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동력 -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힘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김정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화두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어떤 이는 인류의 종말이 오는 것이라고 염려하고, 또 어떤 이는 유사 이래 인류가 희망해오던 낙원이 드디어 열릴 것이라 긍정하기도 한다. 여러 예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양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산업 구조의 큰 변화는 곧 노동에 대한 우리의 관념 자체를 재정립 할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한 가지 일을 평생 동안 꾸준히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소위 평생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들이 인기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이런 성실함에 대한 인식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학문의 벽, 업계의 벽이 모두 무너지는 통섭의 시대에 이 같은 미덕은 이제 옛 말이 되어야 한다.

 

사실 우직함, 성실함이라는 것이 미덕이 되었던 이유는, 모두가 기피하는 일도 누군가 하는 사람이 있어야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기계 속 톱니바퀴처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만이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더 나아가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은 사라지거나 환경이 개선되거나 시급이 오르거나 로봇이 하게 되니 과감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몸을 던지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한 것이 오히려 성공을 불러온다는 것이 본 책의 핵심 주장이다.

 

이는 기존 사회의 통념과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이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로 대표되는 성실함과 저축의 스토리는 기성세대가 국가의 부를 일으켜 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미 배짱이 이야기가 인터넷 공간을 통해, ‘가혹 노동-산재로 고통 받는 개미음반이 대박을 쳐서 성공한 베짱이이야기로 변주되는 것처럼 기성세대의 통념과 현재-미래 세대의 사회상 사이에는 큰 괴리가 발생할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계속해서 1인자가 되는 것이 성공의 플롯이었다. 그리고 대다수는 이러한 전문가나 대가의 권위 아래에서 수련하여 제 2의 대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 과거에는 정보의 폐쇄성이 강했기 때문에, 전문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기 위해선 전문가 밑에 들어가 도제로 생활하면서 능력을 익히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절대 다수는 성공하지 못하고 힘든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의 공유와 개방형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보를 감추고 있는 것보다 함께 나누고 개량하며 또 다른 조합을 궁리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기반부터 쌓아올려 최종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발명위에 자신의 것을 바로 쌓아올리는 빠른 진화가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거나 정보 권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여러 분야를 연결 지어 새롭고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영역을 아우르며 연결 짓는 네트워크 능력을 다동력이라고 이름 짓는다.

 

누군가 이미 발명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처음부터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어리석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쌓아둔 결과물을 바탕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혁신적인 변주인 것이다. 전부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내가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일에 집중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등의 최첨단의 작업에서는 이미 과거와는 달리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분업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시간을 들이면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낭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은 OECD 노동시간 최장국인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한다. 노동생산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산업화 시대의 업무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을 버티는 노동자에게만 보상-승진을 주는 기형적인 양상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 내에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지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자신의 귀중한 시간은 자기의 강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일에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삶을 즐거운 것으로 가득 채우는 자신의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1) 나 자신의 시간을 되찾는 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혼나지 않으려고 무의미한 규칙에 얽매여 타인의 시간을 살지 말 것. 타인의 시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이 시킨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이라면, 나 자신의 시간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이다. 나 자신의 시간을 살기 위해선 상대하지 않을 사람을 명확히 구분하고, 온몸을 던져서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2) 업무 효율성 재고

일하는 시간의 길이로 승부하려 하지 말고, 업무 효율 최적화를 위한 궁리를 해야 한다. 일이 계속 정체되는 것은 업무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체를 없애려는 궁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도가 높은 항목부터 리듬감 있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순간순간을 농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시간에 많은 일을 끊임없이 처리해야 한다. 집중할 때 한꺼번에 최대한 많이 처리하는 편이 효율도 높아진다. 단기간에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이런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도록 양질의 수면과 건강관리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3)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자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 보다, 스스로의 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양을 쌓아야 한다. 피상적인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매커니즘에 대해서 사유하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시스템의 본질과 역사의 변천에 바탕을 둔 깊은 교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장르를 횡단하고, 시대를 한두 걸음 앞서 나가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교양이 없는 사람은 지금이라는 세태에 휘둘려 눈앞의 일만을 처리하는 톱니바퀴로 끝나고 만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한편, 글쓴이의 주장이 매우 거칠고 래디컬하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부분도 있다.

 

1) 저자는 자유로운 선택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완벽을 기하는 것을 경계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모두가 저자의 주장처럼 졸속행정과 직무유기를 긍정하게 된다면, 사회시스템의 근간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선택들이 피해자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공장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졌더라도 그것을 발현하는 과정에서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또한 글쓴이의 이야기에 너무 매몰될 경우, 우직하게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쌓는 사람을 폄하하게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우직한 이들에게 의존하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축소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2) 중요하지 않은 일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만 빠르게 처리하고 넘기는 이유는 진정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저자는 전자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하지만, 진정한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은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간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면 집중하게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집중이 풀리면 더 이상 좋아하는 것이 아니니 박차고 나서라는 식이다. 하지만 싫증이 난다는 것은 곧 그 일에 익숙해져 여유가 생긴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단순히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 중요한 만큼, 한 분야를 철저하게 파고드는 전문가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지혜나 교훈을 무시할 수는 없다.

 

3) 저자는 업무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문자메시지, 메신저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면대면 대화나 전화통화 등에 대해 저자는 구시대 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면서 강도 높게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효율성이란 것이 최고의 가치인 단순 업무 관계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깊은 내러티브를 나누는 관계에서는 오히려 오프라인으로 만나 오감의 깊이를 나누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MIT빌딩 20’의 사례를 통해, 면대 면으로 함께 모이는 공간에서 창의력과 창조성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따라서 나이브하게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비동기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기 보다는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유공간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구성해주는 편이 낫다.

 

4) 저자는 학교 교육이 평균적인 아이만을 길러내기 위한 균형 교육이라고 비난한다. 학교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균형을 위해 개인적인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학교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집중력과 호기심을 무디어 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의 이러한 학교 교육에 대한 색안경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학창시절의 경험 속에 갇혀 현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아보지 않은 아집에 가깝다. 저자는 학교 교육과 입시 교육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단독적인 시민을 기르기 위한 교양을 배우는 과정이다. 산업 시대에 노동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과 현재의 시민 교육은 그 질과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저자의 주장과 정 반대로, 학교 교육 정상화에 힘을 보태주어 성별, 계층의 구분 없이 모두가 모여서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여러 활동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사회적 자본을 많이 투자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확실하게 다동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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