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짊어진 당나귀 히말라야를 걷다 - 여행은 연애처럼 인생은 축제처럼
임대배 지음 / 아라크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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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짊어진 당나귀 히말라야를 걷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앞머리는 무성하나 두시머리는 대머리라고 한다. 앞에서 봤을 때는 잡기 쉬우나 한번 지나치고 나면 잡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p276

 

 이 책은 방송국 PD로 근무하던 저자가 은퇴 후 새로운 삶을 고민하며 친구 따라 히말라야에 갔다가 얼결에 글을 쓰게 된 것이라 소개한다. 그는 김선배와 함께 랄리구라스 붉게 피는 봄에,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을 여행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산길을 걸으며 자연을 만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이었다고 소회한다. 편히 걸을 수 있는 흙길, 험한 돌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끝없이 반복되는 여정. 우리 인생과 다를 바 없다고 느낀 그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때그때 메모를 했고 그것이 책으로 나왔다.

 

  그의 트레킹 여행기는 참 흥미로웠다. 글 중간중간 적힌 명언이나 노래가사, 책의 인용구절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 더욱 좋았다. 저자의 센스있는 감각이 돋보였다고나 할까. 단짝이라 아내에게 덤 앤 더머라고도 불리는 김선배와 함께 한 네팔 여행은 독자인 나도 참 부러웠다. 죽마고우도 아니고 나이 오십이 넘어 사회에서 만난 두 사람이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우정을 나눈다는 것. 나도 다행히 이런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다. 사회에서 만난 언니인데 함께 있으면 항상 유쾌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언젠가 그 언니와 함께 떠나고 싶다. 히말라야는 아니더라도.

 

  네팔의 마을풍경이나 안나푸르나의 모습이 컬러풀하게 삽입되어 있는데 특히, 김선배가 사랑한 도시 포카라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노후에 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마음을 준 도시였는데 함께 그곳을 가보니 그곳 사람들에게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급히 서두르거나 허둥댄다는 건 마치 영혼의 평온을 깨뜨리는 일인 듯하다. 북적거림이 없는 그 곳, 느리게 시간이 흘러가는 그곳은 여행자마저 느긋해진다니 나도 그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여기에 삽입된 문구는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음미하고 즐기는 기나긴 여정이다.’

 

  이 책의 제목 또한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어떤 챕터가 이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동물 중 하나가 당나귀인데 저자는 몽테뉴의 에세에서 이 책 제목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탈무드에도 나오고. 어려서부터 책만 많이 읽고 판단력이나 창의성을 키우지 않으면 결국 책을 짊어진 당나귀에 불과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나도 찔렸다. 읽기는 좋아하지만 실천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자칫하면 그 꼴이 날판이다. 인풋은 있는데 아웃풋이 없는 형국.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걸으면서 얻은 생각만이 가치가 있다고 했다. 저자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며 책은 한권도 가져가지 않았다. 때로 굴레가 될 수도 있는 책에서 벗어나, 거칠더라도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당나귀가 되고 싶었다고. 걸으면서 사색하는 시간이 이렇게 자신과 독자에게 힘을 줄 수 있는지 저자도 알았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느끼고 싶다면 저자처럼 여행하고 사색하기를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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