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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한국의 위인 8
김종두 지음, 신가영 그림 / 국민서관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위인전기는 동화와 달리 보통인간이 어려움을 헤쳐내고 꿈을 이루어낸 이야기다. 그래서 요즘은 위인들이 얼마나 성공했느냐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들이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 환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다룬다.

위인전기가 어느정도 교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지루해서인지 만화로 나온 책이 아주 많다. 그러나 만화로 된 것은 아이들의 이해를 도울 수는 있겠으나 내용면에 충실도가 떨어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위인전기를 전집으로 사준다. 그러나 아이가 얼마나 읽는지 궁금하다. 그러면, 위인전기는 재미있을 수 없는 것인지........

국민서관에서 나온 12권의 위인전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씌어져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알맞은 분량이면서 쉽게 풀어썼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아이들이 읽는다. 그렇다고 만화로 된 것은 아니지만 글씨가 많지 않으면서도 이해하기 쉬워서 읽고 또 읽는다.

처음에 나는 조금 망설였다. 책의 크기가 보통의 위인전기보다는 크고 그림이 많고 글씨는 오히려 적어서 아이의 수준에 못미칠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아이의 반응은 오히려 반대였다. 나를 포함한 부모들은 아이들의 수준을 과대평가하여 수준 이상의 것을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특히 책과 많이 친하지 않은 아이들은 그것이 아이에게 책을 멀리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서관'에서 나온 위인전기들 중 우장춘은 특히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으로서 그가 일본인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핍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자랐는지 짐직하고도 남을 것이다.

우장춘이 구한말 망명 정객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것이며 그가 그런 시련 속에서도 조국을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조국을 위해 한 톨의 밀알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인이었지만 우장춘에게 힘과 용기를 심어준 사람이다. 동네 아이들로부터 센진노꼬(조선놈의 자식)이라는 멸시와 놀림을 받을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아무리 짓밟혀도 일어나 꽃을 피우는 민들레꽃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민들레꽃을 생각하며 시련을 이겨낼 것을 당부한다.

그의 머리 속에는 항상 가난한 조국이 있었다. 일본의 압박에 짓밟히는 조국, 그는 그 조국의 굶주리는 동포를 생각하며 균이 없는 우량감자씨앗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이 독점하고 있던 우량 종자의 생산체계를 국산화하였으며, 청정 재배, 우량 종자 육성 등으로 우리 나라의 농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리고 씨없는 수박까지.......

한국인이라는 멸시와 천대를 그토록 받았지만 끝까지 한국의 호적과 이름을 버리지 않던 그가 조국이 해방되자 일본에서의 모든 직책을 사양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62살에 수원의 여기산에 묻혔다.

그의 불타는 의지와 집념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편안하고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힘들다고 툴툴대는 자신이 우습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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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창비시선 173
김용택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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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들이 어렵다. 어떤 시들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몇 행을 읽다가 버거워 던져버리기 일쑤다. 시들이 이렇게 어려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랄까. 아무튼 눈물이 날 것 같다. 그의 모든 시에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있고 자연이 있고 삶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결코 고상하거나 어렵지 않은 어휘들로 씌어졌는데도 새벽 안개처럼 촉촉하게 가슴을 적신다.

어린시절, 나는 호롱불 밑에서 공부도 하고 뜨개질도 하면서 자랐고 우리집은 초가였다.
'아름다운 집, 그 집'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집을 지어본다.

--------------------------------
머리통만한 흙덩어리를 만들어
지붕 위로 휙휙 던졌다.
흙덩이들이 지붕 가득 날아올라
점점 하늘을 막았다.
흙을 밟아 이기는 흙 속의 굳센 발,
어기영어기영 휙휙 흙덩이를 던지며
가뿐 가뿐 받던 아름다운 손,
웃고 떠들며 쉬지 않던 입,
공만한 흙덩이 하나가
마지막 하늘을 막았다.
나는 큰방 자리에 서서
잠깐 캄캄했다.
-----------------------------

우리 집의 초가지붕은 곧 새마을 운동의 바람으로 죽은 회색 슬레이트로 바뀌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어린시절 지붕을 이던 아버지를 본다. 눈과 비에 수없이 절고 햇빛에 바래 회색이 된 헌 짚을 걷어내고 타작을 끝낸 노란 볏짚으로 지붕을 덮던 두텁고 거친 아버지의 손.

꼬이고 꼬인 언어의 장난이 아니라 그의 시는 한결같이 이야기를 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늘 그리던 나의 고향이 들어있다.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삶에 찌든 내가 쉽게 달려갈 수 없는 고향, 나의 고향, 그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 - 소막, 흰 입김을 훅훅 뿜는 황소, 노란 산국,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풀씨......

'애인'은 설레임과 떨림이 있는 시다. 아련한 향수와 첫사랑을 생각나게 한다.

------------그 여자는 내가 올 때까지
소쿠리 가득 감이 넘쳐도 쓸데없이 감을 마구 땁니다.

나에게도 그런 애인이 있었다. 고백한 적이 없는 짝사랑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의 자전거 바퀴 속의 은빛 살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올 때쯤이면 나는 쓸데없이 방천둑을 거닐었다. 눈이 부시게 푸른 교복을 입고 검은 교모를 쓴 그가 가까이 다가올때면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마치 그곳에 볼일이 있었던 것처럼, 아주 우연인 것처럼, 놀라하며 살포시 웃었다. 그도 수줍게 웃으며 차르륵 차르륵 은빛 바퀴를 구르며 지나갔다. 그 한 순간을 위해 나는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았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당신을 사랑했노라고, 단 한 마디도 못해 본 것이 후회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이가 들어 용기가 생긴 것인가. 세월이 흘러 떨림의 감정이 무디어진 것인가. 나에게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젊은 연인으로 살아있는 그가,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한편, 새벽 이슬처럼 깨끗한 사랑의 감정을 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또 무엇인지.......

시집의 첫머리에 '첫눈'의 시에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은 '첫눈'이라는 짧은 이 한편의 시로 모든 말을 대신한다.
잃어버렸던 고향과 첫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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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피네 (양장본)
법정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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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때때로 불안하다. 물질적으로는 옛날보다 풍족해졌는데도 말이다.

삼십년 전 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산골에서 살았다. 첩첩 산중에는 해도 빨리 넘어간다. 바깥은 칠흙처럼 어두웠고 오로지 가물거리는 호롱불만이 어둠을 쫓아주었다. 그래도 어머니와 나는 호롱불밑에는 머리칼을 태워가며 뜨개질을 하곤 했다. 털실 또한 새 것이 아닌 입다가 입다가 질려버린 스웨타를 풀어 놓은 것이었는데 꼬불꼬불한 것은 그만 두고라도 조금만 힘을 가해도 낡은 실이 툭툭 끊어져서 매듭투성이인 실로 목도리도 짜고 장갑도 짜고 그랬다.

그래도 그땐 행복했다. 텔레비전도 없고 지직거리는 라디오 뿐이었어도....... 한 이불 속에 발을 들여놓고 이야기꽃을 피웠고, 등이 근질거리면 이가 달아날까봐 재빠르게 옷을 훌러덩 벗어 호롱불 앞에서 이를 잡던 시절이었어도......

우린 너무 많이 가졌다. 그런데도 더 많이 갖기를 바란다. 유행과 패션에 신경을 쓰느라고 해질때까지 입는 옷이 없다. 실용적인 것보다 멋스러운 것을 찾다보니 마음은 늘 공허하다.

<산에는 꽃이 피네> 이 책 속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소유의 삶이야 말로 안락함이라고 말한다. 많이 가지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고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하나를 가졌을 때 평온하고 행복하던 것이 똑 같은 것을 두 개 가졌을 때는 처음의 행복함을 찾을 수 없고 소유의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에 보탬이 되어 주는 사람은 나의 벗이 될 수 있지만, 무엇을 자꾸만 갖다 주어 내 단순함과 간소함을 깨는 사람은 벗이라 칭할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몇 가지 외의 모든 것은 겉치례일 뿐이다. 가난하게 살아본 사람들은 더욱 잘 알 것이다. 무엇인가를 사기 전에 꼭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내게 꼭 필요한것인가를.......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무소유가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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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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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알라딘에서 독자서평이 많이 붙은 것을 보고 샀다. 서평이 많이 붙은 것만큼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설거지도 하지 않은 채 단번에 읽은 책이었으며 단순하고 명료한 글이었다.

우화 속에 두 마리의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 꼬마 인간 헴과 허는 인간의 여려 유형들을 축약해 놓은 듯 하다.

나는 어떤 류의 인간일까. 어떤 변화가 닥쳤을 때 사태를 지나치게 분석하지 않고 너무 복잡한 생각에 눌려 행동을 미루지 않는 생쥐같은 부류인가. 아님 헴처럼 끝까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인가.

돌아보면 우리 인간은 끝없이 치즈를 찾으러 다닌다. 미로 속을 헤매다 커다란 치즈를 찾았을 때는 영원히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하고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오만해진다.

그러나 영원히 존재하는 치즈는 없다. 날마다 조금씩 사라지기도 하고 얼마쯤은 상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끝없이 겪어야 하는 것이 변화이다. 작은 변화들은 수없이 겪고 있는 데도 단지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큰 변화를 받아들일 때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인데도 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변화하지 못한다.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실직을 했다거나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충격을 이기지 못해 폐인이 되는 사람들은 헴과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아는 것인데도 실천이 미약할 뿐인 것이긴 하지만......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자.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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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 눈높이 어린이문고 3 눈높이 어린이 문고 101
이금이 지음 / 대교출판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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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가 아팠을 때 가슴이 철렁거린 기억이 모든 사람들에게 한 두번쯤 있을 것이다. 나의 엄마는 농사일에 집안 일까지 하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셨다. 그래서 밥이나 한 술 뜨기 위해 마루에라도 걸터 앉을라치면 '아아아, 아이구 허리야, 다리야!' 하는 소리를 후렴처럼 달고 다니셨다.

그 때마다 나는 얼마나 가슴이 철렁거렸는지 모른다. 혹시 우리엄마가 죽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가 검은 하늘에 번개불처럼 번쩍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 공포는 엄마없는 하늘 아래에서 겪어야 할 모든 설움을 떠올리며 슬프하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콩쥐팥쥐 이야기나 장화홍련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못된 계모이야기와 같이 연상되어 더욱 더 무서운 이야기로 상상되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지금 칠순이 되도록 건강하게 살아계시다.

좋은 새엄마는 없는가. 얼마든지 좋은 새엄마가 있을텐데도 왜 못된 새엄마 이야기만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게 하는가.

굳이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해가 갈수록 급증하는 이혼율 때문에 새엄마 새아빠가 늘어나고 있다. 어짜피 같은 가족으로 살아야 할거라면 처음부터 나쁜 선입견은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좋은 새엄마도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줄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마치 '좋은 새엄마도 얼마든지 많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좋은 새엄마가 둘 씩이나 나오니까.

얼마전 인기였던 영화 <스텝맘>을 보았는가. 거기에 새엄마 줄리아 로버츠가 전처 아이들에게 얼마나 헌신적으로 봉사하는가 자신의 직업을 내팽개쳐가면서까지 말이다. 정말 영화같은 이야기긴 하지만 감동받았다.

가난때문에 집을 나간 엄마. 제대로 돌볼 사람이 없는 어린 남매, 큰돌이와 영미가 있다. 이웃에 있는 할머니의 주선으로 어린 영미가 부자집의 양녀로 가고 큰돌이네 집에도 새엄마가 들어온다.

큰돌이는 친엄마를 못잊어 새엄마를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못생기고 걸걸한 목소리에 꼭 남자같은 새엄마는 어수선한 집안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들어 놓고 말못하는 할아버지에게도 잘한다. 술만 마시면 삶의 의욕을 잃었던 아버지도 점점 활기를 찾고......

한편, 영미는 교수인 새아빠와 예쁘고 교양이 넘치는 새엄마 밑에서 잘살고 있지만 자꾸만 오빠 생각이 난다. 그래서 오빠를 만나면 주려고 유치원 아이들의 물건을 몰래 훔치게 되고 결국 들통이 나게 된다.

큰돌이네 새엄마는 아무리 못살아도 친남매가 어떻게 헤어져 살 수가 있냐면서 영미를 데려오자고 아버지께 말하고 영미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두 새엄마들이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 친엄마 이상으로 아이들에게 잘하고 큰돌이네 새엄마는 오는 날부터 내집인양 닥치는 대로 치우고 쓸고 닦고 구석구석 박혀 있는 빨래감을 꺼내 눈부시게 빨아놓는다.

이 책을 읽으면 못된 새엄마의 이야기는 먼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그것을 노리고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좋은 새엄마들이 있다니 기쁜 일이다. 새엄마와 사는 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서로 큰 상처를 받지 않고 빨리 한 가족으로 융화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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