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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평점 :
각자의 아파트에 갇히게 된 이후, 상하이 사람들은 고립의 병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사회적 단절의 총체적 징후인 노인 방치 현상이 너무 심각해져, 정부가 최근에 그것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선언했을 정도다. 정부의 교육 올림픽에서 낙오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범죄도 늘었다. 고립된 환경은 또한 우울증, 그리고 새로 지어진 깨끗한 고층 빌딩 단지의 자살률 증가를 낳았다. 이는 금기의 주제였지만 마침내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상하이에서 세대 간 단절 징후, 청소년 범죄, 성인 아노미 현상은 안정된 이웃 관계를 빼앗긴 그 도시 토박이 가정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짓기와 거주하기> 中 P.167
위의 글은 1900년대 이후의 상하이 도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너무 자명하다. 「짓기와 거주하기」는 '도시란 인간에게 무엇이고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기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린'이라는 키워드가 핵심인데 '열린 도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열린' 관계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고 배려하는 관계, 정보의 흐름이 차단되지 않고 소통하고 교류하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공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 타자와 나 등 모든 상대적 관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이 가능한 관계, 그럼으로써 스스로 변화 가능하며, 외부의 변화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관계다. 열려 있다는 것은 이상한 것, 궁금한 것, 미지의 것, 가능성을 수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P.456)
우리나라 곳곳에서 한창 재개발이 진행 중에 있다. 낙후된 건물들을 밀어내고 아파트, 빌딩들을 천편일률적으로 올리고 있어 요즘엔 다른 도시를 가도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다름없음에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재개발로 인한 장단점이 우리나라 경제, 사회에 고루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도시사회학의 중요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짓기와 거주하기」에는 시대와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의 도시와 주거 공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중 당연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송도신도시'다. 송도는 미래 고부가 가치 정보 산업과 무역, 금융, 기술 업무들이 이루어질 국제 비즈니스 타운,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춘 주거 도시로 생활에서 교통, 산업, 정보까지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첨단 복합 기능 도시를 목표로 건설되었다. (출처: 지식백과) 저자는 이런 송도를 보고 스마트 시티는 '왜 그것이 거주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효과를 내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윤리적 차원의 문제도 지적하는데 예를 들어 A에서 B로 갈 수 있는 최단거리를 안내함으로써 여행 중 만나는 타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삶의 면면을 볼 수 있는 경험을 방해하는 등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폐쇄적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며 "꼭 그래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스마트 시티에 살면 확실히 편하고 신경 쓸 거리가 적어진다. 하지만 이런 간편함에서 오는 폐쇄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인간미 없는 도시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기능만을 강조한 스마트 시티로 인해 동네 사람들과 친분 쌓기도 힘들고 심지어 옆집 주민 얼굴 보는 것도 흔치 않은 요즘,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재미있게 살던 옛날이 때로는 그립기도 하다. 우리의 도시 계획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걸까.
「짓기와 거주하기」를 읽는 동안 저자의 지적 깊이에 여러 번 놀랐다. 동시에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수많은 의문점을 갖기도 했다. 도시계획자들과 기업인들이 '살 만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무엇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가.'를 윤리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