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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나고 있단다."

 

할머니와 아가씨의 모습을 넘나드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바리스타 선녀님이시다.

커피 내리는 선녀라니, 아마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심지어 한복 저고리에 '바리스타'라고 쓰인 캔뱃지도 떡하니 달고 있다.

계룡선녀전은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의 재해석이다. 그러나 모티프만 따왔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돌배 작가만의 치밀한 설정과 서브 플롯을 더하여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났다. 동화의 재해석이 범람하는 시기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날개옷을 잃어버리고 699년간 지상에 묶여 있던 탐랑성 선옥남 선녀의 앞에 환생한 서방님 후보가 나타난다. 그런데 웬걸, 후보가 하나가 아닌 둘이다. 서방님을 찾아야 선옥남 선녀는 날개옷을 되찾고 천계로 돌아갈 수 있다. 선녀님은 진짜 서방님을 찾기 위해 50년 만에 무작정 서울로 향한다.

 

"네 손가락은 초목을 춤추게 하고 네 목소리는 꽃을 흐느끼게 하느니라. 너는 북두를 비추는 첫 별이며,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수목을 어루만지는 존재이니, 그 이름은 탐랑성이니라."

 

이 작품 최대의 장점은 연필로 그린 듯한 부드러운 작화와 탄탄한 플롯이다. 연재 당시 1화부터 한 주도 안 빠지고 꼬박꼬박 챙겨 본 독자인데, 다시 정주행해 보니 복선이 정말 세세하게 깔려 있었다. 아마 결말을 본 후 다시 읽어 보면 감탄하게 될 것이다. 한국적 분위기도 물씬 풍기니 한국형 판타지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반가운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결말이 상당히 여운이 많이 남는다. 용서와 집착, 인과, 정신적 해방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그간의 수수께끼가 한 번에 풀리는 개운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깨알같은 재미난 설정도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선옥남 선녀가 운영하는 선녀다방의 메뉴 이름은,

 

사슴의 눈물

참새의 아침 식사

안 돼요 공주님

달빛 엘레강스

검은 물

 

이다.

무엇을 마셔야 할지 상당히 고민되는 차림표인데, 마지막의 검은 물을 마셨다가는, , 결과는 본편에서 확인하자.그리고, 선 선녀와 나무꾼의 자식인 점돌이와 점순이는 환생을 거듭하다 이번 생에서 점돌이는 알이, 점순이는 고양이로 변신하는 호랑이가 되었다. 점돌이가 변한 알에서 뭐가 깨어나는지도 직접 확인하도록 하자. 족자에서 튀어나오는 점순이의 노트북도 시선을 잡는다.

돌배 작가의 데뷔작인 샌프란시스코 화랑관부터 챙겨 본 독자다. 전작도 무척 따스한 이야기였는데,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번 책은 전작에 비해 관심을 많이 받고 있어 팬인 내게도 의미가 깊다. 심지어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오늘부터 방송된다. 주인공인 문채원 배우부터 시작해 아주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웹툰의 실사화에 회의적인 편인데, 이번에는 기대가 많이 된다.계룡선녀전, 많은 관심과 시청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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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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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벼워진 듯한 그 기분.

체중이 줄었을 때의 느낌과는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 야릇한 가벼움.

그건 차라리 무언가가 덜어내어졌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크림을 덜어낸 케이크처럼, 음표를 덜어낸 악보처럼,

글자를 덜어낸 책처럼,

자신과 불가결의 관계를 맺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버린 것 같았다."


속도감 있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현실에 판타지적 요소를 살짝만 끼얹어서, 무겁기 그지없는 삶을 조금 더 가볍게, 그림자만큼만 가볍게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의 첫 시작은 할아버지의 예언이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때때로 예언을 하는데, 당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르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런데 하필 예언이랍시고 하는 말은 전부 좋지 않은 말이어서, 가족들은 혼란에 빠진다. 차라리 할아버지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도 할아버지의 예언을 피해가지 못한다. 그 예언은 다음과 같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 거다.

소중한 걸 잃게 된다. 힘들 거다. 용기를 잃지 마라. 도망치면 안 돼."


어쩐지 마냥 악담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충고나 조언 쪽에 더 가깝게 받아들여도 괜찮을 법한 예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여자친구 '서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어떤 예고도 없이,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줄거리만 봐서는 제목이 왜 '점선의 영역'인지 알 수 없다. 제목의 뜻은 직접 읽으며 확인하도록 하자.

이 책에는 줄거리를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상당히 많다.

예언자 할아버지, 그림자를 잃어버린 서진이 중심 소재가 되어 줄거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스토리를 이끈다. 예언과 잃어버린 그림자는 그저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가던 인생에 점점이 생긴 얼룩처럼, 어쩌다 생긴 말썽일 뿐이다.


서진이 그림자를 잃어버린 날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회사의 2차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그 회사의 부장은 여성 최초로 간부진 자리까지 오른 사람으로, 서진은 꼭 그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면접에서 대면한 그 부장은 서진에게 묻는다.

현장이 남초인데 괜찮겠느냐,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그만둘 거냐.

남자 지원자에게는 묻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서진에게 부장은 말한다.

"확실히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네요."

서진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한 소문이 이 바닥에서 돌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렸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림자를 빼앗긴 건 아닐까. 그 부장에게, 그 회사에게, 어쩌면 이 사회에. 전 직장에서부터 이어져 여기까지 쫓아온 그 부조리가, 서진을 붙잡고 그림자를 우악스럽게 찢어낸 것은 아닐까. 그림자를 빼앗긴 이후 사람들이 서진을 보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결과는 생각해 보면 제법 신빙성 있는 추측일지도 모른다.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며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의 무게가 가벼워졌음을 실감한다. 필수불가결한 무언가가 덜어내어진 개운함이었다. 서진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다시 자신을 찾아온 그림자를 제 손으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그림자가 없어진 서진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필수불가결한 무언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살아가며 그렇게 붙들고 있던 것은, 일단 떨어져 나가면 그렇게 홀가분해지는 무언가에 불과했던 걸까. 결국 딱 그림자 정도의 무게였던 걸까. 그런데 그것이 내 존재를 결정한다니, 참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그런 것 하나 정도는 붙잡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의 끝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여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는 이 소설이,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에 점선을 이루는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정확히 무엇인진 몰라도 아무튼 잘 움직이기만 하면 그걸로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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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심리코칭
김은미 지음 / 꼼지락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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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몸짓은

바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저자인 김은미 작가는 심리코칭 전문가이자 마음성장학교의 대표이다.

평생을 교사로 살아가다가 삶의 큰 시련을 만난 후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여행의 결실 덕분일까, 책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어투는 평화롭고, 따스하고, 여유롭다. 삶을 통해 좋은 메시지를 깨달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책이었다.


이제는 자기계발서와 '힐링 도서'가 넘쳐 나는 시대이다. 이러한 레드오션에서 이 책의 차별점은, '그림책'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도 진작 그림책을 '탈피'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집구석과 기억 한 귀퉁이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그림책을, 작가가 탈탈 털어 다시 한번 눈앞에 펼쳐 보인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림책의 독자는 어린아이이더라도 그것을 쓰는 작가는 성인이다. 성인인 작가의 내면에는 삶의 경험과 깨달음에서 우러난 언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책은 그것을 분명히 담고 있다. 그저 그 메시지가 단순한 문장과 아기자기한 그림 뒤에 숨어 있을 뿐이다.


"용기는 나를 지키는 힘이다.

수많은 세상의 잣대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

스스로 선택한 대로 살아내는 힘

그 힘은 자신을 믿는 데서 나온다.

즉, 용기와 신뢰는 함께할 때 더욱 빛난다."


동화책 목록을 쭉 읽어 보니 내가 즐겁게 읽었던 책들이 꽤 있었다. 마치 어렸을 때의 친구와 재회한 듯했다. 그 동화에 대해 저자가 써 놓은 텍스트를 읽으며 전문가의 시선과 나의 시선을 비교하고 또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어 기뻤다. 마치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도란도란 감상을 나누는 듯했다.

여기 수록된 책을 한 권도 몰라도 상관없다. 저자는 책의 전반적인 줄거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아마 좋은 책을 새로이 소개받는 기분일 것이다.


나는 속이 제법 비비 꼬인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메시지를 전달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줄 모른다.

동화책을 읽는 내내 그랬을 것이다. 이 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든, 그것은 분명 희망적인 것이었을 테고, 그건 분명히 내게 와닿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저자의 감상을 읽는 내내 숙연했다.

저자는 그 많은 좋은 책들이 주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바뀔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정말 가까이에서, 아주 쉽게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퍼부어도 자신을 바꾸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독서는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를 갖게 해주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최고의 도구다.

나는 독서만 한 것을 끝끝내 찾지 못했다."


저자가 소개한, 내가 읽지 않은 동화책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야쿠바와 사자'였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저자가 내용을 소개한 말만으로 충분히 책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신뢰와 용기뿐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듯했다.

야쿠바와 사자는 둘 다 무리의 한 일원이고 우두머리였기에, 그들을 위한 선택을 해야 했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정말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숭고하다 느껴지기까지 했다.

세상에는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가치관과, 나아가 삶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책이 있다. 아마도 이 책이 그런 책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불가능한 가정마저 해보고 싶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구와도 연결돼 있지 않다고 느낀 그 순간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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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감 -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창비청소년문고 31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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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말하길, 강연집을 낼 때 겁을 덜컥 먹었다고 했다.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소설이나 동화 뒤로 숨었던 작가가 독자 앞에 벌거벗고 서는 느낌이었다고.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생각과 신념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은 독자인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신념과 반대되는 신념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큰 생채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는 나에게도 각오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 읽은 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 책을 쓴 김중미 작가에게 마음으로부터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내가 행복해지는 일은 나만의 성취로만 이룰 수 없어요.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가 사는 세상이 변해야 해요."


지금까지 짧은 시간을 살아오며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동화책부터 시작해 소설책, 때로는 수필, 자기계발서, 만화책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그 중 내가 눈물짓게 한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책 정도일까.

그리고 그 책들 중 이 책이 포함되었다.

저자는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살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들이 이 책에 담겨 내게까지 닿았다. 사회가 외면해 온 목소리가 이 책에서는 하나하나 모두 주인공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안타까워 울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첫 번째로 소개되는 사람은 시각장애인 '진영이'이다.

인대를 다쳐 얼마간 목발을 짚고 다닌 적이 있다. 그때 강의실에서 기숙사까지 올라가는 길의 보도블록이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처음으로 뼈저리게 실감했다. 차라리 차도 쪽이 더 매끄러웠을 정도여서 아예 인도에서 내려 아스팔트로 다녔다. 사람 다니는 길보다 차 다니는 길이 더 평이하다니,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딛으며 실소했다.

나야 잠깐 다쳤으니 잠깐만 고생하면 되는데, 평생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없는지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진영이에게 이런 세상의 장벽은 너무도 높았다. 아마 세상이 자신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으리라.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복지 시설이나 편의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나 장애인용 좌석이 있으면 뭐하나, 애초에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든 세상이다. 장애인이 길에서 잘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았을 때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곧 장애인 배척, 차별, 혐오로 이어진다. 이래서는 안 된다.


"평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그저 함께 사는 것이지요."


김중미 작가의 작은따님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학교는 교복 치마 길이를 심하게 단속했다고 한다.

내가 기회만 닿으면 외치는 말인데, 학교는 인권의 사각지대다.

일반 성인에게 적용하면 인권침해로 들고일어날 만한 제도를, 학생에게 적용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납득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정말 많다. 교복 치마 길이 역시 그 중 하나다. 미니스커트 길이 재던 때가 몇 년도인데 아직까지 학교가 치마 길이를 재고 있다니.

현재 교육제도의 폐해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며칠 밤낮을 주워섬겨도 끝나질 않겠지만, 그리 길게 말하지 않겠다. 수시 제도가 등장하며 교사는 더욱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교사의 마음에 따라 생기부가 달라지고, 대입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더욱 교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학생보다 웃어른이라는 데에서 오는 권위, 교사라는 지위가 주는 권력. 학생들은 교사가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참고 넘어가는 법을 익혔다.

이 나라는 청소년이 목소리를 낼 법한 기회도 자리도 전무하다. 그럴 기회나 자리가 생겨도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은 드물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제도인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 파멸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학교 안에 있는 벽을 허물어 인권이 존중받고 학생과 교사가 서로 소통하려면, 학생들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해요."


장애인, 어부, 농부, 이주 노동자, 흑인 무용수, 양심적 병역거부자,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동안 외면해 왔던,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들려줄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보고 느껴 온 사회문제를 하나하나 생각하고 정리해 보았다.

한 문제만 들여다보아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으며, 그 순간에도 뉴스는 울음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너무도 막막했다.

하지만 이런 책이, 이런 사람들이, 내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나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는데도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해지며 많은 것을 얻은 듯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김중미 작가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책 속 구절 중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어. 저렇게 아플 수 있어.' 하고 상상하고 연민을 느낀다면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어요."라는 말이 있다.

'나도 저런 처지에 놓일 수 있어서'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내가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아도, 그것이 내 일이 아니라도,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받지 않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의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다 저마다 생긴 대로 살아요.

내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면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 좀 달라질 것 같아요.

저는 여러분 하나하나가 다 세상에 그런 균열을 내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숨 쉴 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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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지혜의 시대
김현정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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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실수를 떠올리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지혜를 발휘하게 하는 것,

뉴스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를 진행하는 김현정 피디가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읽으면서 정말 조리 있고 깔끔하게 잘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할 때도 돌려 말하지 않고 청취자가 알아듣기 쉽게, 깔끔하게 진행한다더니 그것이 강연에도 반영되는 듯했다.


박근혜 정권 때 나는 뉴스에 참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뭐 하나 터졌다 싶으면 뉴스 기사를 포함해 관련 정보를 정리한 글들을 찾아 정독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탄핵 판결 전까지 3년 동안 총 6회의 집회 및 시위에 참가했으니 말 다했다.

'성과연봉제'를 주제로 소논문도 썼고, 트위터에 '정치용' 계정을 따로 만들 정도로 뉴스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


아무래도 다시 치른 대통령 선거 이후 세상에 평화라고 온 줄 착각한 모양이다.

그렇게나 뉴스에 관심이 많았던 게 언제인지. 그 유명한 남북정상회담의 추이도 알음알음 알고 있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이러한 '뉴스에 대한 무지'에 더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하며 정보의 확산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고 광대한 범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제 세상에 비밀이란 없고, 은폐된 진실은 오랜 시간이 흐르더라도 밝혀지게 되어 있다. 셔터와 렌즈에 둘러싸이면서 정치인들은 국민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보란 곧 힘이다. 뉴스는 이러한 정보를 가장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다. 이제 텔레비전만 켜면, 스마트폰으로 터치 몇 번만 하면 세상 어디에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발전이자 힘이다.

그 힘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니.


뉴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서 뉴스의 중요성도 함께 잊었다. 김현정 피디는 그 잊고 있던 뉴스의 중요성을 말 몇 마디로 다시 일깨운다.


"오늘날의 뉴스를 보고 과거의 뉴스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막연하더라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뉴스가 우리에게 주는 힘입니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읽어내고 나아가 미래도 예측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김현정 피디는 하루에 뉴스를 적게는 12시간에서 13시간, 많게는 무려 20시간 동안 본다고 한다.

세상에, 그 정도라면 아마 눈 감고도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뉴스를 정보를 주고, 정보는 생각을 촉발하며,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뉴스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다.

책을 읽으며 뉴스는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려주는 매체이며,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이정표라고 생각했다. 뉴스에 무지했던 자신을 다시 한번 반성하는 바이다.


물론 모든 뉴스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 같은 뉴스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과 인식은 '기레기'라는 다소 극단적인 신조어에서 드러난다. 고의로 악의적인 부분만 강조하거나 권력에 유리한 부분만 편집하여 방송하기도 한다. 김현정 피디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한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한 장면만으로 모든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입니다.

한 컷의 전후 상황과 프레임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함으로써 단순한 '사실'이 아닌 종합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뉴스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서는 신문을 읽을 때 한 신문사의 신문만 읽지 말라고 누차 강조하셨다.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의견을 접하며 문제를 보라고. 판단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고, 충분히 많을 정보를 접해서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아직 노력하고 있다.


오늘부터 뉴스 기사를 하루에 최소 세 개씩은 읽기로 했다.

(너무 적다고 비웃지 말아 달라. 난 한동안 '뉴알못'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책 속 김현정 피디의 표현대로, 세상과 원활히 소통해 보려고 한다.

뉴스는 현재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뉴스를 보며 과거의 뉴스를 떠올리고, 미래의 뉴스를 예상할 수 있게 합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기록을 참고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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