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컬렉션 (그책)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 그책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중학생 때 추천 도서로 지정이 되어서 읽어보고 그 후론 읽어볼 일이 없었다. "데미안"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유명하고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보니 작품들이 대부분 유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작품은 자아 실현이라는 공통의 주제가 있는 듯하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책을 짧게 정의하자면 나르치스라는 이름을 가진 수련수사와(나중에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른다.) 골드문트라는 이름을 가진 생도(그는 다른 직업을 가진다.) 사이의 깊은 우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거기에 철학과 예술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가 더해진 소설이라고. 이렇게 짧게 줄인 말로는 영 따분한 소설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소설은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벗어나 방랑 생활을 시작하면서 짐작조차 할 수 없던 새로운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인물 설명을 잠깐 해보자면 나르치스는 철학자 유형이고 골드문트는 예술가 유형이다. 나르치스는 아버지로 대변되며 골드문트는 어머니로 대변된다. 나르치스를 아버지로 보는 이유는 그가 정신, 관념에 헌신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학교이고 학문이며 정신이다. 골드문트를 어머니로 보는 이유는 그가 감각에 헌신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감각, 예술, 육욕이며 삶 그 자체다. 


  우리가 아버지(정신)를 따르려면 학교에서 학문을 배우고 규칙을 배우면 된다. 그런데 어머니(삶)를 배우려면 학교에서만 배우는 걸로 부족하다. 골드문트는 마리아브론수도원에서 어떤 일을 계기로 탈출하여 방랑 생활을 시작하고 그의 방랑은 곧 어머니에 대한 배움의 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정신은 죽지 않고 죽 이어지지만 삶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곧 어머니는 우리를 낳기도 하면서 죽이기도 하는 분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어머니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보다 더 넓고 다양하게 해석하면 좋다. 나는 어머니가 우주 자체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어머니는 생명을 마냥 사랑하기만 하시지는 않는다. 중요한 점은 생명에게 죽음을 내리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흙에서 나온 우리는 반드시 흙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골드문트는 방랑 생활을 하던 도중 독일 전역을 휩쓴 페스트로 인해서 어머니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페스트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독자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이 남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나르치스는 아버지께 평생을 헌신하며 학자와 신자로서의 삶을 묵묵히 걸어나가고 골드문트는 어머니를 사랑하며 예술에 대한 혼을 불태운다. 골드문트는 사랑하는 나르치스 덕분에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우친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골드문트는 원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수도원에 남아 수도사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안의 사랑과 자유 의지를 마음껏 펼치며 자신을 불태우면서 살아갔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늙어버렸다. 생도 시절의 그는 잘생긴 외모와 특유의 사랑스러움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얻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젊은 시절에 대단한 미남들이었다. 그 점이 수도사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여자들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한 골드문트에게는 상당한 이점이 되었다. 


  하지만 늙고 병이 들면서 여자들은 오지 않고 그의 곁에는 결국 나르치스만 남았다. 그래도 골드문트는 여자들을 탓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고 죽는 과정이 온통 변화의 연속이듯이 사랑 또한 그럴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그는 행복한 남자였다. 오랫동안 이어온 우정은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으며 우정 또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자들끼리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 닭살이 돋을 것 같다. 그런데 소설이라 그런가 감동 그 자체였다. 


  '내가 살면서 너 때문에 힘든 점도 많았지만 너한테서 배운 것도 많았고 너로 인해서 고단한 삶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어'라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에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감동 받았다. 분명 나르치스의 말에는 그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었다. 수도원에서 골드문트가 남긴 예술 작품을 보면서 대쪽 같았던 나르치스도 벗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에 빠져서 살아갈 걸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