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10명의, 아니 10개의 지갑의 이야기.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존재감에 관해서 잊고 있었지만 성별과 연령을 넘어 누구에게나 있고 항상 같이 있는 것이 바로 지갑이었다. 각기 다른 모양과 다른 내용물을 담고 있지만 사람과 함께 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지갑.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화차><모방범>을 아직 접하지 못해서, 그냥 그 명성만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유명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편견을 갖고 보게 된다. 특히 상을 받은 작품에 대해서는 더한데, 엄한 광고에 속은 경험이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편견으로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느낄만큼 구성도 탄탄하고 책을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뒤에 내용이 궁금해서 다른 약속이 생겨서 책을 못 읽을 때는 그 책에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어서 집에 가서 책을 읽어야지...라고 느끼게 해준 오랜만에 흡인력이 있는 책을 만났다. 그래서 결국은 약속을 마치고 뒤늦게 귀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난 시간은 새벽 3시. 싸이코패스. 요즘에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 예전에 한 3~4년전에 신간이 소개된 걸보고 책을 읽은 적 있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했듯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강호순사건과 그날 어떤 티비프로(서울 노현동에서 일어났던 고시원의 방화와 무차별 살인)를 보면서 '싸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사람들이 무서운 것은 흔히 우리가 살인의 원인을 찾듯이 원한관계에 있는 것도 단지 살인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유전적으로 그런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공격의 대상이 누가될지 알 수가 없다. 강호순사건에서 경악했던 점이 바로 그 평범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좋아보이는 인상의 사람. 속은 사람을 바보라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래는 13개의 지갑이야기였다고 하는데, 그 중에 실제의 범인인 두명의 지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 살인을 했던 그 범인을 조종했던 그 무서운 두 사람. 단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유명해지기 위해서 사람을 조종하고 필요하다면 살인도 불사할 수 있는 사람들. 반전이 아니라 애초에 범인이라고 지정을 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로 불구하고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처럼 그래도 뭔가 설득할만한 이유가 있길, 그래도 공감할 수 있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일까...? 잘 짜여진 구성만큼이나 지금의 현실을 되새겨볼 수 있어서 책을 보고 나니 좀 우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