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교육·법률·종교 등을 통한 구체적인 제약이나 간섭이 작용하지 않으면 이 싸움의 승자는 엉뚱한 제삼자, ‘악‘이될 수 있다. 악은 어떤 경우 이러한 특별한 간섭의 힘까지도 압도해버린다. 악의 활동이란 시각에서 보면, 힘이나 체격, 처세술이나 지식 그리고 경제권에서 대부분 (자식이 10대가 될 때까지 혹은 그 후에도) 자식을 압도하는 부모가 자식을 이긴다. 이같은 부모의 압도를 막아낼 법이나 규범이 작동하지 않을 때문제는 어려워진다. 가정 내에서 종종 이 규범이나 병에 대한무지,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인해 비극적 결과들도 발생한다. 가정이라는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가족 상호 간에 일어나는 파괴와 상처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노출되지않을 때가 많다.
NPD 환자들은 자신이 항상 남보다 우월하다고 믿으며 남들을 열등하게 취급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에 대해 강렬한 질투를 느낀다. 자신이 항상 이 세계의중심에 있다고 생각해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잘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 한다. 대화할 때도 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은 사실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시도이기도하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순종하고 명령을 따르기를 기대하거나 강요한다.
정치권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정신의학계에서는 이 NPD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들을 치료 하기가 극히 힘들거나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보는 NPD의일반적인 증상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성공, 권력에 대한 욕망,자신이 최고여야 한다는 집착,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때로는 완벽한 배우자에 대한 환상 fantasy 등이 있다. 이 같은 환상은 역으로 그 자신 안에 있는 공허함과 부족함, 인정받지 못한 데 대한보상작용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 환상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그는 좌절과 함께 극심한 분노를 느낀다.
정신질환자들의 자살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그리고 감당할 수 없도록 환자들의 마음을 막다른 상황으로 몰고 간다. 거기에는 목표를 지향하는 신념이나 의지가 힘을 쓰지 못한다. 많은 경우 그들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편한 것이다. 어떤 정상인들에게 자살은 선택일 수 있지만, 환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박이나 강요이다. 그들의 병적인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신체적·영적 치료를 통해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그들은 삶의 양지로 벗어나올 수 있다. 암 환자를 전방위로 치료해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내고(혹은 실패하더라도), 우울증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해 자살의 위기에서 살려낸다면(혹은 실패하더라도), 두 경우의 환자에 대하여 편견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직도 대다수 일반인은 자신이 뇌기능장애나 정신질환과는 무관한 지대에서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대부분 인간은 증상이 가볍거나 무거운 상태의차이일 뿐, 정신질환의 한 스펙트럼에 포함돼 있다. 정신질환은 특정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질환을 겪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자극이나 계기를 통해 발병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이다.
우리 중에 얼마간 신경증이나 성격장애 증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신경증인 사람들은 자신을 항상 수준 미달이고 늘 엉뚱한 선택을 하는 열등한 존재로 자각하고 있다. 반면에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보다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신경증과 성격장애를 둘 다 갖고있는데 이들을 ‘성격 신경증 환자‘라고 부른다.
한국의 예를 들면 <한국 사회 전체에 정신적 고통이 만연하다〉라는 제목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보고서를 인용할수 있다. OECD는 한국인의 정신건강과 관련 의료 시스템을조사한 평가보고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학교 폭력, 알코올 남용, 도박,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꼽았다.
많은 한국인이 뇌기능장애나 정신질환과 무관한 지대에살고 있지 못하다. OECD 보고서에서 수전 오코너 박사는 특히 "의료적 관점에서 가벼운 증상의 정신장애는 제대로 진단, 치료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신적 고통은 만연한 수준" 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녀는 이 같은 한국인의 만연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현재의 한국 의료 시스템이 그렇듯) 정신병원에장기 입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유럽·미국 등의 나라들처럼 지역사회가 환자 관리에 적합하도록 건강보험이나 의료보장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대사회 인간들의 삶의 목적은 즐거움pleasure과 번영prosperity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 고통은 불행한 재앙으로 치부되며 이 삶에서 제거돼야 할 것들로 여겨진다. 경제와 정치와과학은 이의 실현을 위해 장밋빛 목표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인생은 고해 (고통의 바다)‘라는 불교 선각자들의 핵심 한마디를 무시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매진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마약 같은 슬로건은 개인주의,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등하며 결국은 수많은 개인 앞에 실패로 모습을 드러낸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이 세상에서는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적 꿈이다. 인간의 무한대의 욕심과 이기주의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의 원인이다. 이 유토피아의 환상을 추구할 때 고통과 고난은 불편한것을 넘어 ‘악‘으로까지 치부된다. 고통과 고난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는 사회에서 낙오되고 격리되는 것을 느낀다. 고통과 고난은 현대문화의 버려진 돌이다. 그럼에도 고난은 우리 삶의 반쪽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해 갈 수가 없다. 정신질환, 뇌기능장애는 현대사회에 가장 만연하고 고통스러운 병이지만 감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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