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개정판
이석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만남은 뒤돌아 보면 나를 더 발전시키기도 했고 또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게 친구가 됐든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됐든 그 당시에는 그게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마치 가랑비같은, 시나브로 젖어들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강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면 나는 앞으로 어떡하지?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기도,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본 것 같기도 한 이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으며 이 중년 아저씨의 인생 한자락을 감정 하나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본 기분이 들어 왠지 멋쩍어진다.
 경험이 쌓일수록 공감되는 문장들과 등장인물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 속에서 수긍이 되는 행동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 이 책은 내가 40대, 50대가 되어 다시 읽어도 또 다른 느낌으로 와닿을 것 같단 예감이 든다.

 

어려서는 별 대가 없이도 넘치도록 주어지던 설렘과 기대 같은 것들이 어른이 되면 좀처럼 가져 보기 힘든 이유는 모든 게 결정되어 버린 삶을 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벌 수 있는 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 들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정해져 버린다. 장차 여행은 몇 나라나 더 가 볼 수 있고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으며 내 힘으로 마련할 수 있는 집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가 점점 계산 가능한 수치로 뚜렷해지는 것이다. 남은 생이 보인다고 할까. 허나 아무리 어른의 삶이 그런 것이라고는 해도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한 채로 몇십 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고 생각하기에 나는 노력하기도 했다. 너무 빨리 결정지어진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은 생에서도 한두 번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기길 바라며 살고 싶다.
P.1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