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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지구 - 다가오는 인구 감소의 충격
대럴 브리커.존 이빗슨 지음, 김병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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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텅 빈 지구에 가득 찬 희망을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 인류로 인해 우리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식량전쟁, 해결할 수 없는 절대 빈곤, 환경파괴 등등 77억의 인구가 앞으로도 더 늘어난다면 각종 위기가 닥쳐,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인구포화로 고통을 호소하던 사람들이 어느 샌가 텅 빈 마을과 학교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인구 위기는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인구가 부족한 나라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많았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니! 이제야 좀 넉넉히 살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닌가?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핫플레이스에 몰려든 사람들에 치여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구감소는 여유가 아니라 재앙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더 크다. 세대 분포의 시간차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우리는 좀 더 여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 끼리 더 치열하게 양로원이나 병원 침상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될 공산이 크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아이들, 청년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의료 기술의 발전과 각종 연금, 복지 혜택으로 노년층의 생존 기간은 늘어나고 있는 한편, 뒤를 이어 일을 하고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노동 인구가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사회를 거대한 항아리로 본다면, 흘러들어오는 물보다 빠져나가는 물이 더 많은, 그래서 항아리의 제 기능이 불가능할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 그리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경제 침체와 불경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 아이들의 부족은 국가 경제에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젊은 인구의 감소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시도 중인 각종 돌봄정책과 육아 휴직 그리고 아동수당이면 될까? 이러한 복지정책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긍정적인 영향은 최소한에 그친다. 정책에 소모되는 재정과 인력 시간은 막대하지만, 그 영향은 미비하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젊은 세대를 위한 복지정책을 위해 다시 젊은 세대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텅빈지구]의 저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매우 직관적이고 탁월하다. 우리에게 너무 뜨거운 물과 너무 차가운 물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두 물을 고루 섞어서 적당한 온도를 맞추면 될 것이다. 이를 인구 문제로 가져온다면, 인구 부족을 호소하는 국가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더 많은 인구가 자국으로 이민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된다.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만을 고수하는 민족주의 국가는 근 미래에 자연스레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새로운 도전과 혁신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공론장이 필수적이다. 또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는 동력은 젊은 사람들 간의 협업에 달렸다. 오늘날 세계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아이콘 기업들을 보라. MS, Apple, Amazon, You Tube, Netflix 등등의 공룡 IT 기업들은 Garage에서 마음껏 아이디어를 내고 또 공작해보는 젊은이들에게서 탄생했다.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낯선 것을 거부하고 근엄하게 민족의 단결을 외치는 민족주의 집단으로 남으려 한다면, 그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잡종^들에게 뒤처지는 운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문화 사회는 윤리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경제 정책으로 다뤄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은 다름 아닌 교육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족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는 곳에서 힘겨운 이민생활을 견디려 할 외부인은 없다. 확고한 다문화주의 기반이 없는 것으로의 이민이란 불가능할뿐더러, 일어나선 안 되는 비극이다. 따라서 우리는 점점 늘어나는 노년층에게 막대한 복지와 의료재정이 소모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생존을 위해 교육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교육이야 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미봉책보다 훨씬 확실하고 진정성 있는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여러 교육 중에서도 자기중심적-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공동체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문화다양성 교육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 대로, 점점 줄어드는 아동청소년이란 악조건을 유의미한 교육의 기회로 삼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교사 1인당 맡는 학생 수를 줄여 교사와 학생 간 깊이 있는 의사소통을 나누고, 모든 학생들이 역할을 맡아 참여하는 체험활동을 통해 문화다양성과 공동체성을 체화하는 것이다. 또한 교사-학생, 그리고 학생-학생 간 인간적인 상호작용의 경험을 쌓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혐오, 구분 짓기 정서를 극복한 새로운 세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재생산의 도구가 아니다. 내 다음 세대를 살아가는 모습이 훨씬 진보하고 희망에 차 있다면, 인간은 자연스레 자손을 남기고 싶어 한다. 행복의 선순환이다. 가장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인 인구문제를 교육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인류는 한때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질 뻔했다.

이민은 경제를 더 확대시키면서 원주민을 평균적으로 더 잘 살게 한다. - P202

이민자들은 소비를 진작시키고 더 이상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받는 서비스의 재원이 되는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다. 이민은 이민자와 원주민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 준다. - P203

지금으로서는 인구 감소 직전에 있는 나라가 그것을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민자 유입에 달려 있다. - P205

어떤 종류의 다양성이든 그러한 모자이크는 민족주의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성공적이고 탄력적인 구조다. 사회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재생시키려고 할 때, 민족주의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295

확고한 다문화주의 기풍이 없는 이민은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방안이다. - P313

다문화주의가 빠진 이민은 배타와 빈민화, 주변화, 폭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최악의 운명을 위한 방법이다. 그런 이민은 한 사회 내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공간을 비롯해 여러 가지 가정과 가치들을 공유하지 못하는 ‘광장의 붕괴‘를 초래할 뿐이다. ... 이민의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쪽 다 적응해야 한다. 양쪽 다 내놓아야 한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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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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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iem for the N.EX.T Emb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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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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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지 벌써 4년이 되어간다. 내가 그를 만나게 된 처음은 그의 노래를 통해서였다. 내가 그와 가까워진 것은 그의 라디오를 통해, 그리고 우연찮게 그의 작업실과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마주치게 되어 밥 한 끼 얻어먹은 사건을 통해서였다. 그런 그와 헤어지게 된 것은 어느 일상 속에 벌어진 갑작스런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두문불출하며 그의 음악과, 띄엄띄엄 녹음해둔 라디오 음성들을 다시 들어보는 것으로 현실을 부정했다. 그의 장례식 마지막 날에야 빈소를 찾아 꽃 한 송이 놓아두고 돌아오는 길에는 분노보다는 슬픔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과연 나는 그와 8년간 함께 하면서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는 있었는가? 그가 농담 삼아 몸에서 흑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할 때, 왜 웃고 넘겨버렸을까? 그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후 여러 해 동안 그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그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신해철의 사후, 그의 음악인생을 재조명하며 그를 기리는 많은 글과 영상들이 나왔다. 그러나 신해철의 팬임을 자처하는 우리들은 그의 사후 방송에서 정리하여 내보내 주는 디스코그라피 정도는 꿰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신선한 것들, 즉 신해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그와 실제로 작업을 같이 했던 사람의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오랜 기간 작업했던 강헌 선생의 이야기는 굉장히 소중하다.

 

먼저 평론가로서, 한국 대중음악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진 그가,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본 분석가의 눈으로 기술하는 신해철의 존재는 팬과 가수로서의 내러티브를 벗어나 역사적 존재로서의 신해철로 떠나보낼 수 있게 해준다. 신해철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그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가 몸담았던 당시 한국 사회 음악계 전체의 흐름에서 그가 어떤 위치를 차지했고, 어떤 의미를 지닌 사람이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바로 그런 어려운 작업을 업계 전문가이자 신해철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병인 저자 강헌이 우리에게 자세히 풀어준다.

또한, 신해철의 가장 친한 지인 중 한 사람으로서, 또 음악 동료로서 저자 강헌은 신해철 음악의 리스너라는 차원에서는 미처 눈여겨보지 못한 의도와 구성 그리고 그 곡이 담고 있는 야사까지 풀어내준다. 그의 라디오에서 함께 식구로 통했던 우리는 잘 알 것이다. 저자가 신해철의 곡에 대해 해설하고 또 서술하는 방식이,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아티스트 특집 방송을 하던 서사와 정확히 똑같다는 것을 말이다.

 

여태까지 나왔던 가수 신해철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은 엄정하고 일반화 할 수 있는 정제된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삶의 내밀한 주변부들을 모두 쳐내고 정제한 객관적 이야기가 아니라, 엉성하고 투박할지언정 그에 대한 주관적인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그리워한다. 그 이야기가 자신의 소중한 것, 또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경우에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숨겨진 아티스트 신해철의 지표들을 눈물을 머금으며 이야기한다. 엄숙하기 보다는 떠들고 노는, ‘장례잔치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하늘에서 이 책을 본다면 역시 강형이야 라면서 폭소를 터뜨려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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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동력 -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힘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김정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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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이라는 화두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어떤 이는 인류의 종말이 오는 것이라고 염려하고, 또 어떤 이는 유사 이래 인류가 희망해오던 낙원이 드디어 열릴 것이라 긍정하기도 한다. 여러 예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양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산업 구조의 큰 변화는 곧 노동에 대한 우리의 관념 자체를 재정립 할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한 가지 일을 평생 동안 꾸준히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소위 평생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들이 인기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이런 성실함에 대한 인식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학문의 벽, 업계의 벽이 모두 무너지는 통섭의 시대에 이 같은 미덕은 이제 옛 말이 되어야 한다.

 

사실 우직함, 성실함이라는 것이 미덕이 되었던 이유는, 모두가 기피하는 일도 누군가 하는 사람이 있어야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기계 속 톱니바퀴처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만이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더 나아가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은 사라지거나 환경이 개선되거나 시급이 오르거나 로봇이 하게 되니 과감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몸을 던지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한 것이 오히려 성공을 불러온다는 것이 본 책의 핵심 주장이다.

 

이는 기존 사회의 통념과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이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로 대표되는 성실함과 저축의 스토리는 기성세대가 국가의 부를 일으켜 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미 배짱이 이야기가 인터넷 공간을 통해, ‘가혹 노동-산재로 고통 받는 개미음반이 대박을 쳐서 성공한 베짱이이야기로 변주되는 것처럼 기성세대의 통념과 현재-미래 세대의 사회상 사이에는 큰 괴리가 발생할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계속해서 1인자가 되는 것이 성공의 플롯이었다. 그리고 대다수는 이러한 전문가나 대가의 권위 아래에서 수련하여 제 2의 대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 과거에는 정보의 폐쇄성이 강했기 때문에, 전문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기 위해선 전문가 밑에 들어가 도제로 생활하면서 능력을 익히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절대 다수는 성공하지 못하고 힘든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의 공유와 개방형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보를 감추고 있는 것보다 함께 나누고 개량하며 또 다른 조합을 궁리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기반부터 쌓아올려 최종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발명위에 자신의 것을 바로 쌓아올리는 빠른 진화가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거나 정보 권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여러 분야를 연결 지어 새롭고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영역을 아우르며 연결 짓는 네트워크 능력을 다동력이라고 이름 짓는다.

 

누군가 이미 발명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처음부터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어리석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쌓아둔 결과물을 바탕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혁신적인 변주인 것이다. 전부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내가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일에 집중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등의 최첨단의 작업에서는 이미 과거와는 달리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분업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시간을 들이면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낭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은 OECD 노동시간 최장국인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한다. 노동생산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산업화 시대의 업무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을 버티는 노동자에게만 보상-승진을 주는 기형적인 양상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 내에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지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자신의 귀중한 시간은 자기의 강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일에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삶을 즐거운 것으로 가득 채우는 자신의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1) 나 자신의 시간을 되찾는 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혼나지 않으려고 무의미한 규칙에 얽매여 타인의 시간을 살지 말 것. 타인의 시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이 시킨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이라면, 나 자신의 시간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이다. 나 자신의 시간을 살기 위해선 상대하지 않을 사람을 명확히 구분하고, 온몸을 던져서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2) 업무 효율성 재고

일하는 시간의 길이로 승부하려 하지 말고, 업무 효율 최적화를 위한 궁리를 해야 한다. 일이 계속 정체되는 것은 업무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체를 없애려는 궁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도가 높은 항목부터 리듬감 있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순간순간을 농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시간에 많은 일을 끊임없이 처리해야 한다. 집중할 때 한꺼번에 최대한 많이 처리하는 편이 효율도 높아진다. 단기간에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이런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도록 양질의 수면과 건강관리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3)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자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 보다, 스스로의 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양을 쌓아야 한다. 피상적인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매커니즘에 대해서 사유하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시스템의 본질과 역사의 변천에 바탕을 둔 깊은 교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장르를 횡단하고, 시대를 한두 걸음 앞서 나가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교양이 없는 사람은 지금이라는 세태에 휘둘려 눈앞의 일만을 처리하는 톱니바퀴로 끝나고 만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한편, 글쓴이의 주장이 매우 거칠고 래디컬하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부분도 있다.

 

1) 저자는 자유로운 선택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완벽을 기하는 것을 경계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모두가 저자의 주장처럼 졸속행정과 직무유기를 긍정하게 된다면, 사회시스템의 근간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선택들이 피해자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공장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졌더라도 그것을 발현하는 과정에서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또한 글쓴이의 이야기에 너무 매몰될 경우, 우직하게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쌓는 사람을 폄하하게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우직한 이들에게 의존하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축소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2) 중요하지 않은 일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만 빠르게 처리하고 넘기는 이유는 진정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저자는 전자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하지만, 진정한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은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간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면 집중하게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집중이 풀리면 더 이상 좋아하는 것이 아니니 박차고 나서라는 식이다. 하지만 싫증이 난다는 것은 곧 그 일에 익숙해져 여유가 생긴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단순히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 중요한 만큼, 한 분야를 철저하게 파고드는 전문가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지혜나 교훈을 무시할 수는 없다.

 

3) 저자는 업무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문자메시지, 메신저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면대면 대화나 전화통화 등에 대해 저자는 구시대 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면서 강도 높게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효율성이란 것이 최고의 가치인 단순 업무 관계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깊은 내러티브를 나누는 관계에서는 오히려 오프라인으로 만나 오감의 깊이를 나누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MIT빌딩 20’의 사례를 통해, 면대 면으로 함께 모이는 공간에서 창의력과 창조성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따라서 나이브하게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비동기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기 보다는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유공간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구성해주는 편이 낫다.

 

4) 저자는 학교 교육이 평균적인 아이만을 길러내기 위한 균형 교육이라고 비난한다. 학교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균형을 위해 개인적인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학교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집중력과 호기심을 무디어 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의 이러한 학교 교육에 대한 색안경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학창시절의 경험 속에 갇혀 현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아보지 않은 아집에 가깝다. 저자는 학교 교육과 입시 교육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단독적인 시민을 기르기 위한 교양을 배우는 과정이다. 산업 시대에 노동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과 현재의 시민 교육은 그 질과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저자의 주장과 정 반대로, 학교 교육 정상화에 힘을 보태주어 성별, 계층의 구분 없이 모두가 모여서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여러 활동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사회적 자본을 많이 투자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확실하게 다동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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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H.M. - 기억을 절제당한 한 남자와 뇌과학계의 영토전쟁
루크 디트리치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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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추모란 ‘영웅만들기‘가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그리고 공동체 모두의 성숙과 자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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