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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감촉 - 말랑말랑 보들보들 나꽁아꽁 일기
임세희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육아의 감촉
아이가 막 돌이 되었다. 잠을 못자서 좀비가 되어가다가 이제야 조금은 살겠다. 1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순간순간의 기록을 좀 더 세세하게 기록해놓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휴대폰의 사진은 아이로 도배되었지만 사진을 보고나서야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되새김질을 할 뿐이다. 이 책 <육아의 감촉>은 아이를 낳은 엄마가 사랑으로 육아의 순간들을 그린 일러스트 일기장이라고나 할까? 그림과 글이 매우 공감되어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순식간에 보고 다시 앞장을 펼쳐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다.
엄마꽁(엄마의 애칭)은 둘째를 가졌고, 첫째 다섯 살 나꽁이와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해놓았다. 아이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부르는 ‘엄마’라는 말이 어느 날은 ‘뻥!’ 하고 터지고 말았다. “나꽁아! 엄마 좀 그만 불러!” 하지만 사실, 아이가 엄마를 부른 것이 아니라 엄마가 종일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캐릭터에 ‘엄마’ 라는 글씨가 차곡차곡 쌓여 넘쳐 흘러버린 그림이 인상 깊었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말문이 터지면 엄마를 제일 먼저, 앞으로 가장 많이 부르겠지. 그 단어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지금을 생각하며 훗날 가득 담아도 넘치지 않게, 그렇게 큰 엄마라는 그릇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외출할 때 유모차 타기를 너무 싫어해서 10kg이 넘는 아이를 아기띠를 하고 안고 나가곤 하는데, 아기띠를 푸른 엄마의 감정을 저자는 찰떡같이 표현해놓았다.
-마치 오랜 시간 차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푼 것 같은 가벼움.
미처 알지 못했던 1인 1몸의 자유로움.
200% 공감이다. 특히 엄마와 아이가 맞닿는 곳은 땀범벅이 되어 옷이 흥건하게 젖어버린다. 무거운 아이를 내려놓는 순간 버거웠던 마음은 홀가분해지지만 이 또한 언젠가 혼자 남겨질 날을 위해 아껴둬야 할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몸은 힘들어도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엄마 몸 사용 설명서>란 제목의 일기를 보니
-발을 손으로 사용한다.
-배를 의자로 사용한다.
-등을 햇빛 가리개로 사용한다 등의 소제목과 함께 공감 가득한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안고 있는 아이에게 지글지글 따가운 햇볕을 쐬지 않게 해주려고 해를 등지고 앉아 내 등은 익어간 적도 있었고, 아이를 안고 있으니 손이 자유롭지 못해 발로 핸드폰도 번쩍 들어 올리는 능력이 생겼으며, 아직도 빠지지 않는 뱃살은 아이의 소파가 되어 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나꽁이는 아홉 살이 되었나보다. 그간의 기록을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 자녀에게 보여준다면 훗날 엄마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지? 나도 아날로그적으로 손일기를 써야겠다. 저자처럼 그림은 못 그리더라도. 같은 엄마로서 ‘내 일생 가장 치열한, 하지만 그 무엇보다 찬란한 육아의 기억’을 남겨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나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