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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 평전 - 미학적 아나키스트
나카미 마리 지음, 김순희 옮김 / 효형출판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나카에 마리가 쓴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은 일본 민예운동의 효시이자 조선의 유물 및 예술품에 대해서서도 많은 자취를 남긴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해서 그의 사상이 형성되어 간 과정, 불교의 ‘無對辭’, ‘不二’사상을 통한 평화에의 애호, ‘복합의 미’ 등에 대해서 그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통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조선의 문화에 대하여 ‘비애’, ‘한’, ‘선’의 부정적 이미지만을 남겼다는 일면적인 평을 일축하고도 남을 정도로 그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추구해나갔음을 나카에 마리는 조선에 대한 다른 평가(활동적이거나 남성적인 측면도 지적하였던 사실)나 오키나와나 아이누의 문화에 대하여 그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남긴 기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관점은 서구 우월주의에 매몰되어 맹목적 서구 추종자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일본의 대다수 지식인들에게 나타났던 천황을 정점으로 획일화된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나 국가주의에 매몰된 사람도 아니었음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온건한 노선, 소극적 저항의 자세를 취하면서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를 ‘민예’를 중심으로 하여 발굴하고 복원하고자 노력했음을 복원해 내고 있다. 그가 지향한 문화의 ‘복합의 미’에 대한 시각은 세계화나 국제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 와중에도 다양성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때문에 이 책은 그를 마냥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어용 지식인이었다고만 단언하기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가 지향한 바나 문제의식(특히 평화에 대한 애호)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호출하여 시의적절하게 활용할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를 애호하고 주지하고자 했던 야나기의 사상이나 행동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횡행/만연해 있던 시기를 놓고 보았을 때 어디까지나 소수자의 입장에 머물렀을 뿐이며, 식민지 본국인이라는 우월적인 지위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문화의 다양성이나 복합의 미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피식민지인들의 느끼고 체험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사상이나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창된 시기가 언제였는가, 그리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입장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으며,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야나기의 입장과 노선을 식민지 조선 내에서 총독부가 한동안 행해졌던 "문화통치"의 논리와 비교해 보았을 때 그다지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야나기가 전반적으로 지향한 노선이나 사상을 단순히 그가 "본국인(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통치 노선과 마냥 같았다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곤란한 면도 있기는 하다. 저자가 복원해 낸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그 당시의 시대적 환경과 조건 안에서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긍정적 요인들을 많이 발견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인물이 되든 간에 공과 과는 두루 살핀 이후에 평가를 내려야 하는 만큼 읽어나감에 있어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피식민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인물이 아무리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의 영향(톨스토이라든지 오스기 사카에, 백화파 등과의 교류)을 받아들였고, 평화를 평생의 화두로 삼을 정도로 일본 내 사상지형 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의 소극적 행적(문화 중시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비개입)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방조하는 선에서 머물렀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여지를 남기는 만큼 저자의 의도대로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만을 내릴 수도 없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남긴 글이나 행적이 이후 한국 내부의 학계나 그 밖의 공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펴보면서 동시에 좀더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카에 마리의 책에서는 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언급이나 검토가 소략한 편인데 앞으로 다른 연구자들의 성과물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평화"라는 화두를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인물을 통해서 연역적으로 도출해 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야나기가 끄집어낸 ‘민예’의 개념은 중국이나 조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고대의 시기, 그리고 서구 열강의 영향이 극대화되어 스며들고 있던 근대의 시기를 오려내고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무로마치~도쿠가와 시기의 중세에 해당한다. 이는 결국 일본이 타국으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은 점을 최소한도로 줄이면서 그네들의 문화적 독자성을 찾아내고자 한 집착의 산물(무엇을 과연 일본의 고유한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의식의 천착)이라고도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화의 독자성이라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등의 거시 담론을 통해서보다 일반 민중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미시적인 문화 담론을 통해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지만 야나기의 사상적 흐름의 변화에서 ‘민중’의 개념은 없다는 면에서 좀더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무래도 ‘민중’의 삶과는 조금 거리를 두었던 야나기의 경력과 환경에서 비롯되는 바일 것이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야나기의 민중은 스스로 미를 만들어내지도 않고 순종하며 반역심이 없는 존재”(194쪽)였기 때문에 야나기가 설정한 민예의 개념은 오늘날 흔히 언급하는 “민중예술”과는 노선을 달리하고 있는 만큼 그의 민예 개념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많은 주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