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면 침묵이 도착한다. 침묵이 시간 위로 내려앉는다. 침묵은 아이의 존재를 잠식한다. 이 세계에서다른 세계로 밀려나게 한다. 침묵이 나를 휘감고, 납덩이처럼 목을 조르는 일을 자주 겪는다. 먼지처럼 가벼이, 우주룬 떠도는 일.
어둠을 지배하는 신을 향한 내 믿음은 오래 이어졌다. 훗날 내 기도가 귀신을 향한 서원이었다는 생각을하면 서늘해졌다. 내 오랜 서원으로, 삶에서 뭔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 죽은 혼에 대고 중얼거린 어린 날의기나긴 기도, 그 시간이 마당 구석에 켜켜이 쌓여 내 그림자를 이룰 것 같았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단어, 기분, 표현이 만나면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후화와 반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추를 매달고 신 살기를 바랐을게다.
마음은 있으나 말이 가난할 때 할 수 있는 건 울기.웃기. 넘기기. 돌아가기. 죽기. 숨기 등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