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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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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이라는 동화책을 읽었다. 이 이야기는 존이라는 아이가 학교에 갈 때도 올 때도 고통을 당하지만 마지막엔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고통을 받는 이야기다. 존이 학교로 가다 만난 것은 악어, 사자, 파도다. 잃어버린 물건은 장갑, 바지 조각, 책가방 조각이다.

존은 안됐다. 쓰는 것과 외친 것을 다 합치면 천 이백번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정말 나쁘다. 애들이 하는 말이면 뭐든지 믿지 않고 자기들 말만 알아듣는다. 난 지각 대장 존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당했으면 갚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초등학교 2학년이 아들이 '지각 대장 존'을 읽고 일기장에 쓴 글이다.
내가 이 책을 슬쩍 보았을 때 선생님의 굳어진 고정관념에 내심 찔끔했다. 나 또한 아이의 말을 제대로 다 들어보지 않고 '뭐라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하면서 화부터 버럭 내거나 소리를 질러서 아이를 질리게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이 일기장에 쓴 '어른들은 애들이 하는 말은 뭐든지 믿지 않고 지기들 말만 알아듣는다.'라든가, '존이 당한 것을 갚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라고 쓴 부분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오직 아이가 학원에 열심히 다니고 학습지를 열심히 풀어서 잘난 아이가 되기를 바랄 뿐이지 진정으로 아이의 말을 들어준 적이 있을까. 빡빡한 학업스케줄에 묶인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는가.
<나쁜 어른들이여 반성하라. 고정관념의 틀을 벗고 아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라.> 이 책은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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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소년 비룡소의 그림동화 28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 비룡소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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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소년'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게다가 표지에는 약간 모자라는 듯한 아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한 학년에 한 두 명씩 있을법한 땅꼬마 같은 아이. 나도 그런 아이를 괴롭힌 적은 없었는지......

그림이 많고 글씨는 별로 없는 그림동화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보다 고학년의 아이들에게 더 다가올 수 있는 동화이다. 땅꼬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졸업을 할 때까지 6년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면서 외로워하고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으로 사팔뜨기 흉내를 낸다든가 보통의 아이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기도 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땅꼬마를 따돌렸지만 땅꼬마 역시 아이들을 따돌린 것처럼 보인다. 땅꼬마는 아이들보다 자연의 모든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그리고 굼벵이라든가 지네 같은 다른 아이들은 보기도 싫어하는 것들을 그 아이는 손으로 주무르며 관찰하고 뒷산의 꽃과 나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땅꼬마의 그런 점들이 새로 부임해온 이소베 선생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소베 선생님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땅꼬마의 모든 것을 인정해주고 칭찬해 준다. 이상한 그림과 삐뚤빼뚤한 글씨마저도. 이소베 선생님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교육자다.

학예회날, 땅꼬마의 까마귀 소리는 전율 그 자체다.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 까마귀 소리,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이른 아침에 우는 까마귀들 소리, 마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는 까마귀 소리, 까마귀들이 행복할 때 우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에 고목나무에 앉아 우는 까마귀 소리. 땅꼬마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까우우워워아악! 까우우워워아악!'

하고 별난 소리를 토해 냈다. 땅꼬마의 까마귀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모두 울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땅꼬마를 못살게 굴었는지 생각하면서.

책을 덮고 나도 땅꼬마의 까마귀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먼 산의 메아리처럼 귀 속에 웅웅거리며 때리는 것이다. 동틀 무렵, 학교로 타박타박, 해질 무렵 집으로 타박타박 여섯 해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타박타박 걸으며 까마귀 울음 소리를 흉내내는 땅꼬마가 보인다. 어른들조차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땅꼬마. 정말 장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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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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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쓰는 것처럼 옷을 입어 내 몸은 종이고, 두 손은 만년필, 두 눈은 영감의 창이야. 모자는 느낌표고, 스카프는 쉼표, 레이스는 말줄임표지. 겉장만 보고 책을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겉모양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어. 나, 엉뚱이 소피는 옷으로 시를 써.'

주인공 소피의 말이다. 소피는 어릴 때부터 옷을 놀잇감처럼 좋아한다. 구두끈 매는 것이라든가 단추 같은 것들이 소피에겐 환상적인 놀이감이다.

우리는 얼마나 격식에 맞추어 옷을 입는가. 엄마들은 또 아이들에게 너무나 예쁜 옷을 입히려고 하다 보니 활동성에 문제가 생긴다. 아이의 활동성보다 자신의 체면이 구겨질까봐 조바심을 하며 강제로 옷을 입히는 것이 요즘 대부분의 부모이다.

소피는 집에 있는 모든 옷을 활용한다. 엄마의 옷도 아빠의 넥타이도 그녀의 패션을 위해 과감하게 활용한다. 소피의 부모 역시 못말리는 부모다. 학교에서 소피의 복장에 대해 문제를 삼았을 때 소피의 부모는 소피의 창의성에 주목해 줄것을 선생님께 당당히 요구한다.

소피의 독특한 패션은 기자의 눈에 띄어 당장에 스타가 된다. 머리엔 알리바바처럼 터번을 두르고 목걸이 세개, 벨트도 세개나 하였다. 기자의 질문에 소피는 찰랑거리는 소리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피가 짝짝이 양말을 신은 이유는 발마다 각각 다른 이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문에 소피가 나오자 소피는 학교의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의 태도도 돌변하였다.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옷은 어떻게 입어야하고 양말은 어떤 색으로 신어야 하고 구두는 어떻고......

독특한 아이디어 창출을 위해...... 날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한다. 머리 속에 박힌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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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갭의 샘물 - 눈높이 어린이 문고 5 눈높이 어린이 문고 5
나탈리 배비트 지음, 최순희 옮김 / 대교출판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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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에게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생명의 연장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던 중국의 진시황제마저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 책은 5,6학년 정도의 초등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로 나온 책이긴 하지만 무거운 주제인 만큼 성인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도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시간과 영원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주된 내용은 숲 속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샘물을 마시고 나서 영원히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제외된 삶을 살게 되는 터크네 가족이 십년을 하루같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연치 않은 사고와 질병과 죽음인데 트리갭의 샘물을 마심으로써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난 터크네 가족은 큰 축복을 받은 것처럼 비춰지고 그래서 달콤하고 솔깃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그것은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열일곱살 때 샘물을 마신 제시는 인생은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다양한 변화를 구경하고 즐기지 않는다면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 많은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한다.

반면 제시의 아버지 터크는 변화없이 영원토록 한 자리에 멈추어 있는 삶은 삶도 아니며, 길가에 널려 있는 돌멩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움직이고 변화하고 자라고 그리고 결국에는 죽어 없어짐으로써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 자연의 올바른 질서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원한 삶이 결코 축복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위니라면 트리갭의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삶을 택했을까 아니면 보통 사람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서 죽는 삶을 택했을까. 책을 놓을 때까지 독자를 갈등하게 한다.
희망에 차 있는 아이들은 아마 제시같은 생각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도전하고 싶은 것들로 꽉 차 있고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 다 알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인생을 어느 정도 산 나는 아버지 터크와 같은 생각으로 기울어졌다. 그날이 그날 같이 끝없이 널려 있는 것이 삶이라면 발전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짧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무한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변화하지 않았을까.

'굵고 짧게 살자'는 말처럼 이 책은 오래 살기를 바라지 말고 자신 앞에 닥친 삶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길게 늘어진 지루한 삶보다 오히려 짧은 인생이 얼마나 더 알차게 빛날 수 있는지를, 생각만 하면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또 아무런 변화없이 지루한 삶을 사는 터크 가족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죽을 수 있는 우리의 평범한 삶이 얼마나 더 축복인가를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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