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김선욱 옮김, 2006)

  현재 조금씩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문장과 문장 사이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서 배경지식으로 그다지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읽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많이 어색하고 어렵기만 하다.

  읽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에 내용을 따라가기조차 쉽지는 않은 형편이지만 중간중간에 떠오른 생각만 몇 자 두서없이 끄적여 놓을까 한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 "악의 평범성"은 거대 관료 조직 내에서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고자 한 인물들로 인해서 벌어질 수 있는 "비인간화(이는 자신의 권한 내에서만 판단의 수위를 정하는 것과 연관이 되며,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했을 경우 그에 뒤따라올 기존질서 내의 처벌을 의식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을 주저하고 심지어는 포기하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벌어지는 관료제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주제를 한국의 근현대 역사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어떠할런지? 여기에 해당하는 시기로는 크게 식민지 시대와 해방 후 민주화 이전의 군사정권 시대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식민지 시대의 "친일"문제와 관련해서 적어보도록 한다.

  요근래 식민지 시기의 연구와 관련해서는 기존에 많이 논의되었던 "수탈과 저항"의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서서 회색지대('협력' 혹은 '타협'이라고도 규정짓기도 하는데, 기존의 친일에 대한 접근과는 시각이 조금은 다르고 복잡한 편이다)가 존재했음을 부각시키고 있는 편이다.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기,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아이히만과 같은 생각 그리고 행동을 한 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큰 맥락에서 보자면 "친일"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하고 평가하느냐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며, 작게는 "소극적 친일(책에 언급되어 있는 "내면적 이주inner emigration"과 유사한 개념이란 생각이 든다)", 즉 체제 내 기존 질서에 타협하고 순응하여 그리 눈에 띠지 않고 단지 자신이 맡은 바 직분에만 충실하게 행동하여 결국은 체제유지에 기여한 행위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를 내릴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식민지라는 시대에 세밀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는만큼 해당 시기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고 이해하는 게 일도양단식으로 단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과 앎의 치열함(역사청산에 대한 논의의 기반요소)을 놓아버리고, 그 시대에는 모두가 다 그렇고 그랬는데 이제와서 굳이 뭔가를 구분하고 드러낼 필요가 있겠냐는 물타기식 논법으로 모든 것을 흐지부지 시켜버려서는 또 곤란한 법이다.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는 역사청산에 대한 의식의 끈을 쉽게 놓아서는 아니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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