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살펴본 네 가지 요소, 즉 단 한 번도 국민의 선택에임한 적이 없는 후보가 처음 출마한 선거에서 승리했다는점, 정부 요직에 있던 이가 자신이 몸담은 정부를 상대로 반기를 들고 대항했다는 점, 사생활 요인이 선거의 거의 모든부분을 차지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선거 승리를 위해 노골적인 편가르기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제20대대한민국 대통령선거는 유례가 없는 불가사의한 역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역사가 탄생한 것일까?
아시아에서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서양식 민주주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중남미에서도 여전히 불안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2022년 6월, 미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콜롬비아에서 진보세력출신 대통령이당선되자 세계가 주목한 것 역시 중남미에 진보정치의 흑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남미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세력권으로 인식돼왔다. 그러하기에 20세기 후반 중남미에서 진보 세력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하자 미국 정부가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군부 세력을 지원하는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21세기가 출범한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서양식 민주주의는 명칭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서양에서나가능한 제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보수는 가만 있으면 승리한다
위의 분류를 보면 알 수 있듯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보수 대통령이 권좌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는 대통령이 특정 이념을 추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한민국 권력 지형에 변화가 없었다는 보다 광의의 뜻을 갖는다. 50년 가까이 뿌리가 같은 정치 세력이 대한민국 권력을 소유한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뒤 선정위원장 베르예는 언론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 로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노벨상을 받으려는 로비가 아니라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가 있었다" 고 밝혔다. 베르예는 "노벨평화상이 로비로 받아낼 수 있는상이라면, 과연 그 상이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한국 동포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려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후로한국인들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이한국이라면 넌더리를 내고 있다." 노르웨이 현지 신문은 수상자 선정과 관련해 "과거에는 이런저런 자격 시비가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단 한 건의 반대 의견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18
0 46이는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20세기까지는 어떤 진보 세력도 정권을 획득할 수 없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15대 대통령선거 결과가증명하고 있다. 50년 동안 집권해온 보수 세력의 후계인 한나라당은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 한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말이다. 마치 일본에서 자민당이 무슨 짓을 해도 지속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전의 평범한삶, 이전의 사회, 이전의 정치적 상황을 원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꿈꾸며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이른바 진보 세력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혁명적 변화를 추구할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것이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불가사의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복합쇼핑몰 하나가 한 지역의 대통령 선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참담한 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은 안 그렇다는 증거 역시 없다. 아파트 재개발이니 경전철이니 하는 작은 이익을 위해서는 정의나 평등, 평화 따위 추상적인 개념은 언제든 폐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니 말이다. 20여 년이 지난 후라 하더라도 호남 지역이 보수 세력으로 기울지는 않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진보몰표현상은 상당히 완화할 것이다.
중산층(中), 즉 부르주아 계급은 중세의 일반 시민들과는 차별화되는 자산을 보유한 계급이었다. 일정한 자산 보유는 고대부터 사회 변혁 세력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안정적인 호구지책(口之策)이 마련되지 못한 계층은 사회 변혁은 고사하고 자신의 정치적 욕구가 무엇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생존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기원전700년 무렵 활동한 고대 중국 정치가 관중(管仲)이 말한 ‘의식지영욕(足則知榮辱)‘, 즉 ‘의식주가 갖추어진 다음에야 인간은 비로소 영광과 수치도 알게 된다‘라는 말은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탁견이었다.
한편으로, 그럼에도 고학력 중산층 시민 가운데 다수가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이른바 사회의 진보적 의제들이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민의 안정적 삶에 기여할 것이라는 정치적 자각 탓일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사회보장제의 확산,소수자 집단의 소외 방지, 다양한 정치적 시각의 체제 내 수용,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 자유, 빈부격차 해소,노동자 권익 향상,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주위 강국으로부터 독립적 지위 확보 등은 누가 보아도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 고 그런 사회가 도래한다면 누구도 악다구니처럼 살지않아도 된 다. 마치 북유럽 여러나라처럼
결국 모든 시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거나 사회 발전을위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지식인들에게 정치는 영광이요 희생이라기보다는 질곡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평판이 나쁘지 않던 인물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평가가 급격히 추락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보면, 정계 진출 이전에 쌓았던 명성이 오히려 신기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계에서 그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부정적 결과를남기고 퇴장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단지 실패했다고 해서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어떻게 실패했느냐, 실패했을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건강보다머리를 갖추어야 한다. 건강이 안 좋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동안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요소를 갖춘 한반도 지역의 평화를 확보하고, 강대국의틈바구니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통해 나라와 시민의 정치·경제적 안녕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빈부격차·성별·지역·세대로 나뉘어 다투는 사회분열을 통합할 수있는 묘수도 발휘해야 한다. 어느 한 집단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 완고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공적 이익‘을 거두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위의 글 전문을 싣는 데는 또 다른 까닭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판에 관해 떠도는 말 가운데 하나가 "카메라 앞에서는 죽기살기로 싸우지만 뒤돌아서면 모두 한통속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정치의 핵심은 싸움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이기 때문에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 이 말은 부정적으로 쓰일 뿐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선명한 여당·야당 정치인인 척하지만 돌아서면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같은 정상배일 뿐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사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이념을 떠나 김세연을 다시 정치의장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보수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김세연은 수구가 판치는 대한민국 우파 권역에서 보기 드문 합리적 보수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합리적일때 진보도 합리적이 될 수 있다. 보수가 실력을 갖추고 있을때 진보 역시 싸움꾼이나 선동가가 아니라 실력파가 힘을얻을 수 있다.
한국에 특별한 문화 가운데 하나가, 보수 세력에 대한 놀라운관용과 진보세력에 대한 과도한 엄격함이다. 보수 인사들의성폭행, 음주운전, 불법전입따위는 능력 기준에서 보면 별거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그가 반성을 하였느냐다. 그러나 진보 세력은 절대 이런 사례를 자신에게 적용하려 들면 안 된다. 대한민국 진보세력에 속한 이들은 자식이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특목고에 보내면 안 되고, 능력이 뛰어나도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하면 안 된다. 하물며 성희롱이니 음주운전, 불법 전입 등은 인간(아니 진보 세력)으로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연히 진보 세력을 자처하는 이라면 입과 펜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심스러운 행보는 진보 세력 인물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유승민은 일관되게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맞다. 복지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 종이에 마구 돈을 찍어내지 않는 한 누군가에게 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정치인이 복지를 약속하면서 증세는 주장하지않는다. 복지는 표가 되지만, 증세는 표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승민은 정직하게 말한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성명 류시민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이 글을 쓸 때의 심경을 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가 발분하여 다시 혼탁한 정계로 나오기를 바란다. 이제 당신이 ‘시민 앞에 무릎을 꿇어야할 때이므로,
‘고졸‘ ‘노무현, ‘낙선‘ 노무현이 이루고자 한 꿈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거다. "돈 없고 빽 없고 권력 없는 이들도, 모든 걸 가진 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이는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나아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형식적 민주주의 국가)의 민주주의는 허울뿐인 민주주의일 뿐다수 시민들에게는 구조적으로 ‘넘사벽‘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걸 깨야만 비로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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