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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산다는 것 - 다산 정약용이 생각한 인간의 도리, 그리고 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다산 정약용은 정치가이자 법률가였다. 그가 쓴 수많은 책들 중에 유배 중에 쓴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가 대표적이다. 그는 법과 관련된 직책으로 오늘날 법무부 차관보에 해당하는 형조참의라는 관직에 있었는데 여기서 올라오는 수많은 보고서를 직접 살피며 형법에 관한 나름의 식견과 안목을 키웠다. 흠흠신서에는 그러한 경험들이 녹아들어 있다. 형법과 법 행정, 살인 사건 판례와 비평을 실은 저술서인 흠흠신서 중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조선의 사례를 담고 있는 상형추의, 전발무사의 사례를 선별하여 편역하였다. 사건 개요와 검시 보고서, 관찰사의 보고서, 형조의 보고서, 임금의 판결문, 다산의 견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산은 정조 임금의 지지를 받으며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으나 그의 개혁안은 정적들의 공격을 받아 현실에 쓰이지 못했다. 그가 정치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일은 조선 후기 역사에 있어 참 아쉬운 일이다. 정조와 함께 법과 인정을 모두 고려하여 판결을 내리고 싶었던 그의 열망을 이 책으로 살펴보자.
강력범죄 수사의 모범 사례가 실렸다.
황해도에 사는 김천의가 길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석 달 동안 세 차례에 걸쳐 검시를 했는데도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미제 사건으로 그냥 매장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형조는 더 세밀하게 조사해보라는 명을 내렸고 네 번째 조사관이었던 서흥현감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는 김천의의 복부에 무언가 미세히 밟힌 자국을 발견했고 그것이 누군가의 발자국임을 알아냈다. 이런 흔적이 죽기 전에 생긴 것인지 죽고 나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앞선 세 차례의 조사가 너무 허술했음은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용의자를 수소문하면서 김몽세라는 원한관계의 인물을 찾아냈고 그를 추궁했다. 머슴이었던 김천의는 김몽세의 며느리와 불륜 관계에 있었다. 아들이 요절하자 며느리는 슬퍼하기는커녕 아낙들과 히죽대며 김몽세의 염장을 질러댔다. 그때 김천의는 며느리를 허물없이 대하자 그를 죽이려고 어느 날 밤 불러내어 밟아 죽이고 유기한 것이다.
이 사건은 지연과 혈연으로 얽혀 저마다 사적인 이익을 취하며 쉬쉬하고자 했던 사람들 때문에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살해범과 유족 간 사적인 화해가 이뤄져 고발도 하지 않았으며, 유천복이라는 벼슬아치에게 청탁을 하여 관아에 보고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서흥 현감은 앞 선 세 차례의 조사를 뒤집고 제대로 수사하여 다산이 극구 칭찬한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흠흠신서에서 다산은 법률 지식은 물론이고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벼슬아치들을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한 서흥현감에겐 아낌없는 칭찬을 하였다.
서른여섯개의 범죄사건을 제시하며 다산이 살던 시대의 해결방법과 그의 의견을 첨부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읽힌다. 지금 우리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범죄사례들을 다산이 본다면 어떤 판결을 내리고 싶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