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꼭 한 번은 이모와 내가 잠들어 있는 아랫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쩌다 내가 눈을 뜨고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더 자라는 표시로 오른손을 들어 가만히위아래로 흔들었다. 마치 허공에 누워 있는 아기를 토닥이는 것같은 몸짓이었다. 그러면 나는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할머니의뒷모습이 빠져나간 뒤 그 문틈으로 스르르 들어와서 방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는 여명을 어렴풋이 느끼며, 아침 준비를 끝낸 할머니가 깨우러 올 때까지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나에게 있어이 모든 것은 아침을 시작하는 평화로운 습관이었다.
늘 나는 세상일은 우연한 행운이 쥐고 흔드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 생각은 행운을 가질 기회를 얻기까지는 스스로가 노력을해야 한다는 꽤 건전한 정강으로 보완돼왔다. 그러므로 장군이가변소에 빠지고 안 빠지고는 이제 내 손을 떠난 문제였다. 그때 변소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행운은 순진한 장군이보다는 간교한 나의 편을 들었다.
그 후 몽유도원도는 한국에서 전시되었다. 전시되면한국인들에 의해 강탈당해 영원히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며 끝까지 한국 전시를 반대했던 천리대학교 도서관장은 강탈은커녕 아예 관심조차 안 보이는 한국인들을비웃으며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 내뱉고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식민지배, 정신대, 강제 징용에 이르는 역사를 마주하고 싶을까. 그래서 우리는 조상을 원망하는 습관이 배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역사의 책무에서 자유로울수 있을까? 어쩌면 문화재 회수는 이제 먹고 살 만한 형편이 된 현세대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조상님들은 온몸을 다 바쳐 오천 년의 가난을 극복해 주지 않았는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내 조상의 탓이라고 그저 외면하고 마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사랑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많은 책임과 가책을 함께하는 것인지, 도저히 말로는 옮겨지지 못할 많은 감정들이 쏟아지고 쏟아져, 깨지고 상하고, 문드러지고 휘발되어버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나는 가끔 그런 사랑을 나누는 것이 두렵기도하다. 사랑을 믿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한국 사회를 괴롭히고 후진성을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많은 현상의 원인이 정치에 있는 것 같아도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비극을 거세해 버린 개인의 삶에 그 원인이 있다. 예쁘게 단장한 얼굴로 쉴 새 없이 겉모습만 과시하는일상, 마치 기쁜 일만 있고 오직 성공만이 있는 듯 가식적인 말의 홍수 속에 진실은 질식하고 동행의 길은 메말라버린다.진지한 삶은 언제나 인간의 본질, 바로 슬픔과 비극 위에 존재한다. 누군가와 사랑과 우정이 담긴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즐거운 내용이 아니라 우울한 내용의대화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상대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요즘 혹시 힘든 일 있어요?"
슬픔과 비극은 분명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슬픔과 비극이 없는 삶은 가볍고 공허하다. 어쩌면 천박하다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이누군가와 같이 걸어가는 것이라면 이해와 공감이야말로필수 아미노산인데 슬픔과 비극을 진지하게 나누는 기회가 없다면 껍질만의 이해와 공감으로 우리의 삶을 치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슬픔과 비극을 담은 대화야말로 우리가 타인과 교감하는 진정한 신호이며 우정과 사랑을 찾으려 가슴 깊은 곳에서 속삭이며 흘러나오는 샘물과도 같다. 오랜 친구에게든, 새로이 사귀는 사람에게든 어떤 슬픔을 갖고 있는지,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게 진정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닐까.
돌이켜 보면 우리들의 삶이란 언제나 과도한 감정, 지나친 언사, 불필요한 동작으로 점철되어 자신이 원하는바를 깔끔하게 이루지 못하니 이런 것들로부터 해방되어있다면 도사라 칭해도 과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무리 좋아해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닥치면 위기가 오기 마련이다. 풍족하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식물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내가 자주 자연 속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도시에서 누리던 것들을 끊고서 시골에 살아도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다는 믿음도있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깨달은 것들이 인생의 축이 되어 항상 언젠가는 시골로 돌아가야 한다. 정확하게는 ‘자연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