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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개인적으로 이상문학상 작품집보다는 김유정문학상 작품집이나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이 내게 맞다. 그러면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찾아 읽은 이유가 뭐냐면 골고루 읽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 이번 년도 대상을 수상한 예소연 소설가의 작품인 '그 개와 혁명'은 참신하고 강렬하고 유머도 있었지만 내 취향의 글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짧게 떨어지는 문장들은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작품, 결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김경욱 소설가의 심사평도 감동적이었다. 혁명은 거룩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으며 그것이 '그 개'와 같이 뛰어놀 때, 작고 다정한 온기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는…. 예전부터 혁명이란 단어가 거창하게 들려서 잘 쓰지도 않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실제로 잘 모르겠다)만 말했다. 부당한 일이나 인물에 맞서서 억압 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이 소설을 읽고 혁명을 위대함으로만 치장하지는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김기태, 문지혁 소설가의 작품은 취향에도 맞고 메시지도 좋아서 집중해 읽었다. 공책에 메모도 남겼다. 김기태 소설가의 '일렉트릭 픽션'에는 한국전력공사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한국전력공사는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전기를 필요한 장소에 보내고 팔기도 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발전소는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집의 한쪽 창문에서 밖을 멀리 내다보면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몸체는 우아하고 세 개의 날개가 돌아가면서 전기를 생산하는데 가까이서 보면 거인이다. 안산, 시흥에 살 때 가까이서 볼 일이 꽤 있었다. 풍력발전기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그걸 타고 올라가 수리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각각의 풍력발전기가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전기를 생산해내는 게 꼭 사람과 비슷하단 생각도 든다. 이건 소설 내용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각자의 몸에 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방전이 되도록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봐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공동 주택에서 '익명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소설 속에 나오는 글인데 계속 기억에 남을 듯하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지내야 한다.
취미 생활을 집안에서 하려면 되도록 정적이어야 하고 동적이고 소음을 유발하는 취미 생활은 악행이요, 민폐에 불과하니, 힘든 세상에서 마치 단비가 되어줄 삶의 소소한 즐거움은 슬프게도 금지 사항이 되고 만다. 나도 공동 주택에 살 때 많이 생각해봤던 문제라 깊이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문지혁 소설가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여러가지 면에서 좋았다.
잘 다듬어진 문장에 인물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점도 그렇고, 결말도 신선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쳐서 하는 행동도 여유가 넘치는 한 남자와 가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친다고 할 수는 없는 한 남자가 있다. 후자의 남자가 전자의 남자, 그러니까 자기 친구를 은근히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도 남과 다를 바 없다고, 너에게도 시궁창은 있을 거라고 여기며 은근히 까려고 하는 장면이 나올 때 글을 읽는 내가 왜 이렇게 몸이 꼬이는지 모르겠다.
내친 김에 작가 인터뷰 내용도 세심하게 읽었다. 문지혁 소설가는 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물이 계급에 있어 중요한 듯하다고. 든든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은 땀이나 눈물을 덜 흘려도 될 것 같고, 경제력이 부실한 사람들은 더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할 것 같다고. 정말 그렇지 않은가. 예전에 7월 한 달 내내 폭우가 쏟아졌을 때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물 때문에 피해를 입었던 일이 떠오른다.
서장원 소설가의 '리틀 프라이드'는 아름다운 외모와 성(性)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 속 흥미로웠던 문장을 옮겨 적는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이자 평균 신장에 한참 못 미치는 왜소한 남성이 '위대한 개츠비'가 되거나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본문 205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이 하나 있다.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 '인어공주, 백설공주'를 실사화하면서 여배우를 캐스팅했는데 두 작품 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생김새도 예쁘다는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뽑았다. 배우가 세간에 공개되고 사람들은 영화와 두 배우를 비난했다. 그런데 비난하는 사람들의 파가 갈렸다. 한쪽에서는 흑인 여성도 안 되고, 특히 못생긴 여성은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는 입장.
다른 한 쪽에서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그런 점은 중요치 않으나 못생긴 외모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일단 인어공주, 백설공주는 우리 머릿속에는 둘 다 백인 여성으로 인식 되었는데 특히 백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눈처럼 흰 피부를 가진 여성임이 거의 확실하다. 인어공주는 까무잡잡한 피부여도 상관없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못생긴 여성이 인어공주, 백설공주를 연기함은 어떤가.
그건 이상하다. 왕자가 개성 있는 외모를 좋아했다는 설명이 미리 깔렸다면 대중은 그럭저럭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도 없이 대뜸 못생긴 여성이 왕자와 로맨스를 함은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니 못마땅하다. 여자든, 남자든,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좋아함은 죄가 아니지 않은가. 죄는 외모나 인격을 함부로 깎아내림이 죄다.
위대한 개츠비나 캡틴 아메리카도 미리 그들의 외모에 대한 설명이 깔렸다면 대중은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설명도 없이 작고 왜소한 남성이 위대한 사랑을 하고, 영웅이 됨은 못마땅하다. 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특별한 수작이라면 배우들도 얼마든지 빛이 날 수 있겠지만. 그런데 트랜스젠더가 위대한 개츠비가 되고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건?
왜 꼭 그런 질문을 해야 할까. 그들을 그런 역에 캐스팅 할 게 아니라 그들 자체로 잘 어울리고 빛날 수 있는 역할을 주면 좋을 일을 가지고. 사람은 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게 다르다. 다음으로 정기현 소설가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읽는 동안 왜 그렇게 집중이 안 됐는지 잘 모르겠다. 글 속에서 수없이 질문을 던지는 화자 때문에 집중을 못한 부분도 있는데 희한하게 내용이 기억에 잘 남지 않았다. 최민우 소설가의 '구아나'는 집중해서 읽었다.
딱 요즘 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여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소셜 네트워크나 유튜브에서 상당한 즐거움을 얻고 중독이 되다시피 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유튜브는 비교적 긴 동영상도 얼마든지 인기가 많을 수 있지만 쇼츠는 금방 보고 넘길 수 있어서 유튜브에 접속하면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쉽게 보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게 되니 영상의 진위 여부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믿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점점 소셜 네트워크나 유튜브를 보면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저울질해가며 판단하는데 익숙해졌다. 자극적인 영상이나 남을 비난하는 영상을 보면서 흥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한 영향을 주는 영상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제대로 된 지식을 재미있게 배우는 일도 가능하다. 아무래도 문제는 사람들이 자꾸만 자신이 원하는 행복보다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들이 더 좋다고 추천하는 것들을 실천하고 인증하는 데서 오는 행복에 목을 매는 점이다.
입소문을 타지 못하는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여기게 되며, 추천을 받지 못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로 여겨진다. 내가 좋다고 느껴도 만인이 시선을 주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것이 된다.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세상이 떠오른다. 아니면 차 있더라도 뭔가 불만족스러운 감정들로 채워진 세상이 떠오른다. 휴대폰 화면, 모니터 화면 속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을 따라잡느라 정작 자기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일은 너무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