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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한 문장의 위로
유영만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제목을 보고 파란색으로 써진 문장인줄 알았는데 그 뜻이 아니었다. 마음의 파란을 일으킨 한 문장 한 문장이 엽서에 담겨 있었다. 파란만장의 ‘파란’ 이다. 작가인 유영만님은 이 문장이 ‘머리로 쓴 게 아니라 몸으로 남기는 얼룩이자 무늬’ 라고 했다. 독자들에게 삶의 파란을 일으키는 선순환이 반복되기를 기대한다며 응원했다.
자신의 소개 글에 새로운 지식을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잉태하고 출산하는 지식산부인과 의사라는 표현이 신선하고 유쾌했다. 붓글씨로 쓴 문장 글씨체와 내용들을 보니 작가의 성품이 엿보인다. <한계는 한 게 없는 사람의 핑계다!> 랄지,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 몸에 ‘때’만 낀다!>, <어휘가 없으면 어이도 없다!> 같은 문장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단호한 느낌이 든다. 글씨에 힘이 느껴지는 궁서체라 활개가 넘친다.
마음에 와닿는 한마디를 소개하면 이렇다.
<마음이 닫히면 마음도 다친다.>
관심은 관계를 유지하는 접착제이자 각성제이며, 사람은 관심 없이 자랄 수 없는 관계의 동물이다. 마음이 닫힌다면 이 관심에서 의도적으로 멀어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시쳇말로 ‘자발적 아싸’ 라고 부르는 아웃사이더가 생각났다. 대학생과 취준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어떤 결과에 2명 중 1명꼴로 자발적 아싸가 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하니 사람들은 스스로 혼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상처받기 두려워서, 감정노동에 신물이 나서 같은 이유가 있겠지만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가 <공부하는 삶>에서 “지성인은 개인주의의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고독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고립은 우리를 무기력하고 메마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했듯이 결국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므로 마음을 닫아 고립되어선 안 된다.
<‘안다’는 ‘안는다’는 의미다. 알아야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누군가를 잘 안다고 이야기할 때 정말 아는 것인지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맥락 속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를 안고 싶다면 잘 알기 위해 노력하자. 그러기 위해선 살피고 들여다보고 배려해야 한다. 내가 그를 제대로, 잘 안다면 기꺼이, 충분히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엽서집을 서평으로 써보긴 처음이지만, 이 문장들의 모음 또한 어록과도 같고, 책과 같기에 별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연말이다. 한 페이지씩 누군가에게 대신 하고픈 말을 골라 뒷면에 안부 인사를 곁들여 띄우고 싶다. 한 해 동안 고생 많으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