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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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모여 춤추는 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동그란 지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으로 빼곡할 것이다.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놓고 떠난 이들은 분명 즐거웠을 것이다.”

 

여기 외국에서 한 호텔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있다.

일본도, 태국도, 필리핀도 아닌, 변변한 관광지 하나 없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호텔의 이름은 환상의 나라 원더랜드인데 어쩐지 사장님은 환상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인다.

깐깐한 원칙주의자에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고, 언제나 다나까 말투를 고수하는 고복희 씨가 호텔 원더랜드의 사장님이다.

관광지와 가깝지도 않고, 특별히 입소문이 난 것도 아닌 탓에 호텔의 재정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가고, 고복희 사장님은 할 수 없이 '한 달 살기'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한다. 호텔에서 한 달간 숙박하며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의 첫 번째 손님은 바로 한국인 박지우. 취업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젊은이다.

고지식한 고 사장님이 딱 싫어하는 손님 타입인 박지우가 오면서 원더랜드의 이야기가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다.

 

저자 문은강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책인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가 저자의 첫 장편소설이다.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책의 주인공은 고복희이지만, 고복희가 중심인 이야기는 아니다. 고복희에게서 박지우로, 박지우에게서 안대용으로, 초점자는 계속해서 바뀐다. 각자가 보는 세상과 살아온 삶이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이 소설은 사람 사이에 대한 정을 주로 다룬 소설이지만, 그 안에서 어쩔 수 없는 참담한 현실도 함께 담고 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만 했던 사람과 꿈꿨던 미래가 눈앞에서 가루가 되는 상황도 함께 담겨 있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는 내용 안에 함께 담겨 있는 또 다른 이면에 그 부조리함이 더욱 상기되었다.

나는 고복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삶이 안겨주는 좌절을 견뎌야 하는지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고복희는 단단하고 의연한 인물이었다. 주변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가슴 아팠다. 매도 많이 맞아 봐야 요령이 생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주인공은 큰 사건을 겪지 않았다. 주인공 자신이 크게 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점차 변해 간다.

주변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도 꽤 멋진 일 아닐까.

“이따금 우연처럼 찾아오는 순간은 저금하듯 꼬박꼬박 모았다.

새까맣게 어둠이 덮쳐오면 꺼내 보려는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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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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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돈을 좀 벌었다. 꽤 된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 난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는데,

복지 단체에 기부하려니까 왜 그렇게 허전한지.

이제 와서 핏줄 얘기하는 걸 참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꼭 너희들, 바로 내 핏줄에게 물려주고 싶구나.

일본에서 택시 회사를 했다.

이번에 정리했더니 한국 돈으로 한 60억 되는구나. 너희들에게 물려주면 세금을 제하고도 거의 40억은 된다고 하더라.”

 

할머니의 60억에 온 가족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부터 할머니 환심 사기 전략이 시작되는데,

할머니의 60억은 과연 진짜일까?

대책 없고, 뻔뻔하고, 기상천외한 정끝순 제니 할머니가 온다!

 

여기 답 없는 한 가족이 있다.

슈퍼마켓 사장님인 어머니와 사업하는 고모는 돈을 밝히고, 아버지는 정치판만 기웃거리고, 아들은 마흔이 넘어서도 취업을 못한 백수다. 그나마 딸과 과거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만 좀 괜찮아 보인다.

이런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찾아온다.

67년 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밀고하고 일본 순사를 따라간 민족의 배신자인 할머니가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초인종을 몇 번이나 누르고 원래 살았던 집인 것처럼 당당하게 돌아온다.

할머니를 보고 이를 갈던 고모와 할아버지, 다른 가족들은 할머니의 60억 이야기를 듣고 입을 딱 다문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60억 쟁탈전, 할머니의 60억은 과연 사실일까? 67년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저자 김범은 2009년 단편 「치즈버거」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할매가 돌아왔다』는 저자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출간 즉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이 계약되며 큰 호평을 받았다.

 

"할머니는 거실에서 왜 창밖만 바라보나요?"

한동안 작품에만 몰두하던 할머니. 수줍은지 얼굴을 붉혔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네 아비도 너도 동주도, 달자도 다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런데 왜 창밖을?"

"직접 보긴 뭣해서 창에 비친 모습을 보는 거란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볍고, 유머러스하다. 할머니를 당장 내쫓으려던 가족들이 돈 앞에서 태세를 전환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럽고, 거기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 없이 그저 관전하기만 하는 주인공은 한심하면서도 우습다.

 

 

그 웃음 속에 할머니의 사연은 일차적으로 가려진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천천히,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부드럽게 풀려 나온다.

어느 시대에서든 역사에서 주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회는 사뭇 다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민족을 배신하고 남편과 자식을 버린 채 도망쳤다가 67년이나 지나서야 뻔뻔하게 돌아온 할머니. 이것은 주류들의 기억이고 시선이다.

훌륭했던 위인들도 여성과 약자의 입장에서는 영 질 좋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묻히고 사라졌던 사람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준다.

그리고 이 우스운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실 절대 다수의 입장에서만 쓰여진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생각했다. 좀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좀더 많은 여성들이,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것을 들어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피할 수 없는 길을 피하면 그 대가를 아주 오래도록 치러야 한다.

너도 참 어렵게 사는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엔 늘 정직해야 한단다.

피하면 길은 더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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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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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다면 당신의 주소를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정도는 알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입니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 어떻게 이 소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마지막 문장이 어떤 내용인지 알아본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자기 전에 읽었는데, 잘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분위기를 전부 뒤집어버리는 결말부였다.

소설을 쓴 작가도 정말 독특하다. 어떻게 생겼는지, 몇 살인지, 어떤 작품을 썼는지, 간단한 약력조차도 전혀 적혀 있지 않다. '복면작가', 이 한 단어뿐이다. 세상에 이런 저자 소개를 처음 봐서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는 작가라면 이름조차 필명일 확률이 높겠다. 작품만큼이나 작가도 기묘한 책이었다.

 

“인간이란 누구나, 여차한 순간에는 배우도 아닌데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법이에요.”

 

30년 전, 결혼을 약속한 한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날 당일, 식장에 신부가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는 그 후 다시는 신부를 보지 못한 채 일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랜 시간이 흘러 남자는 페이스북에서 오래 전 헤어졌던 연인을 찾아내게 된다. 반갑고도 그리운 마음에 남자는 연인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건다. 그렇게 둘은 처음 만났던 때의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대학 연극부의 실력 있는 각본가와 재능 있는 배우였던 한때를.

 

이 책은 그 둘이 주고받는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에 한 방이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좋아 잘 넘어가는 작품이었다. 한번 펼치면 계속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두 주인공이 나누는 편지에는 그들의 추억과 첫사랑 이야기로 넘쳐 난다. 둘의 예의바른 말투까지 더해져 애틋함과 서로에 대한 관심이 묻어났다. 둘의 대학 시절을 함께하는 느낌을 받으며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다.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멍했다. 마지막 문장만 계속해서 들춰 보기도 하고, '반드시 첫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라는 홍보 문구처럼 다시 첫 장을 펼쳐 보기도 했다. 과연 이 이야기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나는 여기서 더 말을 얹지 않겠다.

 

이 이상한 러브레터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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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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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능성 없는 어느 곳에서 문득 아는 사람을 보았다 착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누군가를 좇는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있었고 나에게도 있었을, 스쳐지나가는 일상 에세이, 김종관 작가의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이다.

저자는 그냥 우리가 흘려보냈을 일상을 한 번 더 돌아보고 따뜻한 눈길로 표현해낸다.

그 표현들을 보고 가슴 한구석에 작은 온기를 품으며 책장을 넘겼다.

 

저자 김종관은 영화감독이다.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등의 영화를 연출했다. 『더 테이블』을 포함해 저서도 세 권이나 출간한 것을 보니 집필활동도 활발히 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작가의 작품 중 내가 본 영화는 한 편도 없었지만, '언젠가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최악의 하루>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작가를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나간 사랑, 추억, 계절, 시간, 경험 등과 그에 대한 짧은 생각이 책에 포함되어 있다.

저자의 일상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가 묘사한 풍경과 시절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저자가 찍은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 느낌을 더욱 끌어올려 준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당시의 고단함을 이겼던 힘은, 가지지 못한 그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지지 못한 위로야말로 때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으로 둔갑하곤 하니까.”

 

본업이 작가가 아닌 사람이 쓰는 에세이는 작가의 산문과 비교했을 때 어쩔 수 없는 미숙함이 묻어 나오곤 한다. 이 책에도 분명 그러한 점은 있었지만 표현이 정말 섬세했고, 몇몇 표현에는 놀라기도 했다.

동시에 부러움이 일었다. 예술계에서 성공하기는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어려운 법인데, 저자는 벌써 두 가지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 아닌가. 나도 저자가 보고 있는 풍경을 함께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저자 옆에 서서 같은 세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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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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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단 한 번이라도,아무 의심이나 두려움 없이 내 눈앞의 행복을 만끽해본 적이 있었나? 삶의 파도가 어차피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그리고 그 반복을 나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다면, 그 위에서 꼿꼿이 균형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가라앉으면 가라앉는 대로,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온몸의 힘을 모조리 뺀 채 물의 흐름에 나를 그대로 맡기는 일을, 나는 왜 그리도 두려워했을까?”

 

생애 처음 접한 생리 에세이, 『네, 저 생리하는데요?』이다.

책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정말 독특하다고 느꼈다. 생리는 대부분의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인데도 생리를 주 소재로 한 에세이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네, 저 생리하는데요?』라는 제목도 언제나 생리 사실을 숨겨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 같아 신선했다.

 

이 대담한 책을 낸 저자는 누구일까. 책날개에 쓰인 저자의 이력은 간단했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수료, 팟캐스트에서 <투쟁하는 암탉>을 진행 중이다. 사진도 실려 있지 않았고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직업이 무엇인지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일부러 적지 않은 걸까. 여백에서 왠지 이제 막 사회로 내딛는 사람 특유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아마 생리에 대해서는 많은 여성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양이 많은 편이라 대형을 착용해도 자세를 잘못 잡으면 모양이 흐트러져 혈이 밖으로 새기 일쑤고, 매번 살에 밀착되어 있으니 화장실에 가서 속옷을 벗을 때마다 생리대 뒷부분이 뜯어진다. 무엇보다 생리대에 쓸릴 때의 그 쓰라림. 아마 많은 여성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했을 터이다.

 

“나는 초경이 여자아이에게 부담과 억압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초경이 그 아이가 체험하는 여성혐오의 첫 시작이 아니었으면 한다. 처음에만 축하받고 그 이후로는 입 싹 닫게 되는 경험이 않았으면 한다. 기쁘고 즐겁고 멋진 기억이길 바란다. 모두에게 축하받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이길 바란다. 아이의 당혹스러움과 불안을 따뜻하게 다독여줄 어른이 주위에 있길 바란다.”

 

이 책은 생리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사회에 퍼져 있는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동의하는 부분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공감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여러 여성의 생리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도, 작가 자신의 경험을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도 좋았다. 이렇게 공감되는 이야기를 활자화된 책으로 접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제법 운이 좋은 편이라 생리 전 증후군도 없고, 생리통도 심하지 않은 편인데다 첫날만 아프고 만다. 간혹 일어나 있기 힘들 정도로 아플 때도 있지만 약도 잘 듣는 편이라 생리통 약 한 알만 먹으면 안심하고 그날 하루를 넘길 수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무시무시한 생리통을 견디는 사람도 있다. 동생의 친구는 생리통 때문에 걷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작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생리 전 증후군도 심하고, 생리통도 심해서 몸을 조이는 옷이라도 입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을 꺼내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동안 이 아픔은 너무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다.

 

“생리 경험은 나를 배울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생리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무시한 채 억지로 긍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울하고 고통스럽고 귀찮고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고 삭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며, 나를 더욱더 인간답게 만들어준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생리를 긍정하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나에게 생리는 언제나 '귀찮은 것', '짜증나는 것', '임신할 생각도 없는데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생리가 자신의 몸이 규칙적으로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생리를, 생리하는 나를 사랑해야만 진정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 누구도 이렇게 말해 준 사람은 없었으니까. 자연스러운 일이고, 건강하다는 증거인데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1학년 때 남녀 분반 제도가 있었다. 생리 얘기를 할 때면 늘 속닥거리던 여학생들이 교실 앞으로 나가서 생리대 있는 사람 있느냐고 묻던 일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아직은 생리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조심스럽고, 야외에서 생리대를 꺼낼 때면 주위를 한번 살피곤 한다. 어렵고 긴 과정이겠지만, 이런 풍경이 언젠가는 바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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