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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채근담 - 인생의 고비마다 답을 주는
홍자성 지음, 유키 아코 엮음, 박재현 옮김 / 부키 / 2025년 4월
평점 :
고래로부터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 근래에는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장르들 사이에서 내 인생 책을 딱 한 권 고르라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접했던 명나라 홍자성의 『채근담』을 주저 없이 꼽을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철학이나 고전문학보다 동양의 책들을 먼저 접했다. 그런 경험 덕분인지 지금도 동양의 사상과 사고방식은 내게 아주 친근하게 느껴진다. 『채근담』은 불교, 도교, 유교를 아우르며 삶에 대한 통찰을 전해 주는 책이다. 독창적이고 풍요로운 동양 사상을 후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가장 동양적인 가르침을 가장 쉬운 언어로 전달하며, 동양적 세계관의 틀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느낀다.
십수년 전, 자기계발서가 낯선 분야로 여겨지던 시기에도 나는 『채근담』의 가르침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내 삶의 좌우명처럼 자리 잡은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閑中不放過 忙處有受用한중불방과 망처유수용
한가할 때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면 바빠졌을 때 큰 힘이 된다.
『초역채근담』 204쪽
이 한 줄은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삶을 살아가는 핵심 원칙이 되었다. 나는 겨울을 맞아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아두는 다람쥐처럼, 하고자 하는 일을 그때그때 미루지 않고 바로 시작하는 편이다. 일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일이 쌓여서 정신없이 바빠지는 순간도 종종 찾아온다. 하지만 채근담의 가르침에 따라 미리미리 일을 해치우는 습관을 들인 이후로는 마감에 쫓기는 일이 거의 없어져, 덕분에 하루하루를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채근담』에는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철학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나이가 들고, 삶의 속도와 상황이 변해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좀 다른 구절들이 내게 새로운 울림을 주었다. 과거에는 치열한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미리 준비하고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무엇인가를 덜어내고 비우며 쉼과 여유를 찾으라는 메시지에 눈길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성장과 변화가 『채근담』의 구절과 만나는 순간, 고전은 매번 다른 미덕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새롭게 울림을 준 구절을 발췌해 본다.
欲持平淡之心以過適,則寧減事以能安靜,毋多事以滋紛擾
欲守散淡之趣以全真,則寧不才以保吾天真,毋多才以喪吾本性
욕지평담지심이과적, 즉영감사이능안정, 무다사이자분요
욕수산담지취이전진, 즉영불재이보오천진, 무다재이상오본성
온화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살고자 한다면 새로운 일을 즐기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낫고, 재능이 많은 것보다 재능 없이 본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낫다.
『초역채근담』 220쪽
이 짧은 구절에는 유교의 절제, 도가의 자연스러움, 불교의 내적 평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이 구절을 읽고 있으면, 명나라 때 쓰인 책임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전하는 메시지가 현대의 마음챙김적 사고와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 지치고 바쁜 세상 속에서 여전히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이유는, 쉼에 대한 단순한 갈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시대에 휩쓸려 떠밀려 가는 삶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노를 저어가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여전히 더 강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채근담』은 이렇게 각자의 삶에 등불이 되어줄 구절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책 속 가르침이 불변하는 진리의 화석이 아니라, 독자의 삶과 상황에 따라 새롭게 울림을 주는 고전이라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 속에서 작은 등불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이 짧은 서평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