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적 진실이자 사법 정의인 정답과 채점자가 정답으로 처리하는 답이 달라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비로소 진짜 검사인지 여부가 판가름 납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를 믿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임관한 이후 검사 선서가 제정된 것이라 검사 선서문을낭독하고 임관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검사가 그러하듯 저 역시도 검사 선서문을 보면 뿌듯하고 흐뭇한 마음이라 지칠 때면한번씩 찾아 읽곤 합니다.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오로지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하는,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
라는 자긍심은 지친 제 영혼을 깨우는 각성제이고, 저를 대한민국의 수호천사로 변신시키는 마법의 주문입니다. 

전국칠웅의 하나인 제나라 명재상 안영은 군주가 나라를 잘이끌면 그 명을 따르고, 군주가 잘 이끌지 못하면 그 명을 따르지 아니하여 군주가 백성에게 허물을 저지르지 않도록 함으로써 명재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옛글을 보니 충성스러운 신하와 현명한 신하의 차이는 신하의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간언을 듣는 군주를 모시고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잘못된 것을 말하지 아니하여 윗사람이 잘못한다면 아랫사람의 잘못이지만, 잘못된 것을 말했음에도 윗사람이 잘못한다면 그것은 윗사람의 잘못이겠지요.
저는 앞으로도 제 도리를 다할 생각입니다.

2013년 12월 11일 원고의 최종진술
법은 법이 필요 없는 가지고 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권력은 끊임없이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법조문을 잠재우고,사문화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원과 검찰은 잠든법조문을 흔들어 깨워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옹호할 숭고한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사법은 소리입니다. 법정에서 당사자의 잘못을 충고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소리입니다. 그리하여 사법은개개인의 양심을 일깨우고, 이 시대와 우리 사회에 따뜻한 정의를 일깨워 사회적 약자들의 의지처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합니다. 그러한 막중한 사명을 법원과 나눠가진 검사에게 법률과 국민이 어떠한 자세를 요구하는지, 법원은 아름다운 합창을 위하여 검사에게 어떠한 하모니를 원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 선서에서 요구하는 검사의 자세와 헌신, 용기는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검사가 매 순간순간 요구받는 것입니다.

검찰이 검찰다울 수 있도록 시민과 언론이 끊임없이 관심을기울여주시고, 검찰의 해명과 홍보 발언에 고개를 바로 끄덕이지 마시고 진의가 무엇인지,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권 행사에 대한요구와 비판을 잠시도 멈추지 말아 주시기를 더욱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검찰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 깨어있는 시민의 날선 감시와비판만이 검찰을 바꿀 수 있겠지요. 함께 꾸는 꿈의 힘을, 결국함께 나아가는 역사의 힘찬 발걸음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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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휘두른 칼은 민소림의 몸에 영원히 흔적을 남겼다. 민소림이 나를 공격한 말도 내게 상흔을 남겼다.
현대사회는 전자는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후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자를 경시한다. 하지만 신계몽주의는 두 공격과 상처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인지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도 물리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만큼이나 중대하게 다뤄져야 한다. 어신계몽주의 사회에서 모멸은 중범죄가 된다.

나는 우리가 상상과 사실이 섞인 우주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과 사실 어느 한쪽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 정체성도 상상과 사실의 복합체다.
우리 역시 한 발을 물리 세계에, 다른 한 발은 인지 세계에 딛고 선 존재다. 우리의 정체성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과 같은 자아상(自我像)에근거하고 있다.
피부색은 사실이다. 유색인종이라는 개념은 상상의 산물이다. 그렇다 해도 유색인종이라는 개념은 국가나 돈처럼 단단한 집단적 상상이고, 짙은 피부를 지닌 사람은 사실도, 그런 상상도 바꾸지 못한다. 그렇게 인종차별이라는 힘에 휘둘리고, 유색인종이라는 상상이 그의 자아상, 정체성에 녹아든다.
기실 유색인종이라는 상상은 너무 강력해서 문제다. 피부색이 짙든옅든 그 상상에 사로잡히면 피부색과 무관한 정체성, 피부색과 무관한다른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피부색공동체‘ 때문에 옆집 사람들과 ‘이웃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다
신계몽주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리적 위치를 기반으로 상상의공동체를 발명하는 방법, 자신의 관점으로 상상의 공동체들을 비교하는 기술, 상상의 공동체와 주변 현실의 연결선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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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존중을 요구할수록 타인에게 의지하게 돼. 그리고 그만큼 더 나약해지게 되는 거야."

계몽주의 시대가 되면서 세상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고, 각종 원거리 통신 기술도 발전했다. 개인은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지리적 위치가 중요하지 않은 많은 상상의 공동체에 소속되었다. 떠맡은 역할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동시에 자유라는 막막한 힘을 갑자기 움켜쥐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열의 압박을 받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농담이 아니었다.
하필 그 시기에 신도 죽어버렸다. 창조주가 없는 우주, 가치의 원천이사라진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길을 잃은 듯한 기분에 잠겼다. "누군가삶의 의미를 묻는 순간, 그는 병든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현대인은 모두 병이 들었다.

도덕적 책임의 원근법 원리를 능숙하게 다루려면 현실에서, 또 상상의 공동체 안에서 ‘나‘의 지리적 위치를 잘 잡고 잘 파악해야 한다. ‘나‘
는 폭풍 치는 바다를 뚫고 나아가는 군함처럼 파도의 충격에 유연하게대처하면서도 무게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아는 유연하면서도 단단해져야 한다.
즉 신계몽주의는 정체성을 다루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놀랍게도 그것은 몇 단계를 거쳐 신의 재발명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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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네 가지 요소, 즉 단 한 번도 국민의 선택에임한 적이 없는 후보가 처음 출마한 선거에서 승리했다는점, 정부 요직에 있던 이가 자신이 몸담은 정부를 상대로 반기를 들고 대항했다는 점, 사생활 요인이 선거의 거의 모든부분을 차지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선거 승리를 위해 노골적인 편가르기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제20대대한민국 대통령선거는 유례가 없는 불가사의한 역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역사가 탄생한 것일까?

아시아에서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서양식 민주주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중남미에서도 여전히 불안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2022년 6월, 미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콜롬비아에서 진보세력출신 대통령이당선되자 세계가 주목한 것 역시 중남미에 진보정치의 흑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남미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세력권으로 인식돼왔다. 그러하기에 20세기 후반 중남미에서 진보 세력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하자 미국 정부가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군부 세력을 지원하는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21세기가 출범한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서양식 민주주의는 명칭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서양에서나가능한 제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보수는 가만 있으면 승리한다

위의 분류를 보면 알 수 있듯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보수 대통령이 권좌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는 대통령이 특정 이념을 추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한민국 권력 지형에 변화가 없었다는 보다 광의의 뜻을 갖는다. 50년 가까이 뿌리가 같은 정치 세력이 대한민국 권력을 소유한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뒤 선정위원장 베르예는 언론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 로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노벨상을 받으려는 로비가 아니라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가 있었다"
고 밝혔다. 베르예는 "노벨평화상이 로비로 받아낼 수 있는상이라면, 과연 그 상이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한국 동포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려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후로한국인들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이한국이라면 넌더리를 내고 있다." 노르웨이 현지 신문은 수상자 선정과 관련해 "과거에는 이런저런 자격 시비가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단 한 건의 반대 의견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18

0 46이는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20세기까지는 어떤 진보 세력도 정권을 획득할 수 없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15대 대통령선거 결과가증명하고 있다. 50년 동안 집권해온 보수 세력의 후계인 한나라당은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 한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말이다. 마치 일본에서 자민당이 무슨 짓을 해도 지속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전의 평범한삶, 이전의 사회, 이전의 정치적 상황을 원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꿈꾸며 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이른바 진보 세력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혁명적 변화를 추구할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것이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불가사의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복합쇼핑몰 하나가 한 지역의 대통령 선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참담한 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은 안 그렇다는 증거 역시 없다. 아파트 재개발이니 경전철이니 하는 작은 이익을 위해서는 정의나 평등, 평화 따위 추상적인 개념은 언제든 폐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니 말이다.
20여 년이 지난 후라 하더라도 호남 지역이 보수 세력으로 기울지는 않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진보몰표현상은 상당히 완화할 것이다.

중산층(中), 즉 부르주아 계급은 중세의 일반 시민들과는 차별화되는 자산을 보유한 계급이었다. 일정한 자산 보유는 고대부터 사회 변혁 세력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안정적인 호구지책(口之策)이 마련되지 못한 계층은 사회 변혁은 고사하고 자신의 정치적 욕구가 무엇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생존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기원전700년 무렵 활동한 고대 중국 정치가 관중(管仲)이 말한 ‘의식지영욕(足則知榮辱)‘, 즉 ‘의식주가 갖추어진 다음에야 인간은 비로소 영광과 수치도 알게 된다‘라는 말은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탁견이었다.

한편으로, 그럼에도 고학력 중산층 시민 가운데 다수가진보 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이른바 사회의 진보적 의제들이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민의 안정적 삶에 기여할 것이라는 정치적 자각 탓일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사회보장제의 확산,소수자 집단의 소외 방지, 다양한 정치적 시각의 체제 내 수용,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 자유, 빈부격차 해소,노동자 권익 향상,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주위 강국으로부터 독립적 지위 확보 등은 누가 보아도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
고 그런 사회가 도래한다면 누구도 악다구니처럼 살지않아도 된
다. 마치 북유럽 여러나라처럼

결국 모든 시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거나 사회 발전을위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지식인들에게 정치는 영광이요 희생이라기보다는 질곡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평판이 나쁘지 않던 인물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평가가 급격히 추락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보면, 정계 진출 이전에 쌓았던 명성이 오히려 신기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계에서 그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부정적 결과를남기고 퇴장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단지 실패했다고 해서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어떻게 실패했느냐, 실패했을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건강보다머리를 갖추어야 한다. 건강이 안 좋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동안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요소를 갖춘 한반도 지역의 평화를 확보하고, 강대국의틈바구니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통해 나라와 시민의 정치·경제적 안녕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빈부격차·성별·지역·세대로 나뉘어 다투는 사회분열을 통합할 수있는 묘수도 발휘해야 한다. 어느 한 집단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 완고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공적 이익‘을 거두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위의 글 전문을 싣는 데는 또 다른 까닭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판에 관해 떠도는 말 가운데 하나가 "카메라 앞에서는 죽기살기로 싸우지만 뒤돌아서면 모두 한통속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정치의 핵심은 싸움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이기 때문에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 이 말은 부정적으로 쓰일 뿐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선명한 여당·야당 정치인인 척하지만 돌아서면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같은 정상배일 뿐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사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이념을 떠나 김세연을 다시 정치의장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보수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김세연은 수구가 판치는 대한민국 우파 권역에서 보기 드문 합리적 보수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합리적일때 진보도 합리적이 될 수 있다. 보수가 실력을 갖추고 있을때 진보 역시 싸움꾼이나 선동가가 아니라 실력파가 힘을얻을 수 있다.

한국에 특별한 문화 가운데 하나가, 보수 세력에 대한 놀라운관용과 진보세력에 대한 과도한 엄격함이다. 보수 인사들의성폭행, 음주운전, 불법전입따위는 능력 기준에서 보면 별거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그가 반성을 하였느냐다. 
그러나 진보 세력은 절대 이런 사례를 자신에게 적용하려 들면 안 된다. 대한민국 진보세력에 속한 이들은 자식이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특목고에 보내면 안 되고, 능력이 뛰어나도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하면 안 된다. 하물며 성희롱이니 음주운전, 불법 전입 등은 인간(아니 진보 세력)으로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연히 진보 세력을 자처하는 이라면 입과 펜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심스러운 행보는 진보 세력 인물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유승민은 일관되게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맞다. 복지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
종이에 마구 돈을 찍어내지 않는 한 누군가에게 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정치인이 복지를 약속하면서 증세는 주장하지않는다. 복지는 표가 되지만, 증세는 표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승민은 정직하게 말한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성명 류시민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이 글을 쓸 때의 심경을 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가 발분하여 다시 혼탁한 정계로 나오기를 바란다. 이제 당신이 ‘시민 앞에 무릎을 꿇어야할 때이므로,

‘고졸‘ ‘노무현, ‘낙선‘ 노무현이 이루고자 한 꿈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거다.
"돈 없고 빽 없고 권력 없는 이들도, 모든 걸 가진 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이는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나아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형식적 민주주의 국가)의 민주주의는 허울뿐인 민주주의일 뿐다수 시민들에게는 구조적으로 ‘넘사벽‘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걸 깨야만 비로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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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육·법률·종교 등을 통한 구체적인 제약이나 간섭이 작용하지 않으면 이 싸움의 승자는 엉뚱한 제삼자, ‘악‘이될 수 있다. 악은 어떤 경우 이러한 특별한 간섭의 힘까지도 압도해버린다. 악의 활동이란 시각에서 보면, 힘이나 체격, 처세술이나 지식 그리고 경제권에서 대부분 (자식이 10대가 될 때까지 혹은 그 후에도) 자식을 압도하는 부모가 자식을 이긴다. 이같은 부모의 압도를 막아낼 법이나 규범이 작동하지 않을 때문제는 어려워진다. 가정 내에서 종종 이 규범이나 병에 대한무지,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인해 비극적 결과들도 발생한다.
가정이라는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가족 상호 간에 일어나는 파괴와 상처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노출되지않을 때가 많다.

NPD 환자들은 자신이 항상 남보다 우월하다고 믿으며 남들을 열등하게 취급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에 대해 강렬한 질투를 느낀다. 자신이 항상 이 세계의중심에 있다고 생각해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잘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 한다. 대화할 때도 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은 사실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시도이기도하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순종하고 명령을 따르기를 기대하거나 강요한다.

정치권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정신의학계에서는 이 NPD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들을  치료 하기가 극히 힘들거나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보는 NPD의일반적인 증상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성공, 권력에 대한 욕망,자신이 최고여야 한다는 집착,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때로는 완벽한 배우자에 대한 환상 fantasy 등이 있다. 이 같은 환상은 역으로 그 자신 안에 있는 공허함과 부족함, 인정받지 못한 데 대한보상작용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 환상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그는 좌절과 함께 극심한 분노를 느낀다. 

정신질환자들의 자살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그리고 감당할 수 없도록 환자들의 마음을 막다른 상황으로 몰고 간다. 거기에는 목표를 지향하는 신념이나 의지가 힘을 쓰지 못한다. 많은 경우 그들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편한 것이다. 어떤 정상인들에게 자살은 선택일 수 있지만, 환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박이나 강요이다. 그들의 병적인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신체적·영적 치료를 통해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그들은 삶의 양지로 벗어나올 수 있다.
암 환자를 전방위로 치료해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내고(혹은 실패하더라도), 우울증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해 자살의 위기에서 살려낸다면(혹은 실패하더라도), 두 경우의 환자에 대하여 편견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직도 대다수 일반인은 자신이 뇌기능장애나 정신질환과는 무관한 지대에서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대부분 인간은 증상이 가볍거나 무거운 상태의차이일 뿐, 정신질환의 한 스펙트럼에 포함돼 있다. 정신질환은 특정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질환을 겪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자극이나 계기를 통해 발병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이다.

우리 중에 얼마간 신경증이나 성격장애 증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신경증인 사람들은 자신을 항상 수준 미달이고 늘 엉뚱한 선택을 하는 열등한 존재로 자각하고 있다.
반면에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보다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신경증과 성격장애를 둘 다 갖고있는데 이들을 ‘성격 신경증 환자‘라고 부른다.

한국의 예를 들면 <한국 사회 전체에 정신적 고통이 만연하다〉라는 제목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보고서를 인용할수 있다. OECD는 한국인의 정신건강과 관련 의료 시스템을조사한 평가보고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학교 폭력, 알코올 남용, 도박,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꼽았다.

많은 한국인이 뇌기능장애나 정신질환과 무관한 지대에살고 있지 못하다. OECD 보고서에서 수전 오코너 박사는 특히 "의료적 관점에서 가벼운 증상의 정신장애는 제대로 진단,
치료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신적 고통은 만연한 수준"
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녀는 이 같은 한국인의 만연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현재의 한국 의료 시스템이 그렇듯) 정신병원에장기 입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유럽·미국 등의 나라들처럼 지역사회가 환자 관리에 적합하도록 건강보험이나 의료보장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대사회 인간들의 삶의 목적은 즐거움pleasure과 번영prosperity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 고통은 불행한 재앙으로 치부되며 이 삶에서 제거돼야 할 것들로 여겨진다. 경제와 정치와과학은 이의 실현을 위해 장밋빛 목표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인생은 고해 (고통의 바다)‘라는 불교 선각자들의 핵심 한마디를 무시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매진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마약 같은 슬로건은 개인주의,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등하며 결국은 수많은 개인 앞에 실패로 모습을 드러낸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이 세상에서는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적 꿈이다. 인간의 무한대의 욕심과 이기주의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의 원인이다.
이 유토피아의 환상을 추구할 때 고통과 고난은 불편한것을 넘어 ‘악‘으로까지 치부된다. 고통과 고난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는 사회에서 낙오되고 격리되는 것을 느낀다. 고통과 고난은 현대문화의  버려진 돌이다. 그럼에도 고난은 우리 삶의 반쪽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해 갈 수가 없다. 정신질환, 뇌기능장애는 현대사회에 가장 만연하고 고통스러운 병이지만 감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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