻을 때가 많다니 말이다. 평가 방식이 바뀌기 전까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이 밖에도 콜센터를 이용할 때 유용한 팁도 실려 있었는데 가령 통화 연결 도중 끊지 않고 다시 전화하지 않기라든지 상식적인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차라리 한국소비자원이나 공정위 같은 민원기관에 의뢰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물론 그쪽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나의 문제 제기가 옳은지 재고해 보아야 하겠지만.
제목 중 유독 마음이 가는 제목이 있었다. <통장 잔고가 스트레스처럼 쌓이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콜센터를 퇴사하며 저자는 지난 5년을 살아낸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번 책을 통해, 전화벨이 울리면 크게 숨을 내뱉고 전화를 받는다는 상담원들을 떠올리며 고객의 입장에서 최상은 못되더라도 진상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