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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1.
'작은 것들의 신'은 역사라는 거대한 물살을 바라보며 그것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길 수밖에 없는 개인, 한 사람에 깃든 신을 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안전하게 어느 곳에 안착하든지, 온몸이 부서져서 발견되든지. 그저 그렇게 되는 대로 되어질 수밖에 없는 몸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神).
2.
"암무, 꿈속에서 행복했다면 그것도 인정돼요?" 에스타가 물었다.
"인정되다니?"
"그 행복이요, 그것도 인정되는 거냐고요?"
앞머리가 흐트러진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녀는 잘 알았다. 왜냐하면 진실은 인정되는 것만 인정되니까.(본문 304-305쪽)
꿈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작은 것이며, 나만의 것이다. 꿈 속에서 이룬 행복은 어딘가 불완전한 행복처럼 느껴진다. 때때로 행복은 나 혼자서 인정했다고 완벽해지지 않으며 그 완벽하지 않음이 못마땅하고 속상하기까지 하다. 커다랗게 보이는(완전해 보이는) 행복은 타인, 집단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사소한 행복은 너무 작아서 가치가 별로 없다고 평가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개인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을 읽으면 그 마음에 대해서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다.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매우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벨루타와 암무의 사랑은 꿈에서, 가장 개인적인 선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꿈 밖(사회)에서, 집단에서 인정 받으려면 혁명이 필요했다.
벨루타와 암무는 인도라는 커다란 집단에서 불가촉민과 가촉민이라는 신분으로 나뉘었고 그래서 서로를 사랑했지만 서로를 마음껏 만질 수 없었다. 그들은 견고한 질서를 따라야만 했고 거부하면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했다. 거대한 신 앞에서 작은 것들의 신은 너무 무력했다. 처절하게 맞선다 해도 힘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 났다.
3.
거대한 세계관, 거대한 질서, 거대한 희망 아래에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암무와 벨루타는 그저 작은 것에 희망을 걸고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자기 자신(상대를 사랑하는 하나의 몸)을 믿고, 사랑이라는 감정(나만의 것, 작은 것)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희망은 너무 커서 붙잡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잡기에는 너무 작았다.
4.
아룬다티 로이가 이 소설을 쓸 때 몸속에 신이 들어앉지 않았을까? 소설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가슴이 미어지는 상태에 접어들었고 조금 진정이 되면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