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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니걸스
최은미 지음 / 디오네 / 2009년 2월
평점 :
5명의 남자와 동시에 사귀면서 요일팬티와 삼각발을 운운하는 정인, 영어선생님이며 남자보다는 일을 우선시하며 변변한 연애한번 못한 란이, 못된 남자에게 매여 바람기도 참아주고 사는 재순. 극단적인 성격의 3명의 친구들을 둘러싼 사랑이야기지만 주축은 나 '지정인'이다.
예전에 7명의 남자를 요일별로 부르며 (일요일에 만나는 남자는 Mr. Sunday이런 식으로,,,) 만나는 여자가 나오는 만화를 본 적이 있어서 '그것보다는 2명이 작네'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이력을 먼저 보는 습관으로 살펴본 저자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법학을 전공하고 인도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인도로 심리학을 전공하러 간다고 하자, 차라리 신비학을 공부하라고 했던 사람들이 그녀가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가지가지 한다고 했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보니까 그런 솔직한 비난아닌 비난은 란이와 재순과 같은 친구가 저자의 곁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점은 바로 비난하면서 자학할 때는 누구보다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 필요하다면 하얀거짓말도 불사할 수 있는 그런 친구들. 연애소설 얘기인 줄 알았지만, 책을 덮을 때에서는 가족이나 친구의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의도가 사랑이었다면 (뒷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발칙한 연애주의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얘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사실 초반에는 좀 읽기 힘들었다. 웃기지 않은 정인이 말장난, 모든 일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불만을 토로하고 아무리 친구사이라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그녀들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 (여러명이 등장하면 보통은 1명 정도는 공감이 가는 캐릭터가 나온다,,,)였기도 하고,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사람을 전전하면서 스스로를 쿨하다고 여기는 전문직의 여성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신선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1/3 정도를 넘어서면서 정인의 연애이야기 속에 쿨하지 못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그녀의 모습에 살짝 공감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캐릭터인 마신부의 사랑, 결혼, 연애 그리고 태생적으로 다른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 연애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듣는 기분이었다. 영화나 책이 전반적으로 구성이 나빠도 하나의 대사, 기억에 남는 한컷,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발견하면 무조건 좋은 책으로 기억하는 나에게 이 책은 그 때부터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룰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 죽음과 정서적인 피폐함,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고통과 결국은 치유되는 해피엔딩. 통속적인 구조고, 마지막의 서정후(사실 이름이 이뻐서 더 점수를 주고 싶다 ㅎㅎ)라는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은 려원의 너무나 자연스럽고 엽기적인 연기가 인상적이었던<두 얼굴의 여친>과도 닮아있다. 결국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상처가 숨겨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인지. 그래도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가보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연애과 사람 그리고 현실 속의 관계를 그대로 재현하여 책으로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너무나 사실적으로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더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가상의 체험을 통해서 도피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해피엔딩인 것이 좋지 않을까.
심리학을 전공하고 상담을 업으로 하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만큼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하는 많은 구절이 있다.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낚시를 하는데 최근에는 여자가 사냥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 춤이라는 몸을 매개로 하는 치유의 힘. 결국에 사람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의 인정.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책에 들었다. 나만을 위한 맞춤 상담을 한 기분이다.
호니 걸스 (Horny Girls). 발정난 처자들. 도발적인 제목에 자극적인 내용을 기대했다면 오히려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스스로를 어찌할바를 모르는 사랑에 목마른 가여운 여자일 뿐이니까. 그리고 여러가지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과거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여자니까. 잊는 것이 아니라 품고 새롭게 시작하는 그녀의 바람기가 사라질지는 의문이지만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하나 안고 살아갈 거라는 것은 확신한다. 더이상 자아를 분열하고 스스로 기억을 지울만큼의 큰 상처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공감할 수 없다고 해서 응원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쿨한 지정인식 사랑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누가 뭐라든 사랑을 하고 또 헤어지고 또 하겠지만...그것은 결국 우리가 책이나 머릿속에서 그리는 그런 이상과 꿈과 아름다움만이 그득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오히려 진탕과 질펀한 난장 속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이 우리가 하고 갈구하고 죽을 때까지 잡지 못하고 달고 다니는 사랑이라고 말이다. (24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