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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의자 ㅣ SN 컬렉션 1
이다루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0월
평점 :
위 책은 서평단 당첨 도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제공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책 표지부터 무언가 창의적인 그림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에 꼭 있을 것만 같은 그림이다.
언뜻 보면 sf소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이 책은 인간의 관계와 서로의 내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단편소설 모음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내 인상에 가장 뚜렷하게 남은 '기울어진 의자'라는 소설부터
늘 집밥을 해주시는 것에 익숙해져버려 잊고 있던 엄마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엄마와 딸기, '김칫국' 이라는 소설도 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다 이어져 있지 않은 건 아니고 중간중간 학부모들의 심리와 서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간에서는 주인공들이 동일하게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따금 두꺼운 장편소설처럼 그 자리에서 계속 읽지 않으면 이후에 내가 어디까지
어떻게 이해했는지 까먹거나 도리어 다시 이전장을 보게 되는 상황은 아니다.
이 소설 중 이어지는 이야기 역시 결국 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고 그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사람이라면 비슷한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바바리 이야기'를 시작으로 누구 엄마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그들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며 학부모들끼리의 모임을 갖기도 하고
단톡방을 만들고 자녀들의 수영교실 등에 함께 따라가기도 한다.
그러던 중 다른 사람보다 남 일에 참견을 하기 좋아하고 남이 불편할 수 있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던 영서의 어머니는 어느날부터 소외되기 시작한다.
다른 학부모의 긴 머리카락을 보며 자르는게 훨씬 낫다는 식의 칭찬아닌 칭찬을
할 때부터 몇몇 학부모들은 그녀를 불편하게 여기고 결국 그녀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허락없이 이상하게 찍게 되자 다른 어머니들은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영서 엄마를 제외한 사람들끼리 단톡방을 만들고 모임을 갖게 된다.
아.. 내가 아직 학부모가 되진 못했지만 앞으로 내가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어렴풋이 우리 엄마가 느꼈을지도 모를 감정들이 이야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잘 놀다가도 특이한 이름이나 행동을 보고 그 아이를 놀리기 시작한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그러한 모습이 '어릴때니까 괜찮겠지' 라고 넘어가지 못한다. 놀림을 당한
아이와 놀림을 준 아이가 중심이 아니라 은근히 엄마들의 신경전으로 이어진다. 마치 아이들의
싸움이 어머니들의 싸움이 된 것처럼.. 그렇게 모임은 분열이 난다.
그리고 준우엄마는 이 상황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막강한 시련이나
가정환경을 가진 사람이 성장하고 이겨내는 스토리가 아니다. 그냥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일들과 그 감정을 담백하게 드러낸 소설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에 몹시 불편해지거나 짜증이 나더라도 '한 방의 사이다'를 기대해선 안된다.
우리의 인간관계와 삶이 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이상향의 관계는 맺고 끊는것이 확실하고
내가 힘들 때 이야길 들어주며 서로 위해주는 친구나 가족이 있으면 그게 최고라고 느낀다.
근데 그게 쉽지 않으니 이상향이 됐을 터. 현실은 이도저도 아닌 관계에 얽매여서
시간과 감정을 허비하고 막상 외롭고 힘들 때 내 이야길 들어줄 사람 한 명 없다.
어렸을 때 우리 평생 가자며 소울메이트를 운운하던 친구들도 자신의 일과 생활에
바쁘기에 쉽사리 내 힘든 일을 말하기도 그렇다. 그렇게 씁쓸하게 어찌어찌 주변 관계를 유지하며
우린 살아간다. 초년생땐 그것들이 너무 날카롭고 무섭고 힘들긴 하지만 나이가 들고 여물어갈수록
'물로 채색한 것만 같은' 쉽게 증발해버리는 관계를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이 책의 제목으로도 선정된 '기울어진 의자'의 이야기도 좀 해 보고 싶다.
미진과 수정은 같은 회사의 비서로 근무하고 있다. 정규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들은 이 회사의 1년 계약직이다. 워낙 비서라는 직업 자체가 고되기도 하고 계약직이라는
불확실한 상황속에 근무하다 보니 이들은 굉장히 친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볼 앞으로의 미래는 서로 달랐다. 수정은 결혼, 아이를 생각하기보다
비서라는 일이 자신과 잘 맞았기에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의 반면 미진은 이 일이 자신의 적성과 그리 맞지 않아 일을 마친 후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1년 계약이 끝난 날 둘은 한바탕 술을 마시며 서로에게 힘내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그 순간 둘의 이야기는 약간의 해피엔딩이었기 때문이다. 수정은 자신이
원하던 회사에 합격했고 미진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수정 역시 같은 회사의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둘 다 자녀도 있다. 그러나 수정은 높은 계급까지 올라갔기에 더 많은 업무가 주어졌고
아이와 놀아주거나 집안일을 하는 대신 오늘도 일터로 나가야 한다. 미진은 자신보다
잘 가꿔진 수정의 외모와 손톱, 커리어가 순간적으로 몹시 부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쓰레기를 버리라고 남편에게 잔소리하던 수정의 모습, 또다시 바쁜 일터로 가기 위해 바쁘게
일어나는 수정의 모습을 보고 미진은 또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 대답이 바로 '기울어진 의자'다. 수정이 앉아있던 그 의자는 네 개의 다리 중 두 개나
빠져있었다. 그리고 그 수평을 맞춰보려 했지만 손을 놓자 바로 기울어졌다..
내 생각이 전부 맞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람은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걸
보여준 게 아닐까? 우리 모두 의자라고 하면 네 개의 다리를 모두 갖추고 반듯하게 서 있는
의자가 몇이나 될까 생각한다. 또는 선천적으로, 아니면 인위적으로 내 다리를 부러뜨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의자일거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든 서로 붙잡아 주는 게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놓아버리면 다시
기울어져 버리는 나지만 그래도 붙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난 어떻게든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날 힘들게 하고 나와의 관계를 무참히 짖밟는 사람들이 나의 다리를 부러뜨려 놓더라도
나에게 따스함을 주고 보탬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부러진 다리를 다시 잡아준다.. 인간관계란
그것의 연속일 거다.
너무 좋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일일이 다 말씀드리기엔 너무 긴 포스트가 될 것만 같아
이 정도로 말을 마친다.. (정말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각종 감정의 집합체다 보니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