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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단단함 - 세상.영화.책
오길영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아름다운 단단함
책은 산문집인데 글을 읽어보면 평론 같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에세이에 대한 고찰이 와 닿아 감각적 글쓰기로 치부된 요즘 에세이와 달리 다시금 진지하게 ‘사유를 실험하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에세이의 뿌리는 지성과 개념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더 나은 아름다운 삶을 위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탐구하는 걸 주된 목표로 삼아 쓴 글들이라고 소개했다. 김수영의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을 따서 책 제목을 ‘아름다운 단단함’으로 정했다고. 와. 이거 쉽지 않겠다 싶은 마음이 들며 다음 장을 넘겼다.
크게 3부로 구성된 책은 세상, 영화, 책을 소재로 삼았다. 각각의 제재는 다르나 결국 더 좋은 삶을 찾기 위한 모색의 표현이다. 최근에 본 영화 ‘기생충’ 과 ‘사바하’ 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먼저 읽어 보았다. 올해 북미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외국어 영화로 등극한 영화 ‘기생충’. 지금 북미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제시카 송’을 들어보았는가? 극중 기정이 박사장네 초인종을 누르기 전 무표정한 얼굴로 ‘독도는 우리땅’ 에 맞춰 개사한 6초에 불과한 이 노래. 묘한 중독성이 있단다. 각설하고, 이 영화감독 봉준호는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계급관계의 문제를 다뤄왔다. 설국열차, 마더 등등. 기생충에서 주인공이 살고 있는 반지하층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들이 놓인 계급적 위치와 상징이 된다. 그들은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일자리를 위한 어느 정도의 거짓말, 사기행각, 기생충적 행동은 용납된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 이러한 불편한 행동들이 다소 충격적으로 해소된다. 감독은 이들의 선량함이 명확한 계급적 구분 위에서만 작동하며, 그 착함의 근거가 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또다르게 부각시킨 ‘냄새’ 는 거창한 이념의 충돌이 아니라 생활의 냄새로 이들 계급을 구분해 놓는다. 또한 영화 ‘사바하’는 곡성을 연상케 하는 오컬트 영화인데 악과 선의 경계에 관한 대사들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이른 바 대의를 위해 자신과 남을 희생해도 되는가? 라는 질문이 이 영화가 묻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은 종종 선의 외양을 하고 나타나는 악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엄마의 자장가가 들리는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엄마-보살의 이미지는 언뜻 클리셰처럼 보이나 이 영화는 그 둘을 설득력 있게 결합시켰다.
산문집에서 사용된 단어나 문장이 한번으로 넘길 수 없을 만큼 자세히 천천히 읽게 만들었다. 어렵기도 하고 빨리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독자로서 내공이 상당히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반면 아름답고 단단한 삶을 지향하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져 나도 깊은 사유를 위한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