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행복
행복이란 뭘까.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늘 행복하고 싶다는거다. 그런데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행복한지는 어떻게알 수 있을까. 고수를 처음 먹어보기 전에는 그 향과 맛을 몰랐던것처럼 마침내 행복해져야 행복의 느낌을 알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마침내 ‘어? 나 행복하네?‘ 하고 알게 된 이후에는 어떻게되는 걸까. 행복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걸까. 아니면 다시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 행복을 처음부터 길어 올려야 하는 걸까. 불행을 감지해내는 안테나는 늘 명확한데, 행복은 너무 아리송하다. 어떤 때에는 조금 행복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기도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행복의 정확한 느낌이 무엇이지?
이럴 때마다 나는 행복을 감지한다. 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포착해서 모아두기로 했다. 행복은 열심히 레이더를 세우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모호하게 다가와서 잠깐 머물다 가버리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행복하다 느끼는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종종 꺼내어보기로 한다. 내가 캡처한 행복의 순간들을.
그리고 올해. 이제 여름도 끝이구나 싶던 지난 주말, 대추나무에조롱조롱 맺힌 열매를 발견했다. ‘언제 열렸지. 왜 몰랐지!" 한껏들떠 호들갑을 떨었다.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내어놓은것처럼 보이는 열매들이지만, 변화무쌍한 계절과 일기를 자기안으로 쌓아온 여러 날이 있었다. 이제는 그걸 알기에, 대추나무가 더 장하고 기특했는지 모른다.
80대의 할머니와 30대의 나 사이에는 비슷함을 찾기 어렵다. 살아온 환경은 물론 관심사도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화는 대번 빈틈없이 단단하게 이어진다.
공통점 하나 없는 할머니와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는 서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9남매를키워내며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아온 팔순의 할머니와 어느 날 도망치듯 시골로 숨어든 30대의 나. 우리가 다른 것은 당연했다. 빤히 같은 걸 보고 들으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에는 항상 물음표가 많다. 서로의 다름을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며 던지는 물음표다.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든 맞고 틀린 게 없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할머니는 그랬고, 나는 이렇다.그뿐이다
그런데 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평일의 시간에는 이런 생각을잘 못 할까.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말을 여전히 달고 산다. 어떤 날은 누가 나와 다르다는것 때문에 속에 불기둥이 치솟기도 한다. 그럴 땐 멈추고 수풀집을 떠올린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더듬어본다. 자연스럽게 그럴수 있지 하는 생각이 이어진다. 모든 일이, 관계가 편해지는 마법 같은 문장이다. 나라는 사람이 나 하나이듯 나같이 생각하는것도 오직 나뿐이다. 어쩌면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상대가 앞집 할머니든 옆자리에 앉은 동료든 말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혹은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 사람들이우울감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실체 없는 노동 때문이라는 말을 접한 적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채집과 수렵을 통해서 만족감을 느꼈는데, 현대로 오면서 실체가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일상을 반복하기 때문이라나. 그래서일까. 작은 모종과 씨로 심었던 배추와 무가 크게 자라나 수확할 때, 장독 가득 김치가되었을 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승진했을 때보다 기뻤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그보다 기쁘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승진의 기쁨보다는 오래 지속되는 기쁨을 주었다. 김장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매끼니 기뻤으니까 말이다.
자기 몫의 하루가 버겁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늘 마음이 여유로워 다른 이를 도닥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만 향하는 시선을 밖으로 옮겨보기로 한다.
나의 서툰 다정도 누군가에게 잔잔히 닿기를 바라면서. 내가 아넌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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