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학자이며 소설가인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 그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기 직전에 꿨을 법한 상상 속의 꿈을 기반으로 하여 시간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이색적인 소설이다. 이 책에는 각 장마다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독특한 세계가 펼쳐진다. 저자가 만들어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시간은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원처럼 순환하기도 하며, 느리게 가기도, 빠르게 가기고, 완전히 정지되기도 한다. 이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우리와 똑같이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불행해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란 존재가 시간과 불가분의 연관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다루면서 두 개념의 통합적 성질을 강조하는데, 왜 저자는 공간을 상당부분 배제하고 시간에 집중하게 되었을까?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찬찬히 소설 속 장면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나는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통해서 그에 대한 답을 구현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은 인간 경험의 본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공간은 배경으로 존재하며, 시간과 분리할 수 없는 속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많은 예술 작품에서 공간은 고정되어 있어도, 그 안의 시간 흐름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곤 한다. 반면 시간은 공간에 비해서 독집적인 존재로 인정받곤 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언어 생활에서도 시간은 독립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쏜 화살 같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느리게 흐른다, 빨리 흐른다 등등. 아마도 저자도 그런 인식론 속에서 인간에게 시간이 갖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영원히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영원히 살 수 있으니 언제든 해도 돼, 굳이 지금일 필요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체험을 다 하며 현재를 향유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두 부류의 생각 모두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이렇듯 인간은 동일한 공간에 있어도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물리적 시간 왜곡을 심리적 상대성으로 확장한 저자의 예술적 창의성이 너무 잘 드러난 에피소드여서 이 부분이 내게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하여 나는 시간은 그를 경험하는 사람의 주체적이고 감정적인 체험의 핵심이라는 걸 배웠다. 




또한 저자는 시간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힘이며, 인간은 시간을 바탕으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아간다고 본다. 이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위대한 시계탑 외에는 그 어떠한 시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일 것이다. 해당 에피소드 속에서 인간은 일상을 살다가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시간의 손길을 느끼고, 그럴 때마다 거대한 시계탑에 가서 절을 하며 경배를 한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설정이긴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는 공간이 아닌 시간이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름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싶어한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이어진다.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참으로 어리석게도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흘러간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거나 하는 감정은 인간의 이러한 우매한 집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저자는 시간이 되돌아가는 세계나, 시간의 축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흐름이 늦어지다가 멈추는 세계 등을 등장시켜서 시간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풀어놓는다. 이 부분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장악하고 지배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심이, 얼마나 현실의 의미를 약화시키는지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라떼(나 때는 말이야)는 이란 꼰대 발언은, 이런 욕망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과학에 문외한인 일반 대중에게도 상대성 이론은 공간보다 시간 개념이 더 직관적이다. 시간 팽창이나 왜곡 같은 것은,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서도 다루어지듯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쩌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에, 난해한 공간보다 친근한 시간 개념을 빌려와 우리 삶을 반추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세계도 아닌 나의 세상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미안해 하지 않으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까. 내 삶의 불가분의 존재인 시간에 대해 탐구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던지는 철학적 사유는 깊은 울림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