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평점 :
"우리가 하는 건 말이다, 얘야.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이 답이야.
아무것도 사랑을 막을 수가 없어.
사랑에는 경계도 없고 죽음도 없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맞는 생일이 다가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직 어렴풋이 느껴 보기도 힘들지만, 수평선 너머 지고 있는 해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느낌일 것 같다.
살면서 쌓아 온 모든 노력과 지나간 과거,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이 노을처럼 번져가는 풍경을 응시하는 느낌일 것 같다.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빅 엔젤은 70살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준비한다.
그런데 그의 생일 일주일 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만다.
빅 엔젤과 데 라 크루스 집안 사람들은 장례식과 생일파티에 동시에 참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저자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1955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멕시코인, 어머니는 미국인으로, 멕시코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와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 상실, 승리, 죽음 등의 주제를 글로 썼다.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16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펜포크너상, 에드거상, 라난 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악마의 고속도로(The Devil’s Highway)』로 퓰리처상 논픽션 분야 최종 후보에 올랐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영감을 받아서 쓰게 된 소설로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Top 100, 뉴욕타임스 북 리뷰 선정도서, 뉴욕도서관 올해의 추천도서, NPR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되었으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할리우드 TV 영상화를 앞두고 있다.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일리노이 대학 시카고 캠퍼스에서 문예 창작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좋은 인생이었어."
"제일 좋았던 부분이 언제였어?"
"파티에서?"
"아니, 여보. 우리 인생에서."
"다 좋았어."
"나쁠 때도 좋았어?"
"나쁜 때는 없었어.
당신이 있는 삶에 나쁜 때는 없어."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빅 엔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때, 2장은 빅 엔젤의 과거, 3장은 빅 엔젤의 생일 파티, 4장은 빅 엔젤의 생일파티가 끝난 이후를 다루고 있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는 정말이지 혼란스러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에 아무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했고, 인물들의 감정선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 전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구고 주인공과 어떤 관계인지 파악하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게다가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는, 별 뜻 없어 보이는 성적인 묘사와 농담까지. 외국 문학이라 정서가 달라 그런가,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 그저 책장만 넘겼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이 맥락 없는 소설이 보여 주는 풍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먼저 가난과 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난이 읽혔다. 빅 엔젤은 살아가기보다는 견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삶을 살았고, 그 삶의 잔흔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물려줘야 했다.
멕시코인으로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빅 엔젤의 가족은 미국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영어 발음을 연습해야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운 장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던 인물들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온통 불만투성이에 가족임에도 서로 떨어져 살았던 그들은, 빅 엔젤의 생일날 서로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10여 년간 떨어져 있던 빅 엔젤과 리틀 엔젤은 형의 마지막 생일날이 되어서야 서로를 마주한다. 국적 불문 문화 불문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감정, 따뜻한 가족애가 서서히 작품을 적셨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책 속 인물들과 전개를 따라가며 내가 지나친 삶과 아직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가족을 생각했다.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무작정 나아가기보다는 아직 머물러 있는 것을 잠시 붙잡아 두는 데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이 트기 전의 새벽녘이 제일 좋았다. 그때는 죽어가고 있다는 게 생각나지 않으니까. 잠시 그는 자신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를 음미했다.
오늘, 그 과거의 맛은 스카치 캔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