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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좋은 구절이나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 혹은 어떤 표시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읽다 만 부분을 나중에 쉽게 찾기 위해 종이 한 쪽 모서리를 살짝 접어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책에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다.


학창시절 수험서 외에는 책에 어떤 흔적도 없이 읽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초창기에는 책 표지 다음 장에 구입날짜와 서명을 해놓기도 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밑줄 긋는 남자라, 내가 도서관 사서라면 당장 그 남자는 도서관에 발도 못 붙이게 호통을 칠 것 같지만 어떤 책에 밑줄을 그었을까하는 호기심에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책은 따끈따끈한 새 책이지만, 초판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1994년이고 원작은 그 해 전인 1993년도 작품이다. 저자는 당시 프랑스의 젊은 작가로 주목받았던 카롤린 봉그랑이다.

책의 서두에는 쇄를 더해가며 자신의 책을 계속 찍어내고 있는 한국에, 그리고 그 책을 읽어주는 한국의 독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2016년 가을에 파리에서 보내온 작가의 글도 실려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에밀 아자르 즉 로맹가리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 이미 고인이 된 그를 떠나보내고 다른 정붙일 만한 작가가 없을까 하고 동네 도서관을 찾아간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을 읽다가 발견되는 밑줄과 책 말미의 추천책의 메시지를 따라 이름모를 그를 동경 아니 사랑하며 찾아가는 책의 여정이 전체적인 줄거리다.

스토리가 충분히 예상되는 흐름으로 이어지다가도 반전의 묘미도 있고 결말도 그런대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작품의 스토리 전개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그 많은 밑줄들이다. 이 소설에 어울리는 밑줄을 찾기 위해 그런 밑줄의 흐름을 품어낸 소설을 찾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었을까하는 점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앙드레 지드 그리고 국내에는 거의 소개가 안되어 있는 듯한 로제 니미에 등등 작품속의 작품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책을 읽을 때 앞으로는 나도 밑줄을 쫘악 그어가면서 문장을 음미해보아야 하나 싶지만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는 걸로 하겠다.


내가 마음으로 긋는 밑줄을 찾아낼 콩스탕스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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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풍겨오는 묵직함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이 책을 읽고 싶어진 계기가 있었다.

작년 아니 이젠 재작년이군.

2016년 연초에 KBS에서 특집방송으로 당시 BBC에서 방영되고 있던 전쟁과 평화 6부작 드라마를 1~2주 시간차를 두고 방영을 하고 있었다.

주말 밤에 하는 지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방송을 보게 되었고, 아마도 내가 본 방송은 2부, 3부, 5부 였으리라 기억된다.

마지막 6부를 보지 못했지만 너무 인상적이었던지라 책으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온라인서점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당시에는 동서문화사에서 출간된 책이 있었고, 민음사에서 번역작업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급한대로 동서문화사 책으로 읽어볼까 고민하던 차에, 사람일이라는게 다들 그렇듯이 전쟁과 평화에 대한 관심도 미지근해져버렸다.

작년 연말, 문학동네에서 전쟁과 평화가 마지막 4권까지 드디어 완간되었다는 소식은 미지근했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고 바로 구입해서 19세기 러시아로 빠져버렸다.


세 귀족 가문(베주호프가, 볼콘스키가, 로스토프가)이 19세기 초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맞닥뜨리게 되는 러시아의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소설은 세 가문의 이야기와 전쟁의 상황을 저자가 논평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당시 나폴레옹 전쟁에 관한 사전지식이 풍부하다면 읽는데 즐거움이 더 배가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모르는 사람도 즐거움을 느끼기에 큰 지장은 없겠다싶다.

여러 가문들과 많은 이름들이 나오기에 1권 중반부까지는 계속 책 앞쪽에 간단하게 쓰여있는 등장인물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러시아 귀족 사회의 모습, 남녀 간의 애정문제들이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계속 주의를 기울이며 책에 빠져들게 된다.


세 가문의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굳이 꼭 주연을 꼽자면 남자주연은 피예르, 여자주연은 나타샤가 될 것이다. 세 가문도 세 가문이지만 저자가 쿠라긴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특별히 미워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악역 구실을 하는 쿠라긴 가문도 중요하게 나온다. 쿠라긴 가문이 없었다면 세 가문은 조금은 더 편안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다른 악역 담당 가문이 등장했으려나...


BBC드라마에서 봤던 피예르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지라 책을 읽으면서도 피예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책에서는 엄청 덩치가 크고 뚱뚱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드라마에서는 귀엽고 통통한 이미지였던 것 같다.


당시 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평가들은 오늘날 학계에서도 의견이 다양하겠지만, 저자는 1850~60년대 당시에 해석되는 내용들과 관점에 대해 논평하면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그러한 이야기들이 전쟁의 현장 속에서 실제 인물과 가공의 인물들의 대화로 전개된다.

1812년 조국전쟁(러시아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파리로 패주하는 그 전쟁이다.)에 대해서도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전쟁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나폴레옹이 러시아의 극심한 추위를 예상못했다더라 라는게 고작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관점의 중심축은 어느 한 인물의 의사결정에 의해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역사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와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이 역사라고 강조하는 점이다.


소설의 말미에는 에필로그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전쟁 후 세 가문의 상황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1820년 연말의 분위기를 들려주고, 2부에서는 역사학에서 대해서 저자의 주장을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 미천한 깜냥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


책을 덮고 나서 이 여운을 더 길게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혹시 영화가 있는 지 검색해보니, 오드리 햅번이 나타샤로 열연한 1956년도 작품이 있었다. 런닝 타임이 3시간 28분짜리다. 집에서 보는 올레TV에서 무료로 시청가능하기에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청하였다. 원작을 읽지 않으면 영화 내용을 따라가기가 버겁겠다 싶었다. 중간중간 건너뛰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훼손하지 않은 채 많은 가지치기를 여기저기 했음에도 런닝 타임이 이렇게 길게 나온다는 것은 이 작품이 얼마나 방대한가를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으리라.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기려면 적어도 1시간짜리 10부작 드라마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BBC드라마나 영화나 공통적으로 안드레이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눈에 들어온다.

피예르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지만 영화에서의 피예르역을 연기한 헨리 폰다는 이미지 자체가 좀 동떨어진게 아닐까 느꼈다.


BBC드라마도 다시 한번 찾아서 봐야겠고,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도 그리고 다른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들도 읽어나가는 2018년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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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편견의 세계사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김희숙.정보라 옮김 / 생각의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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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책의 원제는 [관용]이다.

제목에 또 속았나하는 한 켠의 의구심을 안고 책을 펼쳐 들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오히려 반가운 내용이었다.

평소 서구 세계를 관통하는 기독교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일부러 종교적인 내용을 찾아 읽으려는 시도는 선뜻 내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 책은 관용과 불관용으로 점철된 서구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심에 바로 기독교가 있다.

 

기독교 이전의 오랜된 과거의 신들로부터 시작해서 초기 기독교 사회, 중세, 종교개혁 그리고 현재(세계1차대전 당시)에 이르기까지 인물, 용어 등의 키워드를 소제목으로 내세우면서 관용과 불관용이 서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많은 비유로 이어지는 문장들을 단번에 소화시키기가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교과서의 연표들로 정확하게 재단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소제목에 따라 하나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기에 술술 따라 읽어가다 보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음미해 볼 수 있을테지만, 그것이 또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글자들만 멍하니 따라가다 보면 이내 미로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더구나 생소한 부분들이 많은 책의 전반부는 더더욱 그러하다.

 

가령, 로크에 대해 설명하면서 리바이어던이 언급되고 그것을 쓴 홉스에 대해 다시 설명이 이어지고 그에 따른 곁가지들로 이리저리 들어가다가 다시 로크로 돌아온다.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로크에 관한 내용인지 홉스에 관한 내용인지 금새 헷갈리고 마는 것이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초대 교회가 자리 잡던 과정과 종교개혁 전후의 모습들이었다. 그 시절의 역사를 깊이 있게 알지 못한 탓에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그런 와중에 언뜻 군생활 시절의 종교행사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알테지만 군대에서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주말 종교행사에 참석하고들 한다. 모처럼 영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도 되겠거니와 민간인을 볼 수 있다는 축복도 누릴 수 있는 등 등의 나름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주된 이유는 바로 초코파이일테다.

 

종교행사가 참석하게 되면 으레 군장병들 고생한다고 간식거리를 챙겨주시는데 보통은 초코파이를 나눠준다. 그 주말이 지나고 나면 여러가지 정보들이 영내를 떠돌아다닌다. 어디는 두 개 준다더라, 어디는 오리지날 오리온이더라, 어디는 몽쉘이던데...

돌아오는 주말이 되면 참석하는 종교행사 장소가 각 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오로지 성경에 쓰여 있는 것만 믿겠다거나 삼위일체를 부정하겠다거나 등등의 각 자 나름대로의 신앙적인 이유로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끼리도 이렇게 이합집산이 되어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들이 주말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군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한다.

 

 

이 책은 초판이 1925년 그리고 개정판이 1940년에 나왔다.

저자가 오늘 2018년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여전히 불관용이 득세인 시대라고 느꼈을까 아니면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유감없이 누리고 있는 관용의 시대라고 보았을까?

 

그 시절에 비하면 많은 자유가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억압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존재한다.

 

 

 

관용의 사회는 어떤사회일까?

일찌기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미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신으로 가는 믿음의 길은 하나일 수 없고, 각자 믿는 바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어느 길이 신의 뜻에 부합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그네들의 신이 벌하면 될 일이다. 내 뜻과 다르다고 해서 왜 자신이 타인을 벌하려 드는가. 신의 뜻을 하찮은 미물이 어찌알고 말이다. 물론 유신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겠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종교는 물론이거니와 온 사회에 관용의 정신이 뿌리내려져 더이상은 사상의 문제로, 정치의 문제로, 종교의 문제로, 양심의 문제로 억압받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전문적인 종교사를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을 잘 알지 못하기에 그것들보다 부족할 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나름대로 역사의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 평하고 싶다.

저자도 말했듯이 저자가 중세나 그 이전에 태어났다면 이 책은 세상에 빛을 못봤으리라.

불관용의 시대에 억압받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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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수학 잠 못 드는 시리즈
도미니크 수데 지음, 배유선 옮김, 김용관 감수 / 생각의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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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릴 적 가장 좋아는 과목이 산수, 학창시절에는 수학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 살 한 살 세월을 먹어감에 따라 숫자와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도미니크 수데의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수학]은 제목에서부터 작금의 나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줄 수 있겠다싶어 선뜻 손을 내밀어 읽어본다.

재작년 즈음에 읽었던 우부카타 도우의 [천지명찰]에서처럼 내 뇌를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수학적인 문제를 기대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책은 80여가지의 마술 트릭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수학적인 지식(사칙연산, 정수, 기수법 등등)이 가미된 마술 트릭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과는 조금은 상이했지만 평소 궁금했던 카드 마술 등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하겠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자녀들과 함께 한 꼭지씩 같이 해보는 것도 아이들의 정서함양은 물론 수리력, 논리력 향상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설명들이 더러 있어서 문맥을 여러번 읽어보지 않으면 마술을 직접해 보면서 시행착오를 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원저의 설명도 그런 것인지 번역상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가령, 카드 마술에서는 용어 하나의 누락으로 큰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책 제목의 선정이다.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이미 발행되고 있는 책들의 같은 시리즈물 성격으로 제목을 선정한 것 같으나, 이 책의 경우는 부제인 <신기한 마술 수학>이 제목으로 전면에 더 부각되는 것이 적합하지 않았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방안에서 나홀로 또는 가족과 함께 마술의 세계로 여행할 수 있는 환상적인 매력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책에서 많이 나오는 트럼프 카드나 기타 소모 비품들을 사은품 혹은 세트구성으로 해서 책을 판매하는 것도 출판사에서는 또하나의 전략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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