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여행 - 나이 듦,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이여진 지음, 서진 엮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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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여행에 대하여


『칠십 여행』은 여행 에세이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실은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책이었다. 33년간 직장인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역할을 다해온 한 여성이 은퇴 이후 길 위에 서며 써 내려간 기록은 ‘어디를 갔는가’보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으로 살아왔는가’**를 더 오래 남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이 돌아온다. 나도 요즘은 ‘여행’이든 ‘일’이든 결국 내가 누구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젊은 시절의 여행이 풍경을 ‘채우는 일’이었다면, 칠십의 여행은 삶을 ‘비워내는 일’에 가깝다. 더 많이 보고 더 멀리 가는 대신, 천천히 머물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발사업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변수들이 늘 도사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멀리 달리는 것보다 불필요한 걸 덜어내고 핵심을 붙잡는 일이 더 중요해질 때가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비움’은 단순히 내려놓음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는 감각에 가깝다.


책은 ‘풍경–사람–사물–공간’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인생으로 돌아온다. 노을을 보며 젊은 날을 떠올리고, 오래된 유적 앞에서 문명보다 사람의 삶을 먼저 바라보며, 부엌과 온천 같은 공간에서 여성의 자리와 자유를 성찰한다. 그 과정이 낯선 풍경을 소비하는 여행기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천천히 되짚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쓰려 했는데 결국 나를 쓰고 있었다”는 고백은, 사실 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의 여행을 읽고 있는데, 자꾸 내 삶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책이 나이 듦을 상실이나 쇠퇴의 언어로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 듦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존재’로 돌아오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젊을 때는 상처를 먼저 보지만 나이가 들면 빛을 먼저 보게 된다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최근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부족한 것, 잘못된 것, 위험한 것’이 먼저 보였다면, 요즘은 그 와중에도 지켜야 할 것(가족, 건강, 하루의 평온)이 더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세상이 바뀐 게 아니라, 내 눈이 조금 달라진 걸지도 모르겠다.


절제된 문체와 느린 호흡, 그리고 사진들은 독서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춘다.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난해해서가 아니라, 생각 없이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지금의 나는, 과연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불편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정돈해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바쁨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칠십 여행』은 특정 연령대를 위한 책이라기보다, 언젠가 맞이할 시간을 미리 걸어보게 하는 책이다. 나이 듦을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내 삶의 결을 다시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는 인생의 여행기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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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주루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니들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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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직 나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죽음을 정면으로 논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부감이었다. 당장 눈앞에 해결해야 할 프로젝트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나에게 죽음은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깊은 파동을 일으킨 지점은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을 통과하며 비춰진 삶의 태도, 특히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불러온 긴 여운이었다. 주루이 교수가 말하는 평범함은 체념이나 안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또렷해진 삶의 본질이었다. 그가 물 한 모금과 죽 한 사발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거창한 성취에 매몰되어 정작 이미 주어진 하루의 무게를 잊고 살던 나를 향한 준엄한 요청처럼 들렸다.


이 대목에서 일전에 읽었던 『나 죽으러 갑니다』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렇지만 삶은 불러야만 온다.” 지극히 평범한 생리적 현상 하나하나가 투쟁이 되어버린 병동의 기록들은,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불평을 입에 달고 살던 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비춰주었다. 숨 쉬고, 먹고, 잠드는 일조차 선택이 아닌 싸움이 된 사람들 앞에서 나는 무엇이 그리 불만이었을까. 일이 힘들다, 미래가 불안하다는 말들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그 독백은 가족에게까지 흘러가 우리 모두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이 책은 내게 위로라기보다 뼈아픈 반성이자 성찰이었다.


저자는 ‘죽어가다’와 ‘죽음’을 명확히 구분한다. 이 서늘한 구분은 살아있으면서도 이미 삶을 소모해버리는 태도에 대한 경고로 다가왔다. 부동산 개발이라는 일은 본질적으로 예기치 못한 리스크의 연속이다.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가족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은 어느새 ‘투쟁’의 형태로 굳어 나를 조여 왔다. “이 고비만 넘기면”이라며 오늘을 유예하던 나에게,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비로소 실재적인 구원이 되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끌어안고 있는 이 수많은 리스크와 선택의 무게는 먼지처럼 작다. 그렇다고 내 삶이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작은 존재가 느끼는 두려움과 책임, 선택의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사실을 세이건의 시선은 일깨운다. 이 관점은 내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게 해주었다. 모든 선택이 반드시 성공으로 귀결되지 않아도 괜찮으며, 모든 투쟁이 승리로 끝나지 않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안도감. 나는 비로소 조금 더 담담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결국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은 나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이미 충분히 살아 있는 오늘을 불평으로 낭비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평범한 하루를 지켜내는 일, 건강한 몸으로 일하고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이 시간이야말로 죽음을 통과한 철학자가 남긴 가장 현실적인 가르침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더 나은 인생을 살겠다는 거창한 결심보다, 오늘 하루를 조금 덜 불평하며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진짜 ‘수업’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이 책은 목차만 훑어봐도 예사롭지 않은 울림이 전해진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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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철학하다 - 삶은 어떻게 글이 되고, 글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이남훈 지음 / 지음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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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철학하다』는 글쓰기 기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생각하고 일하며 책임지는 태도에 대해 묻는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의 철학은 내가 몸담고 있는 부동산 개발이라는 직업, 그리고 조직 안에서 맡아온 역할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익숙한 방식을 반복하지 않고, 기존의 성공 공식을 의심하며 필요하다면 깨뜨리는 태도, 절제된 비판의식으로 현실을 점검하는 자세는 이 책이 말하는 창조와 반항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스로를 ‘저자’로 인식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을 저자로 규정할 때 사고의 밀도와 결과물의 질이 달라진다는 주장은, 글쓰기뿐 아니라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순한 담당자가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할 때, 생각은 더 깊어지고 판단은 더 무거워진다.


이 책은 삶과 글쓰기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결과물이 아니라 사유의 축적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사고방식 자체가 재편된다. 과거 한 권의 책을 집필하며 경험했던 사고의 해체와 재구성이 왜 그렇게 강렬했는지, 이 책은 명확한 언어로 설명해 준다. 쓰는 행위는 결국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AI 시대에 이 메시지는 더욱 또렷하다. 기술은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지는 인간의 사유에 달려 있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다. 『글쓰기를 철학하다』는 글쓰기를 통해 왜 인간의 생각이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증명하는 책이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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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 - 김재원 힐링 에세이
김재원 지음 / 달먹는토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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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은 기술의 속도에 뒤처진 것 같다는 자괴감 속에서, 삶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붙잡게 해주는 에세이다. AI와 새로운 기술이 일상을 압도하는 시대를 살다 보면, 나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저자 김재원은 그런 흔들림의 끝에서,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기억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임을 조용히 보여준다.


열세 살에 어머니를, 서른세 살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경험은 그의 삶에 깊은 결을 남겼다. 그리고 2024년 또 한 번의 이별을 겪으며, 그는 비로소 어린 시절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던 마음을 다시 마주한다. “그리움은 오래된 애도”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다. 상실은 끝나지 않지만, 함께했던 기억은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된다는 사실이 담담하게 전해진다.


이 책은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말의 품격, 가족의 온기, 일상의 감사함을 짧은 글 속에 차분히 담아낸다. 베테랑 아나운서로서의 통찰, 여행에서 얻은 삶의 감각,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이 83편의 고백처럼 이어진다. 읽다 보면 삶이 하찮게 느껴졌던 순간들마저 이미 충분히 소중한 것으로 채워져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엄마의 얼굴』은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고개를 들어 가족의 얼굴을 다시 보라고, 오늘을 감사하라고 권한다.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조용히 일깨워주는 책이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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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전쟁 -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AI 전쟁 기계의 등장
최재운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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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전쟁』은 전쟁이 더 이상 인간의 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시대로 이미 진입했음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몇 년 전 강의실로 드론이 날아들어 인간을 식별·사살하는 영상이 섬뜩한 상상처럼 느껴졌다면, 이 책은 그것이 미래가 아니라 이미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임을 분명히 한다. 무기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전쟁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이 책의 강점은 기술 발전을 공포로만 소비하지 않고, 역사적 흐름 속에서 전쟁의 구조 변화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산업혁명과 핵무기가 전쟁의 규모를 바꿨다면, AI는 전쟁의 ‘결정 방식’을 바꾸고 있다. 드론, 자율살상무기, 사이버전, 딥페이크, LLM 기반 군사 AI까지 이어지는 설명은 전장이 어떻게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재편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는 예외가 아닌 미래 전장의 표준으로 읽히게 만든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윤리와 책임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다. AI가 더 정확해질수록 오히려 책임은 흐려지고, 전쟁의 문턱은 낮아진다. 그래서 저자는 “AI를 막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위임할 것인가, 무엇만큼은 인간이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다. 효율이 윤리를 앞지르는 순간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통제의 원칙이라는 경고가 묵직하게 남는다. 이 책은 전쟁의 미래를 말하지만, 결국 인간다움의 기준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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