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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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페이지의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이야기의 힘을 통해 인간 내면의 치유와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평범한 중년 청소부 재니스를 중심으로, 말하고 듣는 행위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각자 속으로 간직해온 상처와 열망을 이야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풀어나가는 과정을 차분히 탐구하며, 독자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재니스는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며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마치 수집하듯 머릿속에 모아 둔다. 그녀의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이야기 수집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조차 숨기고 싶었던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작품 초반부에서 재니스는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담담한 태도로 "말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규정하지만, 점차 그녀의 과거와 속내가 드러나면서 독자는 그녀에게 숨겨져 있던 깊은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재니스의 변화는 B부인과의 만남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B부인은 그녀가 청소하러 다니는 집의 괴팍하고 예민한 주인으로, 책 초반에는 다소 반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점차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재니스와 B부인은 서로의 상처를 꿰뚫어보고, 서로 치유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관계로 발전한다. 특히 B부인은 재니스가 자신을 '청소부'로만 제한하며 살아왔던 내면을 바라보고, 그녀가 진정으로 고백하고 치유받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그들 사이에 깊은 연대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티베리우스라는 또 다른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티베리우스는 B부인의 아들로, 그녀의 집을 대학에 매각해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싶어 하는 간교한 인물이다. 재니스와 B부인은 그의 계획에 맞서 싸우며 서로를 돕는다. 이 갈등을 중심으로 작품은 긴장감 있게 전개되며, 재니스의 내면 성장 과정도 한층 더 구체화된다. 특히, 그 투쟁 속에서 재니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폭력적인 양부와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용기를 얻는다. 그녀는 열세 살 때, 양부의 학대를 피해 동생을 지키기 위해 양부를 죽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녀가 평생 동안 느껴온 죄책감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내렸던 선택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선택이 어머니와 동생의 삶에 남긴 상처를 떠올리며 깊어진 것이었다.


재니스가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순간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백을 통해 비록 물리적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조금 더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변화를 통해 이야기가 가지는 본질적인 힘을 명명한다. 즉,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연대하게 하며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야기를 열망하는가? 이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결핍과 상처를 메꾸어주는 본질적이고 인간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단순히 감동적인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힘이 단순히 개인적 치유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개인들을 연대하게 하고 사회 속에서 관계를 재구성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만들고, 타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며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이 소설은 이야기란 단순히 삶의 조각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하고, 중요한 관계를 세우는 연결고리라는 점을 일깨우는 데 성공한다. 샐리 페이지는 자신의 섬세한 문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으며, 재니스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행위'에 담긴 가치와 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특히 우리의 삶에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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