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매일 학교를 오가던 집 앞 해저 터널은 바깥 세상과는 전혀다른 공간이었다. 바닷속이라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굽이도는 터널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면 울려 퍼지는 소리가 황홀감을주었다. 시원찮은 전기 사정으로 정전이라도 되면 정말 새까만 어둠을 경험했다. 밤길에는 별빛이라도 있을 테지만.…. 그럴 때는 차라리 눈을 감고 걷는게 더 편하다는 걸 그 때 터득했다. 그러다 순간 전등이 켜지면, 터널 안은온통 기쁨의 탄성으로 채워졌다."
아빠는 방학 때 내려온 손주들을 해서 터널로 데려가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싶어하셨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심했다. 시원하다고 기뻐하지도 않고목소리가 울려 퍼져도 신기하다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문명이 바닷속의즐거움을 가져가 버렸다. 어쩌면 해저 터널이 아빠를 마지막으로 추억할지모른다. 아빠가 유튜브에서 ‘Line and Wash‘ 장르를 처음 접했을 때는일종의 만화 정도로 생각하셨단다. 그래도 생활 주변의 재미있는 모습을자유롭게 그릴 수 있겠다 싶으셨다고. 바로 펜과 중성 잉크를 장만하고 제일먼저 그리신 게 집 근처 해저 터널이다. 에어컨도 노래방도 없던 시절, 요즘아이들은 모르는 환상적인 바닷속 공간의 추억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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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은 사람이 대부분 나쁜 건 아니지만 나쁜 사람들은 대부분 겁이 많다. 그들의 나쁨을 파헤쳐보면,
그러니까 그 끝의 끝까지 추적해보면 결국 겁이 나타난다. 돈 때문에 나빠진 사람은 가난을 겁내고, 사랑 때문에 나빠진 사람은 이별을 겁내고, 권력을 손에 쥐고 나빠진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걸 겁낸다.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다 나빠진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도 미움을 당할까봐 겁낸다.

이야기를 탐하는 사람은 상처를 재배열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자다. 당신의 피를 내 쪽에 묻혀 희석하려는욕망. 만약 내게 저들이 앉은 테이블에 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먼저 내 인생의 찢어진 페이지 몇장에 대해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지켜볼 테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상처받는 순간을. 기억과 기억이 만나 상처를 조율해나가는 동안 얼굴에 드리워지는 무늬들을 보고 싶다

어른들은 내가 크느라 아픈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생각에 어른들의 걱정은 ‘성가심‘으로 인해 촉발한다. 걱정이 먼저가 아니라 성가심이 먼저라는 얘기다. 얘가 아프면, 애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할 일이 많아질 텐데,
하는 생각. 그렇지 않은 어른들에 둘러싸여 자라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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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면 침묵이 도착한다. 침묵이 시간 위로 내려앉는다. 침묵은 아이의 존재를 잠식한다. 이 세계에서다른 세계로 밀려나게 한다. 침묵이 나를 휘감고, 납덩이처럼 목을 조르는 일을 자주 겪는다. 먼지처럼 가벼이, 우주룬 떠도는 일.

어둠을 지배하는 신을 향한 내 믿음은 오래 이어졌다.
훗날 내 기도가 귀신을 향한 서원이었다는 생각을하면 서늘해졌다. 내 오랜 서원으로, 삶에서 뭔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 죽은 혼에 대고 중얼거린 어린 날의기나긴 기도, 그 시간이 마당 구석에 켜켜이 쌓여 내 그림자를 이룰 것 같았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단어, 기분, 표현이 만나면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눈물이 앞서면 말은 설 자리를 잃는다.

할머니가 후화와 반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추를 매달고 신
살기를 바랐을게다.

마음은 있으나 말이 가난할 때 할 수 있는 건 울기.웃기. 넘기기. 돌아가기. 죽기. 숨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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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행복

행복이란 뭘까.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늘 행복하고 싶다는거다. 그런데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행복한지는 어떻게알 수 있을까. 고수를 처음 먹어보기 전에는 그 향과 맛을 몰랐던것처럼 마침내 행복해져야 행복의 느낌을 알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마침내 ‘어? 나 행복하네?‘ 하고 알게 된 이후에는 어떻게되는 걸까. 행복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걸까. 아니면 다시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 행복을 처음부터 길어 올려야 하는 걸까. 불행을 감지해내는 안테나는 늘 명확한데, 행복은 너무 아리송하다. 어떤 때에는 조금 행복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기도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행복의 정확한 느낌이 무엇이지?

이럴 때마다 나는 행복을 감지한다.
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포착해서 모아두기로 했다. 행복은 열심히 레이더를 세우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모호하게 다가와서 잠깐 머물다 가버리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행복하다 느끼는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종종 꺼내어보기로 한다. 내가 캡처한 행복의 순간들을.

그리고 올해. 이제 여름도 끝이구나 싶던 지난 주말, 대추나무에조롱조롱 맺힌 열매를 발견했다. ‘언제 열렸지. 왜 몰랐지!" 한껏들떠 호들갑을 떨었다.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내어놓은것처럼 보이는 열매들이지만, 변화무쌍한 계절과 일기를 자기안으로 쌓아온 여러 날이 있었다. 이제는 그걸 알기에, 대추나무가 더 장하고 기특했는지 모른다.

80대의 할머니와 30대의 나 사이에는 비슷함을 찾기 어렵다. 살아온 환경은 물론 관심사도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화는 대번 빈틈없이 단단하게 이어진다.

공통점 하나 없는 할머니와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는 서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9남매를키워내며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아온 팔순의 할머니와 어느 날 도망치듯 시골로 숨어든 30대의 나. 우리가 다른 것은 당연했다. 빤히 같은 걸 보고 들으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에는 항상 물음표가 많다. 서로의 다름을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며 던지는 물음표다.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든 맞고 틀린 게 없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할머니는 그랬고, 나는 이렇다.그뿐이다

그런데 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평일의 시간에는 이런 생각을잘 못 할까.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말을 여전히 달고 산다. 어떤 날은 누가 나와 다르다는것 때문에 속에 불기둥이 치솟기도 한다. 그럴 땐 멈추고 수풀집을 떠올린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더듬어본다. 자연스럽게 그럴수 있지 하는 생각이 이어진다. 모든 일이, 관계가 편해지는 마법 같은 문장이다. 나라는 사람이 나 하나이듯 나같이 생각하는것도 오직 나뿐이다. 어쩌면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상대가 앞집 할머니든 옆자리에 앉은 동료든 말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혹은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 사람들이우울감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실체 없는 노동 때문이라는 말을 접한 적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채집과 수렵을 통해서 만족감을 느꼈는데, 현대로 오면서 실체가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일상을 반복하기 때문이라나. 그래서일까. 작은 모종과 씨로 심었던 배추와 무가 크게 자라나 수확할 때, 장독 가득 김치가되었을 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승진했을 때보다 기뻤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그보다 기쁘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승진의 기쁨보다는 오래 지속되는 기쁨을 주었다. 김장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매끼니 기뻤으니까 말이다.

자기 몫의 하루가 버겁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늘 마음이 여유로워 다른 이를 도닥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만 향하는 시선을 밖으로 옮겨보기로 한다.

나의 서툰 다정도 누군가에게 잔잔히 닿기를 바라면서. 내가 아넌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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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깨면서 빗소리가 귀를 울린다. 마당의 흙을 적시는 짧은 빛금의 사각사각 소리, 기와의 홈을 내려와서 처마로 흘러내리는 긴선분의 주룩주룩 소리, 지붕을 때리는 찰박찰박 소리, 한꺼번에여러 소리를 내면서 비는 이곳저곳에 골고루 내리고 있다.

아무리 남의 말하기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광진테라 아줌마처럼 나무랄 데 없이착한 사람에 대해서는 선뜻 비방의 포문을 열 수가 없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이야깃거리일 뿐이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것은 비극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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