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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여덟편의 단편소설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 기성세대들이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해주고,가르치고 도움을 주었는지 먼저 반성이 앞선다.
[쉰 아홉개의 이빨]에서 재혼가의 목사님처럼 권위만을 앞세우며
가부장적인 자세로 억압하지는 않았는지,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의
보린처럼 말 못할 아픔을 어루만져주지는 않았는지, [라일락피면]에서
시대적 아픔의 짊을 그냥 짊어지게 하지는 않았는지..되돌아보게 된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옛날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더 외롭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특목고니, 외고니,자립형사립고를
가야한다고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내몰리며 정서적으로 많이들 지쳐있다.
그 흔한 편지 한통 써보지 못하고, 핸프폰을 통해 문자를 보내고 얘기
한다. 그들에게는 기다림도 인내심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애뜻하고
순수한 감정을 전하는 방식이 사뭇 달라져 버렸다.
무한경쟁체제와 삭막한 입시지옥속에서 사는 요즘 청소년들은 어느덧
문학을 국어시간에 배우는 시,소설,수필에 한정해버리고, 단순히 수능을
통과하기 위한 관문정도로 인식한다. 또한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꼬리표
달고 나온 책 대부분은 청소년들에게는 읽기 어렵고, 읽다가 쉽게 포기해
버리는 고전문학이나 서양문학이다. 그런 시점에서 이번 8편의 단편소설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일락피면]은 라일락 향기 짙은 오월, 광주 민주화운동 와중에서 이제
갓 고등학생인 석진이는 친구, 가족의 사늘한 주검을 바라보고, 이념따위
상관없이 순수하게 남아있는 양심에 따라 총을 든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정권욕이 이 땅의 수많은 젊은 영혼을 너무나 많이 앗아 가지 않았는지..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초등학교때 사생대회에서 낸 그림주인이
바뀌면서 인생이 엇갈려 버린다. 물론 당대의 최고의 화가로 성공하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의식에 고뇌한다. 누구나 어렸을때 말 못할 고민은
하나씩 품고 사는 것은 아니겠나. 그것이 인생의 선택을 좌우할 정도면
더 아련히 다가오겠지만..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에서는 흔하지 않은 동성커플 자녀가 자신의
정체성과 세상의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수자의 입장을 배려하는 사회는 아직도 우리에게 먼 이야기인가..
[헤바]에서는 사춘기 중학생인 성호에게 이성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아직 많지는 않은 상태에서 자유분당하고 당당하게 사는 친척 누나는
부러움을 넘어 아슬아슬한 연애감정으로 찾아온다. 첫사랑일까,풋사랑일까.
[쉰 아혼개의 이빨]는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면서,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새로운 환경을 계속 강요받고 있는 청소년들의 아픔을 느껴본다. 특히
재혼가정의 낯설음과 가부장적인 폭력에 맞서는 주인공은 애처롭기만 하다.
[널 위해 준비했어]에서는, 대인공포증을 겪으며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사는
청소년들이 구조적인 사회병폐와 일그러진 기성세대속에서 나름대로 세상을
향해 나가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청소년 문학은 단순히 청소년들의 감수성이나 지식을 풍부하게 해주는데
그치지 않고, 감수성을 통해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그들에게 미래에 희망을 주고, 삶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시도가 이번 책에 잘 담아있다고 본다.
오랜만에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 그들과 같이 호흡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